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 한달 남은 김명수, 한동훈 '가석방 없는 무기형'에 "위헌 소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띄운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형’ 도입을 둘러싸고 법무부와 김명수 대법원의 물밑 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갈등은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지난 25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한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안(형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서가 31일 공개되면서 드러났다. 이 의견서에서 법원행정처는 “선진국에서는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형에 위헌성이 있다는 판단 아래 폐지하는 추세”라며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혔다. 법무부가 지난 14일 입법 예고한 형법 개정안에 대한 공식 반응인 셈이다.
법원행정처는 의견서에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의 도입은 사형제 폐지를 전제로 논의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사형제도를 존치한 채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도입하는 것은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선을 그었다. 사형제를 폐지하지 않고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도입하면, 살인죄 아닌 기타 강력 범죄에도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 선고가 확대될 위험이 있다는 게 법원행정처의 주장이다. 실제 미국 8개 주의 경우,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 중 30%가 ▶마약범죄 ▶교통사고 등 비살인 범죄자다.
이런 대법원 입장은 “사형제 폐지와 무관하게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을 도입하겠다”는 정부·여당 입장과는 정면 배치된다. 한동훈 장관은 전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이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사형 제도와 병존하는 것이 정부의 안”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대부분의 주에서 가석방 없는 무기형을 운용하고 있고, 그 중 27개 주에서는 사형제도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28일 중앙일보 인터뷰)는 게 그 논거다. 한 장관은 사형제 폐지 문제에 대해서도 “존치되어야 한다. 응보도 형벌의 중요한 존재이유”라는 의견을 보였다.
김명수 대법원장 퇴임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입장차가 빚어지자, 법조계 안팎에선 “공교롭다”란 반응이 나오고 있다. 통상 대법원의 개정안 관련 의견서는 법원행정처장의 최종 결재로 국회 제출되지만, 논쟁적인 사안일 경우 대법원장에게도 사전에 보고된다. 익명을 원한 한 부장판사는 “‘사형제 폐지’ 여부에 관한 입장은 진보·보수 성향을 가르는 일종의 가늠자”라며 “사법 권력이 보수진영으로 넘어가는 상황에서, 김 원장이 마지막까지 색깔을 분명히 한 것 아니겠나”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김 원장은 진보성향 판사들이 만든 연구단체인 우리법연구회와 그 후신 격인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장 출신이다. 김 원장은 2017년 9월 국회 대법원장 인사청문회에서도 “법관의 오판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할 때 사형제를 없애고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과 같은 대안을 강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선(先) 사형제 폐지, 후(後)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 입장을 밝혔다.
법조계 일각에선 차기 대법원장 성향에 따라 대법원 입장이 번복될 수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이 22일 지명한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는 사법부 내 대표적인 ‘보수’ 성향 법관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대법원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만약 새로운 대법원장이 절대적 종신형과 관련해 찬성 의견을 가진다면, 대법원도 재논의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윤지원·박현준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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