9.4 공교육 멈춤의 날, 선생님들 징계하지 마십시오

임은희 2023. 8. 31.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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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의 협박성 공문에 참담한 심정... 공감하고 이해하며 함께 나가고 싶습니다

[임은희 기자]

안녕하세요, 저는 두 아이의 엄마이면서 8년 차 보호자입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며 선생님께 편지를 쓴 적은 거의 없지만 초등학생 아이를 둔 엄마 입장에서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한 공립초 선생님의 죽음 이후 교실에 계셔야 할 선생님들이 길바닥에 앉아 공교육의 변화를 외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자녀들과 함께 참여한 분들도 많아서 부모 집단의 동료이기도 한 선생님들을 착잡한 심정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 교육부 보도자료를 보고 많은 보호자들이 교외체험학습 신청서를 작성했다. 선생님들의 주장이 타당하다고 생각한 학부모들은 연대가 아닌 개인의 선택으로 체험학습 신청서를 내고 있다. 참여하지 못하는 가정은 응원 메시지나 민원으로 동참하고 있다.
ⓒ 임은희
 
8월 25일 기준으로 <9.4 공교육 멈춤의 날>에 공감하고 지속가능한 공교육을 위해 마음을 모으겠다는 선생님들은 7만9184분이라고 합니다. 서울 지역은 1554교, 1만5883분이 뜻을 함께 하기로 마음 먹었으며 참여인원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해 들었습니다(출처: 공교육 멈춤의 날 누리집 집계, 자료제공: 익명의 교사). 

이제는 중학생이 된 첫째 아이의 담임 선생님이셨던 분은 6학년들에게도 책을 읽어주셨습니다. 지금도 고학년을 담당하시며 여전히 낭독을 하고 계십니다. 책 읽기를 싫어하는 학생들도 '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는 귀를 기울인다고 해요. 

저학년을 담당하시는 어떤 선생님은 자비로 구입한 팝업북을 잔뜩 싣고 출근해서 학생들과 책놀이를 하셨다고 합니다. 또 다른 고학년 선생님은 개인이 등록한 OTT 아이디를 활용해 학생들에게 좋은 미디어를 보여주시고 토론 자료로 활용하십니다. 

이분들을 포함하여 학교 교직원의 과반수 이상이 찬성하고 있는데도 저희 교장 선생님은 재량휴업일 지정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재량휴업일을 지정할 경우 학교가 감당해야 할 특별 감사, 교사 징계 등으로 인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공교육 공백'을 고려해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요. 민주주의 사회에서 과반수 이상이 찬성하는 주장을 따르지 못하는 교장 선생님 마음도 편치는 않을 것이라 짐작해 봅니다.
 
▲ 묵념하는 교사들 지난 8월 2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전국교사일동이 연 '국회 입법 촉구 추모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묵념하고 있다. 이들은 지난 7월 22일부터 매 주말 공교육 정상화와 지난달 사망한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한 집회를 열고 있다.
ⓒ 연합뉴스
 
많은 보호자들이 9월 4일에 체험학습을 신청했습니다. 학교에 전화를 걸어 응원하시는 분들도 있고, 돌봄 상황이 여의치 않아 체험학습을 신청하지는 못했지만 대체교사 수업, 합동 수업, 단축 수업 후 돌봄교실 등 모든 대안을 적극 수용하겠다고 의사를 밝힌 보호자들도 있습니다. 어떤 단체가 주도한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판단에 따른 어른들의 결정입니다.

저는 재량휴업일을 지정한 학교의 교장 선생님이나 연가나 휴가를 쓰는 선생님들이 징계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감정 노동자에 속하는 교육자의 노동권과 올바른 공교육 실현을 위해 꼭 필요한 교권은 학생들이 교육받을 권리만큼이나 중요한 것이기에 선생님들의 결정이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공교육의 주체가 학교, 가정, 사회임을 다시 한번 상기하고 학생들에게 올바른 공교육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동료 교사의 죽음에 함께 슬퍼하고 서로를 위로할 줄 아는 마음으로 토요일마다 상복을 입으면서도 주중에는 학생들을 위해 웃으며 교실로 들어서는 선생님들을 존경합니다.

'다들 학원에서 선행하는데 교사가 하는 일이 뭐가 있느냐'라는 비아냥에도 불구하고 삶에는 교과서 말고도 배워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을 묵묵히 아이들에게 가르쳐주고 계신 수많은 선생님들을 응원합니다.

선생님들을 보호하고 지켜야 할 상급기관이 되려 선생님들을 불법시민으로 몰아가는 상황인데도 대한민국의 공교육을 위해 징계도 감수하겠다고 나선 선생님들을 지지합니다. 

징계까지 각오하는 선생님들
 
학부모님, 교사들은 지금 학부모님께 항의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육이 가능할 수 있도록 대한민국 정부에 안전한 학교 시스템을 마련해 달라는 간절한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횡단보도에 신호등과 정지선이 있어야 보행자가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듯이 학교에도 모두가 안전하게 교육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교사의 의견이 반영된 교육정책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의 시민권 확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 학교 밖으로 보내는 가정통신문 / 정성식 / 2023.8.29. ⓒ창비주간논평 

어느 선생님의 공개 가정통신문을 읽고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법은 무엇이고 교육은 무엇일까요.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선진국의 시민으로 살아갈 우리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보여줄 민주주의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공교육 현장의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재량휴업일을 결정한 교장 선생님들은 징계 조치를 시행할 것이라는 내부 메일을 받았다고 합니다. 노동 현장에서 당연한 권리를 찾기 위해 선생님들은 징계까지 각오해야 한다는 현실이 비교육적이고 슬프게 느껴집니다. 
 
▲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두 교육청의 누리집  선생님의 죽음을 애도하며 공교육 정상화에 온 힘을 다하겠다는 세종특별자치시교육청의 누리집 화면과 오염수 방류로 인한 급식 논란 해명 자료를 전면에 띄운 대전광역시교육청의 누리집 화면. 보호자 입장에서 무엇이 아이들에게 더 이로운 교육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화면이다.
ⓒ 임은희
 
교육부는 9월 4일에 병가나 연가를 쓰는 교사들을 전수조사해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고 합니다. 가족돌봄휴가나 생리휴가 같은 특별휴가도 모두 검열해 배란일까지 조사할 생각인 걸까요. 막을 명분이 없는 휴가까지 틀어막으면서 교육부가 이루고자 하는 '공교육'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서울시 교육청은 교육청 주최로 서이초에서 '사망교사 49재' 추모제를 열고 유족들을 위로하겠다고 합니다(관련기사 : [단독] 서울교육청, 서이초서 '사망교사 49재' 추모제 연다... 유족도 참석 의사 https://omn.kr/25eyb).
 
▲ 교육부에서 일선 학교로 보낸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 방안> 관련 공문 법과 원칙에 근거하여 교사들의 행동을 막겠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겨져 있다.
ⓒ 임은희
 
변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선생님들과 유족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려는 노력은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할 상급기관의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변화는 다음 세대는 위한 것이지만 공감은 현재를 위한 것이니까요. 9월 4일에 병가나 연가를 쓰는 교사들을 전수조사해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는 상급기관들은 교사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있는 건지 의문입니다.

공교육 정상화를 바랍니다

불법이었지만 대한민국의 근간이 되어준 운동을 생각합니다. 3.1 운동은 불법 운동이었지만 저는 3.1 운동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라 잃은 설움을 표현하고 고초를 당했는지 선생님들께 잘 배워서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4.19 운동도 잊지 않았어요. 세종대로에 위치한 서울시의회 건물 앞에는 4.19 운동 핵심지라는 비석까지 세워져 있으니 잊을 수가 없어요. 4.19 운동도 당시에는 불법 운동이었습니다.

합법은 늘 교육적이고, 불법은 언제나 교육을 훼손한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법은 얼마든지 우선순위가 바뀌거나 합법의 범주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권의 가치는 늘 귀하고 옳은 것입니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인권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계신 선생님들을 응원합니다. 전국 8만 명 이상의 선생님들이 참여하는 <9.4 공교육 멈춤의 날>의 법적인 문제를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공감하고 이해하며 함께 손잡고 앞으로 나가는 보호자가 되고 싶습니다. 

폭염과 폭우가 몰아친 6주 동안 종로와 여의도에서 굳건하게 집회를 이어온 선생님들과 보호자들의 마음이 실상은 다르지 않음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우린 어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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