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혜의 트렌드 2023]너무 많은 정보에 선택 고민…'시성비' 따지는 소비자
가장 최적화된 선택지 추구
콘텐츠 선택 실패하기 싫어서
검색만 하다가 시청 포기하는
'넷플릭스 증후군' 현상 생겨
옛날 드라마 등 다시보기도
재미 검증돼 실패 안하기 때문
"넷플 뭐 봄?"
요즘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쉽게 볼 수 있는 넷플릭스의 광고 캠페인이다. ‘그러게, 오늘은 뭐보지?’ 해당 광고를 보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면, 당신도 넷플릭스 증후군일 가능성이 높다. 넷플릭스 증후군이란 관람할 작품을 결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현상 혹은 실제 콘텐츠를 보는 시간보다 무엇을 볼지 검색하는 시간이 더 늘어나 시청을 포기하는 현상을 말한다. 커다란 지하철 광고판에 나열된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 라인업은 화려하지만 선택지가 많을수록 결정은 더 어렵다.
과연 넷플릭스만일까. ‘트렌드 분석론’ 수업 시간에 ‘왜 요즘 유튜브에서 옛날 드라마와 옛날 예능 다시보기가 인기일까’에 대한 이슈가 언급된 적이 있다. 당연히 오래된 것에 흥미를 느끼는 뉴트로 현상 중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학생들에게서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실패하기 싫어서요."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에 선택지는 많지만 대부분 검증되지 않은 것들이라 어떤 게 재미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무한도전’처럼 세대를 거쳐 재미가 보장된 콘텐츠는 실패할 확률이 적다는 이유였다. 그제야 알았다. 넷플릭스 증후군을 왜 겪는지. 바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시 짬을 내어 즐기는 시청 시간을 재미없는 콘텐츠로 채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실패하기 싫어서 고민의 시간이 길어진 셈이다.
실패를 피하고 싶은 소비자들의 고군분투 전략이 눈에 띄는 요즘이다. 이렇게 말하면 혹자는 되물을 것이다. 실패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맞다. 실패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최근의 변화는 인생의 목표나 진로와 같은 큰 결정이 아니라 아주 사소한 문제에 있어서도 가장 최적화된 선택지를 추구한다는 데 그 차별점이 있다. 특히 소비에 있어서 그렇다.
‘오늘 뭐 먹지?’ 콘텐츠만큼 실패하기 쉬운 영역은 메뉴 선택이다. 2022년 12월 기준, 배달의 민족 애플리케이션(앱)에 등록된 메뉴의 수는 무려 2683만개가 넘는다. 선택지가 많을수록 실패의 확률은 높게 마련이다. 소중한 한 끼를 후회하게 될까 봐 많은 선택지 앞에서 우리는 고민하고 망설인다. 그렇다면 이 많은 메뉴 중 실패를 최소화할 수 있는 선택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대표적으로 ‘쩝쩝박사’라 불리는 전문가를 찾아 나서는 방법이 있다. 전문가가 반드시 유명 요리학교를 졸업한 셰프일 필요는 없다. 때로는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이, 때로는 그 가게에서 일하는 알바생이, 때로는 우리 동네 알짜 맛집을 알고 있는 인플루언서가 나에게 최적의 음식을 추천하는 전문가로 변신한다. 일종의 음식 큐레이션인 셈이다. 최근 유튜브나 틱톡에서는 ‘서브웨이 알바생이 추천하는’ 식의 알바생 ‘꿀조합’ 콘텐츠가 많이 보인다. 수많은 옵션 앞에서 당황한 소비자에게 알바생의 추천은 상황에 맞춘 정답이 된다. 배달앱에서도 후회 없는 선택을 위한 추천 메뉴가 인기다. 최근 배달앱에서는 ‘우리가게 대표메뉴’ 혹은 ‘사장님 추천 세트메뉴’와 같은 시그니처 메뉴를 내세우는 가게가 많아지는 추세다. 실제 데이터로도 일반 메뉴와 대비해 대표 메뉴를 클릭한 소비자의 수가 더 많다고 한다.
리뷰도 중요하다. 최근 소비자들은 나름대로 리뷰를 판단하는 기준이 있는데, 평점과 리뷰의 개수가 핵심이다. 평점이 좋은 식당을 찾는 것만큼 믿거삼도 중요하다. 믿거삼이란 믿고 거르는 3점대 식당·카페를 뜻한다. 즉, 평점이 낮은 식당을 선택지에서 지우는 게 핵심이다. 따라서 최근에는 배달앱의 검색 조건을 ‘평점 4.5점 이상’으로 설정한 뒤 검색하는 경우도 많다. 리뷰와 비슷한 맥락으로 실패를 줄이기 위해 줄 서는 식당을 선택하기도 한다. 남들이 줄을 설 정도면 맛있을 것이라는 군중심리에 기대기 때문이다. 테이블링 등 줄서기 앱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중 스트릿캐스터가 흥미롭다. 스트릿캐스터는 날씨를 알려주는 기상캐스터처럼 플랫폼 사용자들이 실시간 핫플레이스 정보를 알려주는 플랫폼이다. 예를 들어 내가 A라는 식당에 가고 싶은데 웨이팅이 너무 많을 것 같다면 직접 가보지 않고 스트릿캐스터에서 식당 앞 줄서기 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식당에 직접 갔다면 시간을 허비할 수도 있을 상황을 예방하는 것이다.
콘텐츠를 선택하고 저녁 메뉴를 고르는 등 사소한 선택에서도 우리는 왜 실패를 회피하고 싶어 하는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선택지가 많기 때문이다. 미국의 벤처투자가이자 작가인 패트릭 J. 맥기니스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확산과 지나친 풍요가 결합되면서 ‘포보(FOBO) 증후군’이 등장했다고 지적한다. FOBO란 Fear OF Better Options의 약자로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뜻한다. 맥기니스에 따르면 아마존에서 신발끈 하나를 검색해도 2000개가 넘는 상품이 뜨고, 스타벅스에서는 8만개의 음료 조합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러한 ‘선택의 풍요’가 다른 사람들이 자신보다 더 나은 선택을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게 하고, 최종 결정까지 더 오랜 시간을 허비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막상 선택을 한 뒤에도 미련은 계속된다.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옵션이 많아진 만큼 시간의 가치가 높아졌다는 것도 중요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대표 칼럼니스트 나카무라 나오후미는 디지털 기술이 인간을 편리하게 만든 동시에 정보의 양을 폭발적으로 늘렸다고 분석한다.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진 반면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현대인은 최적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선택해야 할 옵션도 많고, 경험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시간이 제한적이니 실패에 대한 기회비용이 높아진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일본에서는 타이파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타이파란 타임퍼포먼스의 줄임말로, 시간 대비 성능, 즉 시성비를 의미한다.
앞으로 소비자들은 점점 더 효율적인 시간활용에 대해 고민할 것이다. 한정된 시간 안에 최대의 효율을 내기 위해 작은 실패도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가 내심 씁쓸하지만 한편으로 소비자의 시간을 관리하고 실패를 줄여주는 작은 전략들이 필요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양한 옵션의 늪에 빠진 소비자를 구해 줄 시장의 반응이 기대되는 시점이다.
최지혜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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