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핏하면 국민 상대로 한판 붙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버릇 [안호덕의 암중모색]
[안호덕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28일 인천에서 열린 2023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 만찬에서 발언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지난 28일 국민의힘 연찬회에 참석한 윤석열 대통령의 인사말은 투쟁 선포식을 방불케 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반대하는 야당과 국민을 1 더하기 1을 100이라고 우기는 세력이라고 규정했다. '이런 세력'과 싸울 수밖에 없다는데, 무엇을 위해서 누구와 싸우겠다는 것인가? 대통령의 격한 포고(布告)를 보며, 메우기 힘든 거리감마저 느껴진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는 '과학적인 결정'이고, 방류 반대는 '1+1도 모르는 무지의 소치'이거나 이재명 대표를 지켜내기 위한 '괴담 정치'라는 것. 이것이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도식이다.
▲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우리바다 지키기 검증 TF 긴급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 남소연 |
지난 23일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달 국제원자력기구(아래 IAEA)에서 방류 계획이 국제안전 기준에 부합한다는 검증 결과를 밝힌 바 있고, 우리 정부도 세밀한 검증을 거듭해 방류 계획이 기술적으로 문제없는 것으로 확인했다"라며, 더불어민주당을 향해서 "또다시 반일과 공포마케팅으로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대통령과 고위 관료, 국민의힘 지도부까지 한결같이 주장하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의 과학적 검증 근거는 빈약하다. IAEA 보고서가 국제안전 기준에 부합한다는 결론을 내렸으니까 방류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건, 국제기구 IAEA라는 이름을 내세우는 권위 마케팅일 뿐 과학적 근거라 할 수 없다. IAEA는 일본이 제공한 자료에 의존해 안전성을 판단했으며, 다핵종제거설비(ALPS)의 정화 능력에 대한 검증 평가도 아예 배제했다. 또한 전문가와 환경단체들은 IAEA가 장기적으로 해양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IAEA 스스로 '회원국은 보고서의 사용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결과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라고 명시한 결론, 일본이 IAEA에 분담금을 3번째로 많이 낸다는 정치적 관계를 배제하더라도 IAEA의 판단이 완전한 과학적 검증을 거쳤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러므로 윤석열 정부가 IAEA의 검증 결과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내맡긴다는 건 도박 같은 위험천만한 선택이다. 숱한 의문과 모순을 안고 있는 보고서임에도, 국제기구인 IAEA의 보고서니까 무조건 믿어야 한다는 건가?
'우리 정부가 세밀한 검증을 거듭해 방류 계획이 기술적으로 문제없다'는 말도 그렇다. 지난 5월 21~26일 일본을 방문한 시찰단은 민간 전문가를 배제한 채 구성되었으며 명단과 구체적인 일정조차도 돌아올 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다. 시찰단의 소극적 태도와 일본의 시찰 활동 제한으로 인해 오히려 방류 결정에 들러리를 섰다는 비판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한덕수 국무총리는 오염수가 방류된 날, '정부를 믿고, 과학을 믿어달라'라고 말했다. 믿어달라는데 믿음이 가지 않는다. 믿을 구석이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 말부터 한국 연구진이 개발한 'LK-99'라는 물질이 '초전도체' 성질을 갖고 있는가에 대해 전 세계적 관심이 쏟아졌다. 세기적 발견이라는 흥분도 있었지만, 과학계에선 초전도체로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과학적 검증은 이런 것이다. 누구나 정보를 공유하고 의심할 수 있어야 하고, 최초의 발견자는 어떠한 의혹에도 무한히 대답할 의무를 진다. 마찬가지로, 과학적 검증의 영역에서는 IAEA의 주장이라 해서 의혹에 답할 의무가 없어지는 것도, 주장의 신빙성이 더해지는 것도 아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한다고 해서, 당장 영화에서처럼 바다에서 괴물이 출몰하고, 물고기들이 줄줄이 죽어 나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래서 안전하다'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방사능 오염이 인간과 환경에 치명적 악영향을 끼친다는 건 오랫동안의 축적된 과학적 산물이다. 반면 오염수 해양 방류가 안전하다는 건 과학적으로 입증된 적이 없다.
그래서 IAEA나 윤석열 정부가 설혹 과학적 검증을 시도했다 하더라도 '안전하다'가 아니라 '안전을 완전하게 확인하지 못했다'이거나 '미래의 안전을 단정적으로 예단할 수 없다' 정도가 맞다. 그래서 IAEA나 윤석열 정부는 오염수 해양 방류보다 더 안전한 계획을 요구했어야 했다. 정치적 결정이 아니라 과학적 결정이었다면 말이다.
▲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를 비롯한 주요 당직자들이 29일 오후 연찬회를 마친 뒤 인천 중구의 한 수산물 전문식당에서 오찬 식사를 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윤 대통령은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우리(국민의힘)가 지난 대선 때 국정운영권을 가져오지 않았더라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됐겠냐, 아찔한 생각이 많이 든다"라고 말했다. 여당 연찬회에서 오가는 덕담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국민이 날마다 겪는 아찔함을 안다면 이런 소리 함부로 못 한다.
TV만 켜면 목숨이 오가는 강력 사건이 나오고, 경제는 내수 수출 어느 곳에도 숨 쉴 자리조차 보이지 않는다. 지하차도를 통제하지 않아 무고한 목숨들이 익사 당했고, 세계 청소년들이 모인 자리에서 대한민국은 손가락질 대상이 됐다. 그런데 법적 책임은 고사하고 도의적 책임조차 지려는 정치인도 없다. 윤 대통령 입장에선 듣기 싫은 이야기겠지만, 이렇게 무능하고 공감 능력조차 없는 정부는 처음 본다. 대통령이 TV에 나올 때마다 아찔함을 느낀다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이 정부에서 '협치'는 바라지도 않지만, 무엇을 위하여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라도 제대로 알았으면 한다. 동해를 일본해로 바꿔도, 어민 생계와 국민 안전이 걸린 바다에 오염수가 방류되어도 말 한 마디 못하다가, 화풀이하듯 국민에게 눈 치켜뜰 일이 아니다. 싸움의 상대가 오염수를 방류해 전 세계 안전을 위협하는 일본 정부인지, 이를 걱정하고 규탄하는 국민인지 제대로 알라는 말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국민 10명 중 8명을 '1 더하기 1을 100이라 거짓말하는 세력'으로 매도해가며 싸울 수밖에 없다면 그건 대통령 본인의 선택이다. (관련 기사: 국민 78%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시 우리 해양·수산물 오염 걱정", https://omn.kr/24lub)
그러나 알아야 할 게 있다. 걸핏하면 국민을 상대로 싸워보자는 윤석열 정부의 그 버릇, 언젠가는 큰 화를 부를 수도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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