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돌연 '무기한 단식' 승부수…7년전엔 인지도 확 뛰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정기국회 개막 하루 전인 31일 무기한 단식 투쟁을 선언했다.
이 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당대표실에서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를 열고 “무능·폭력 정권을 향해 ‘국민항쟁’을 시작하겠다. 사즉생의 각오로 민주주의 파괴를 막아내겠다”며 “오늘부터 무기한 단식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그는 윤석열 정부를 향해 ▶민생파괴·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대국민 사과 ▶일본 오염수 방류 반대 입장 천명 및 국제해양재판소 제소 ▶전면적 국정쇄신과 개각 단행 등 3가지를 요구했다. 이 대표는 이날 오후 1시부터 국회 본청 앞 천막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이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을 “대한민국이, 국민의 삶이 이렇게 무너진 데는 저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말로 시작했다. 그는 “퇴행적 집권을 막지 못했고, 정권의 무능과 폭주를 막지 못했다”며 “그 책임을 조금이나마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이어 홍범도 장군 논란, 해병대 수사단장 구속영장 청구 등 국정 전반이 도저히 상식적이지 않다는 판단에 따라 대표가 본인 의지로 단식을 결단했다”고 말했다.
12분 30초 분량의 회견문은 대부분 윤석열 정부 성토였다. 이 대표는 오염수 방류를 거론하며 “어민, 횟집, 수산 종사자들의 생업이 위협받고 국민 먹거리 안전이 우려되는데, 대통령은 ‘1+1을 100이라 하는 선동세력’이라고 매도하면서 국민과 싸우겠다고 한다”고 했다. 홍범도 흉상 이전 논란엔 “먹고사는 것도 어려운데 이념전쟁으로 국민 갈라치기를 시작했다”고 했고, 채수근 상병 순직사건 수사에 대해선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을 묻기는커녕 진실 은폐에 급급하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이어진 질의응답에선 “사법리스크 얘기를 하는데, 이건 검찰 스토킹”이라고 했다. 또 체포동의안 표결 전망을 묻는 말에 “여러분은 이게 구속할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시느냐”고 되물으며 구속 영장 청구의 부당성을 강조했다. 이 대표는 다만 “단식을 한다고 해서 주어진 역할을 포기하는 일은 없다. 검찰 수사 역시 전혀 지장 받지 않을 것”이라며 예정대로 검찰에 출석해 조사받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는 자신을 향한 당내 사퇴 요구에 대해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라면서도 “침소봉대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 민주당 지지자들, 또 당원들이 압도적으로 현 지도체제를 지지하지 않느냐”고 답했다. 민주당 지지율 침체에 대해선 “헌정 역사에서 대선에서 진 정치세력이 집권 세력보다 (지지율이) 높았던 사례가 있는지 한번 살펴봐 주시기를 부탁드린다”며 “자부할 일은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선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이날 국회 정문 앞에는 이 대표 취임 1년을 기념하는 지지자들의 쌀 화환이 길게 늘어섰다.
이 대표는 성남시장 시절이던 2016년 6월에도 박근혜 정부의 지방재정 개편안에 반발해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 농성을 벌였었다. 당시 김종인 민주당 비대위 대표의 만류로 11일 만에 단식을 중단했지만, 이를 계기로 인지도가 크게 올랐다.
당 안팎에선 이 대표의 단식을 두고 여러 해석이 나온다. 민주당 관계자는 “검찰 소환조사 이후 구속영장 청구가 이뤄진다는 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 아닌가”라며 “이 대표의 단식은 현 정부와 가장 격렬히 싸우면서 당내 결집을 최대한 도모하기 위한 승부수”라고 말했다. 또 다른 민주당 관계자도 “단식 농성이 장기화하면 검찰이 이 대표에게 어떤 혐의를 걸든지 정치 탄압의 피해자로 비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내 비명계의 반응은 냉랭했다. 비명계 한 의원은 “정기국회 시작하면서 단식을 시작하면 의원들은 어쩌라는 것이냐”고 지적했고, 또 다른 비명계 의원도 “체포동의안 표결 때 중도층 의원 이탈을 막기 위한 노림수이자, 자신의 구속을 막기 위한 꼼수”라고 했다.
여당은 "생뚱맞다" 등의 냉소적 반응이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민생을 챙기고 국민의 삶을 돌봐야 하는 정기국회 개회를 앞두고 웬 뜬금포 단식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도 “과반 의석을 갖고도 야당의 역할과 책임을 제대로 하지 못해놓고 이제 와서 생뚱맞게 무슨 단식이냐”라며 “단식이 아니라 사퇴가 답”이라고 말했다.
이날 예결위 회의 참석차 국회를 찾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개인 비리 수사에 단식으로 맞서겠다는 것이 워낙 맥락 없는 일이어서 국민이 공감할지 모르겠다”며 “이 대표가 (이전에) ‘마음대로 안 된다고 단식해서는 안 된다’고 직접 말씀하셨다”고 지적했다.
앞서 이 대표는 2016년 10월 이정현 당시 새누리당 대표의 단식을 겨냥해 “마음대로 안 된다고 해서 하는 집권여당 대표의 단식은 저항이 아닌 땡깡이나 협박”이라고 꼬집었다.
위문희ㆍ김정재 기자 moonbrigh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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