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사이 낀 K-반도체…“일단 ‘인재’부터 챙겨라”

이희권 2023. 8. 31.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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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4월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서밋에서 웨이퍼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자국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막대한 보조금 지급을 내건 가운데 국내 반도체 산업 리더십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재 육성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무역협회는 31일 발간한 ‘미국과 EU의 반도체 산업 육성 전략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이 2025년에서 2030년 사이 본격적으로 재편될 것”이라 전망하면서 공급망 우위 선점을 위해 정책 지원 강화 및 인재 확보가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반도체가 지난 세기 석유와 같은 ‘21세기 전략물자’로 떠오르면서 세계 각국은 이미 생산 공급망을 자국 내에 두기 위한 총성 없는 전쟁에 돌입했다. 특히 미국과 일본, 중국, 네덜란드로부터 반도체 소재·부품·장비를 들여와 다시 중국, 미국 등으로 수출하는 반도체 공급망의 제조 허브에 있는 한국의 전략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상황이다.

정근영 디자이너


미국과 EU는 반도체를 국가 안보의 핵심 자산으로 두고 자국 위주 공급망을 강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은 물론 제3국 수출 통제까지 나섰다. 특히 첨단 반도체 산업을 키우려는 중국에 대한 견제 움직임이 구체화하고 있다.

무협은 미국의 보조금 혜택은 국내 기업에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 중국과 관계를 축소하라는 압박으로도 작용해 우리 기업이 딜레마에 봉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각각 2171억 달러, 150억 달러를 향후 10년 동안 미국 내 반도체 설비에 투자할 예정이다. 모두 미국 칩스법(반도체지원법) 적용 대상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5월 경기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함께 웨이퍼에 서명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양산에 돌입한 3나노미터(nm·10억 분의 1m) 공정 웨이퍼다. 뉴스1


이 경우 칩스법의 보조금 지급 요건인 ‘대(對)중국 투자 제한’이 결국 한국 기업들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 반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 40.4%로 대만(30.4%), 일본(23.7%), 미국(14.7%)보다 높다. 이미 인텔·마이크론 등 미국 기업들은 중국 공장을 모두 매각했다. TSMC는 상하이와 난징에 팹(반도체 제조 공장)을 두고 있지만 삼성과 SK하이닉스만큼 생산 비중이 높지 않다.

초과이익 환수 조항도 우리 기업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력 제품인 메모리 반도체는 경기 영향에 민감하고 변동성이 커 현금 흐름을 정확하게 예측하기가 어렵다. 봉우리가 높은 만큼 골짜기도 깊다. 이 경우 대규모 적자가 났을 때는 별다른 보상이 없지만 반도체 호황 시기 발생한 추가이익의 상당 부분을 칩스법에 따라 다시 미국 정부가 가져가기 때문에 메모리 반도체 기업에 더 불리한 구조라는 지적이다.

정근영 디자이너


보고서는 “우리 기업이 보조금과 세액 공제를 동시에 신청할 의무는 없다”면서 “항목별 득실을 평가해 선택적으로 신청하는 전략도 가능할 것”이라 조언했다.

무협은 결국 전 세계 반도체 공급망 재편의 소용돌이 속에서 지금의 우위를 살리기 위해서는 우리 정부도 정책적 지원과 인력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EU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급증하는 생산역량을 따라가지 못해 인재 공급이 제때 이뤄지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정아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주요국의 반도체 대규모 설비 증설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기업의 핵심 인재 확보와 안정적 인력 공급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며 “정부와 반도체 업계는 이제 인력 양성을 위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희권 기자 lee.hee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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