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창 역도의 아버지' 윤상윤 감독 정년퇴임하던 날 [복작복작 순창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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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육상 기자]
▲ 왼쪽 기둥을 짚은 서희엽 선수, 맨오른쪽 흰티셔츠를 입은 이배영 선수 등 제자들이 윤상윤 감독(가운데 양복 차림) 정년 퇴임을 축하했다. |
ⓒ 최육상 |
순창고등학교 여자 역도팀은 지난 2000년 부산에서 열린 제81회 전국체육대회 역도 경기에서 금메달 14개, 은메달 1개 획득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당시 역도는 모두 7체급이었지만 대회 규정은 한 시·도에서 남·녀 각각 5체급, 5명 선수만이 출전할 수 있었다. 순창고 여자 역도팀은 전북 대표로 5체급에 5명이 출전해서 체급별 금메달 3개(인상, 용상, 합계), 5체급에 걸린 15개 금메달 중에서 무려 14개를 따냈다. 은메달 1개도 기록은 동률이었는데 아깝게 몸무게 측정에서 밀린 것으로 사실상 출전한 전 체급 금메달 석권이었다.
순창고 여자 역도팀은 만장일치로 대회 최우수선수상(MVP)을 수상했다. 개인이 아닌 단체가 최우수선수상을 거머쥔 것은 전국체육대회 역사상 최초의 기록으로 아직까지 깨지지 않고 있다.
▲ 제자인 이배영·서희엽 전 역도 국가대표 선수가 윤상윤 감독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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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감독은 퇴임사에서 “저는 (같은 사립재단인) 순창북중학교와 순창고등학교를 두 번씩 왔다 갔다 하며 32년간 체육교사로서 근무했다”면서 “윤상윤 하면 생각나는 게 바로 역도부”라고 과거를 회상했다.
“제가 1991년도에 순창북중학교에 부임해 1년 후인 1992년도에 역도부를 창단했어요. 역도장도 없고, 기구도 없고, 선수도 없어… 말 그대로 ‘맨땅에 헤딩’ 했어요. 하지만 창단 1년 만인 1993년 제22회 전국소년체육대회에서 우리 선수 2명이 금·은·동메달을 따게 됩니다. 1994년 제23회 대회에서는 여기 이배영 선수(당시 중3)가 당당히 3관왕을 했어요.”
윤 감독이 지도한 순창북중 역도부가 각종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자 인구 3만여 명에 불과하던 작은 시골농촌 순창군에 역도 바람이 일었다. 1994년 순창고등학교, 1996년 순창여자중학교 역도부가 차례로 창단됐다. 뒤이어 순창중·금과중·순창중앙초·순창초 등에서도 역도부가 창단되며 순창군에서는 초·중·고 역도부가 모두 운영됐다. 또한 2004년에는 순창군청이 실업역도팀을 창단하고 순창군 차원에서 역도 육성 정책을 펼쳤다.
윤상윤 교사는 순창여중 역도부를 창단한 정인영 교사와 함께 순창 역도 신화를 개척했다. 정인영 교사는 전북 진안 마령중학교 재직 시절 ‘작은 거인’ 전병관 선수(1988년 서울 올림픽 은메달,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를 길러낸 명조련사였다. 정 교사는 순창여중 역도부 창설 1년 만에 서여순·이현정·손지영 등 국가대표 선수를 발굴했지만 2000년 8월 뇌출혈로 49세 나이에 안타깝게 순직했다.
▲ 순창고등학교 재학생들이 윤상윤 교사의 정년 퇴임을 축하해 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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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도 불모지 맨땅에 헤딩… 하지만 성공 자신”
윤 감독에게 역도 불모지 순창에서 역도부를 창단한 이유를 물었다.
“제가 전남체고, 조선대 체대, 상무에서 역도 선수를 했어요. 광주에서 역도 지도자 생활도 했고요. 순창북중에 부임해 이사장님께 역도부를 창단하자고 말씀드리고 곧바로 추진했죠. 맨땅에 헤딩하는 격이었지만, 순창에서 역도부를 성공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죠. 체육시간에 1학년 학생들을 테스트해서 3명을 선발하고 곧바로 창단했죠.”
윤 감독은 처음 선발한 선수 3명에 속하지 않았던 중학교 1학년 이배영 선수와의 인연에 대해 “운명 같은 만남”이라고 회상했다.
“학교 정문 쪽에 있는 역도 창고 앞에서 어느 날 머리를 식히고 있자니 멀리서 한 학생이 걸어오는데 한눈에 ‘어?’라는 느낌을 받아서 불러세웠죠. 초등학교 4학년 학생 키나 됐을까, 몸무게도 28kg밖에 안 됐어요(이배영 선수 본인은 130cm, 32kg으로 기억). 역도를 시켜보니까 ‘됐다’ 싶더라고요. ‘왜 체육시간 테스트 때 못 봤냐’고 물으니까, 하필 그때 ‘주번으로 교실에 있었다’고 해요. 극적인 만남이었죠.”
윤 감독은 순창고 여자 역도팀이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웠던 2000년 전국체육대회 당시를 생생하게 떠올렸다.
“출전 제한 때문에 5체급에 출전했지만, 사실 3관왕 할 수 있는 선수가 또 있었어요. 아무튼 금메달 14개, 은메달 1개를 따내고 순창에 왔는데, 우리 팀이 최우수선수상을 받게 됐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개인이 아니라 팀이 최우수선수상을 최초로 받기 때문에 선수들 모두 참석해야 한다고 해서 정신없이 부산으로 갔어요. 그랬더니, 아 글쎄… 방송 3사에서 수상장면을 생중계했는데… 아마, 학생 역도팀이 방송 3사 9시 뉴스에 동시에 나온 경우는 없을 거예요.”
▲ 윤상윤 감독 감사패. 제자들은 “손수 차림 음식과 사랑으로 이끌어주신 덕에 체력과 지성을 겸비한 훌륭한 선수 및 지도자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라고 감사 문구를 적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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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창 학생 역도부의 이 같은 감동 실화는 지난 2009년 <킹콩을 들다>라는 영화(감독 박건용, 배우 이범수·조안·이윤회·최희서 등)로 제작됐다. 작은 시골 마을 어린 선수들과 지도자들의 열정이 만들어낸 기적을 담고 있다. 영화 속 이지봉 선생(이범수 역)은 윤상윤 교사와 정인영 교사를 함께 섞어놓은 인물이다.
<킹콩을 들다>에 깜짝 출연하기도 했던 이배영 현 국가대표 역도팀 코치는 “선생님을 만날 때까지 역도가 뭔지 몰랐는데, 역도를 접하게 해 주셔서 올림픽 무대도 밟아보고 메달도 딸 수 있었다”면서 “어렸을 때 선생님께서 손수 밥과 음식을 해주시던 게 너무 기억에 많이 남아서… 저희 제자들이 그 내용을 심지어 감사패에 담을 정도로 선수들을 위해 정말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회상했다.
서희엽(현 경북개발공사) 선수는 “선생님이 안 계셨다면 지금의 저도 없었을 텐데… 가장 후회되는 게 평소 선생님을 자주 못 찾아뵈고 연락 못 드린 점”이라고 죄송한 마음을 전하면서 “우리나라 역도를 위해서 정말 크게 이바지하신 분으로, 정말 존경하는 선생님으로 제 마음속에 영원히 남을 것 같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윤 감독은 “역도 덕분에 정말 행복한 교직 생활을 했다”면서 “‘그라제 아닙니까, 그라제’ 저는 이 ‘그라제’의 유행어를 남기고 떠난다”고 마지막 인사를 전했다.(※‘그라제’는 ‘그렇지’라는 ‘강한 긍정’의 전라도 사투리)
“오늘 퇴직한다고 거의 뜬눈으로 날을 샜는데, 아침에 창문을 열어보니까 하늘이 맑고 화창하니 퇴임을 축하해 주는 것 같아 가슴 뿌듯하고 행복합니다. 우리 선생님들, 또 우리 제자들 이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이 은혜 정말 잊지 않고 평생 간직하겠습니다. 모두 행복하십시오.”
“실력보다 인성을 갖춰야 정말 훌륭한 선수”
전국에서 모인 수십 명의 제자는 퇴임식이 끝난 후 한 식당에서 윤 감독 환송 자리를 마련했다. 제자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고마움과 아쉬움을 함께 담아 윤 감독에게 앞서거니 뒤서거니 감사의 술잔을 건넸다. 어둠이 진하게 내려앉을 때까지 회식 자리를 가진 제자들은 윤 감독에게 큰절을 올리며 환송식을 마쳤다.
한 제자는 “선생님께서 실력도 실력이지만, 선수 이전에 무엇보다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인성과 삶의 예의범절을 중요하게 가르치셨다”면서 “인성을 갖춘 뒤 실력을 쌓아야 진짜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수십 년간 한결같게 강조하신 덕분에,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이렇게 제자로서 선후배들이 함께 모여 선생님을 기쁘게 환송해 드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배영 코치는 “역도를 처음 배울 때부터 선생님께서 역도는 무거운 것을 드는 운동이기 때문에, 운동선수로서 명예를 스스로 실추시키면 안 된다고 끝없이 강조하셨다”면서 “그런 정신 수양이 바탕에 깔렸기 때문에 다소 거친 운동이었지만 선후배 간에 끈끈한 정을 쌓으면서 즐겁고 행복하게 운동할 수 있었다”고 학창 시절을 회상했다.
▲ 환송식을 마친 제자들이 윤상윤 감독 부부에게 큰절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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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전북 순창군 주간신문 <열린순창> 8월 30일자에 보도된 내용을 수정, 보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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