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 논란 피하는 與…일각 “文 주류교체 시도는 지적해야”
육군사관학교의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논란을 두고 국민의힘 반응은 미묘하다. 한덕수 국무총리 등 정부 인사들이 연일 확고한 목소리를 내는 것과 달리 언급 자체를 꺼리는 눈치다.
김기현 대표 등 지도부는 31일 전남 순천만 국제 정원 박람회를 둘러본 후 현장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열었다. 최근 전북 부안 새만금 잼버리 사태와 광주 정율성 역사공원 논란을 거치며 전북도청, 광주시청과 충돌했던 국민의힘으로선 호남 끌어안기에 나선 셈이었다. 김 대표는 “박람회를 가장 모범적으로 개최하고 있는 순천은 도시 발전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다”며 “순천만 박람회처럼 지방자치단체가 잘 기획하고 좋은 성과를 낸 데는 더 많이 지원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게 형평에 맞다”고 말했다. 이어 “전남 지역 경제 살리기에 많은 관심을 쏟겠다”며 “진정성이 도민 마음에 인정받을 수 있을 때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호남에 대해선 “고향과 같은 편안함이 느껴진다”고도 했다.
반면 최근 여야 정쟁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홍범도 장군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비슷한 시각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덕수 총리가 “주적과 전투해야 하는 군함의 이름을 소련 공산당원 자격을 가진 사람 이름으로 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며 해군의 ‘홍범도함’ 개명 필요성을 주장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이날 최고위회의엔 이준석 전 대표와 가까운 천하람 순천갑 당협위원장도 참석했다. 천 위원장은 최근 각종 라디오 인터뷰에서 홍범도 장군 논란과 관련해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어 내면서 ‘민생을 최우선하겠다’고 하면 국민이 공감하겠느냐”며 정부를 비판해왔다. 이날 회의에서도 “국민의힘은 과거로 돌아갈 게 아니라, 미래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 지도부 관계자는 “정율성 논란 때까지만 해도 싸울 명분과 실익이 있었지만 홍범도 장군은 다르다”며 “처음 흉상 이전 계획이 나왔을 때부터 고민이 컸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25일 흉상 이전 계획이 처음 알려진 뒤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와 원내대책회의 공개 발언, 대변인단 논평에서 홍범도 장군 문제는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실제 당내에선 이 문제가 내년 4·10 총선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기류가 우세하다. 김웅(서울 송파갑) 의원은 지난 30일 CBS라디오에서 “홍범도 장군은 교과서에 나온 분”이라며 “도대체 교과서와 싸워서 어떻게 이기느냐”고 말했다. 또 이념전이 커지는 데 대해서도 “중도층은 아무 관심이 없다”며 “내년 총선에 좋은 영향을 안 줄 것”이라고 말했다. 홍준표 대구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등도 비판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다만 이같은 기류와 별개로 문재인 정부가 홍범도 장군 흉상을 육사 교정에 설치한 데 대해선 비판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강민국 수석대변인은 31일 기자들과 만나 “왜 이전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왜 그곳에 설치됐느냐가 문제”라고 말했다.
2019년 문재인 정부 때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가 북한 정권 수립에 기여한 약산 김원봉 선생에게 서훈을 주려는 시도를 당시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막은 지상욱 전 의원은 “당시 김원봉 서훈 추진은 문재인 정부가 대한민국 주류 교체를 통해 정체성의 재정립을 시도한 것으로 당시 드러났다. 홍범도 흉상 설치도 그런 배경에서 이뤄졌을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공산주의 사상을 가졌던 인물에 대한 평가는) 남북이 평화로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통일 이후에 국민적 합의를 거쳐서야 가능하고, 현 체제에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말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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