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랭이마을 어머니들의 롤모델이 된 제주할망들

박향숙 2023. 8. 31.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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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연 작가의 <할머니의 그림수업> 을 함께 보다

[박향숙 기자]

봄이 시작되던 어느 날, 말랭이마을 어머님들은 특별한 할머니들을 만났다. 선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 제주 '선흘마을' 할머니들이 외치는 해방의 소리를 직접 들었다. 제주의 여덟 할망들이 그림그리기라는 수업으로 해방을 외쳤던 그 현장으로 가서 함께 얼싸안고 얘기했었다.

[관련기사]
말랭이마을사람들의 해방과 자유를 위한 첫 발 https://omn.kr/22sgm

말랭이 마을 어른들이 제주도를 찾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올해 군산 문화도시 사업으로 마을에 글방을 만들어 문해수업을 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대부분 초등 중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분들이어서 글자를 바로 쓰고 말하기에 대한 배움의 열망이 컸다. 작년 마을 사람들의 인터뷰 에세이를 준비하면서 마을 어머님들의 1등 바람이 기초문해교육이었다.

동네글방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마을 어른들보다 평균 10살이나 많은 제주 할머니들의 활동은 매우 선진적인 모델이었다. 글자를 익히고 당신들의 마음을 끌어내어 짧은 글짓기를 통해 시나 산문을 쓰는 것이 목표였지만, 그림 또한 최고의 표현 도구임을 실제로 보여드리고 싶었다. 이 특별한 인연을 쌓고 온 후 말랭이 어른들은 6개월간의 문해수업을 마쳤다.
 
▲ <할머니그림수업> 책, 최소연작가 제주할망 8명의 그림수업을 지도한 최소연 작가의 책
ⓒ 박향숙
 
얼마 전에는 모 방송국에 출연한 제주 할망들의 얘기를 듣는데 너무 신기했다며 다시 한번 그분들을 만나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책 <할머니의 그림수업>(최소연 작가)을 보여드렸다. 제주 갔을 때 어떤 그림이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느냐고 물었더니 '외양간 소'와 '참외' 그림을 떠올렸다.
혼자는 외롭고 둘이는 안 외롭고 참외 둘이 좋아해
- 고순자 2022.7.29.
 
▲ 고순자할망의 올레미술관 참외 이야기, 낭(나무)이야기 등을 실감나게 그린 할머니의 보물창고
ⓒ 박향숙
 
제주 고순자 할망(1939년생)가 그린 그림 <참외 둘이 좋아해> 속에 써 있는 말이다. 나무판 위에 초록 채색을 하고 노란 둥근 참외 둘이 나란히 붉은 미소를 짓던 그림이었다. 

할머니의 농기구 창고에는 사방으로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그림 그리기를 가장 늦게 시작했는데, 매일 수 개의 작품들을 그려서 가장 놀라운 발전을 한 할머니라고 최 작가가 설명했었다. 할머니 창고 앞에 있던 패적낭을 그린 그림은 참으로 놀라운 작품이었다.

<할머니의 그림수업>을 쓴 최소연 작가는 미술가로서 제주 할망들을 그림 세계로 안내한 정말 기발하고 유별난 교육가이다. 너무 평범해 보이는 사람과 사물도 왠지 최 작가를 만나면 마술처럼 변신할 것 같은 믿음이 생긴다. 실제로 제주 할망들의 삶이 그렇게 변했다. 할망들의 부캐는 '그림작가'가 되었으니 말이다.

제주 할망이 보여준 첫 번째 전시장, '소막미술관'은 강희선 할망(1937년생)이 소를 키우던 외양간이었다. 낡고 우중충한 소막의 벽에 그림을 그려보라는 최 작가의 제안에 '소막이었으니까 소를 한번 기려불까?' 해서 시작했었다고 했다.

우리 소막에서 소를 하나 허여단 / 놈의 밭 풀팔이허영 / 생 밭을 갈앙 돈을 벌엉 / 소를 호 나 두 개 사다가 / 새끼를 번성허영 / 이젠 성공허였쭈제 / 이젠 큰 아덜이 소를 질렁 / 너미 고마운 소 - (강희선 2022.4.6.)
 
▲ 강희선 할망의 소막미술관 소를 키우던 외양간이 미술관으로 변신, 소 이야기그림으로 낡은 소막이 화장했다.
ⓒ 박향숙
 
'집안에 몰래 숨겨놓은 인상파 화가라도 있는 걸까요?'라고 설명을 붙인 오가자 할망은 옷의 무늬를 세밀화로 그린 작품들이 많았다. 천의 직물 한 올 한 올이 색을 타고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이 살아 움직이는 화법이 독특했다. <노란외투>, <찐분농 반바자마>, <남색 꽃무니 남방> 등을 표현한 의류와 <연분홍 양말에 반찍이 붙였지>라는 작품이 눈에 선하다.

특히 오가자할망(1940년생)은 당신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있었다.

엄마 보고 싶다 / 엄마는 나 보고 싶지 않아 / 엄마 나 머하고 있는지 알아 / 어제 저녁에 보리콩 / 울 안에 시월딸에 심은거 / 따서 삶아 먹었습니다 / 껍질 속에 알맹이 다섯 개 / 까 먹었습니다 / 여러 개 까 먹고 / 나는 엄마 생각하면서 눈물이 납니다 - 오가자 2022.5.20.
 
▲ 오가자할망의 창고미술관 옷감류와 어머니 이야기를 담은 그림으로 창고와 앞마당에 작품이 가득.
ⓒ 박향숙
 
최 작가는 오가자 할망의 그림에 대하여 이렇게 표현했다.

날개를 쫙 펴고 비상하는 새를 그린 다음 '홍중옥 엄마 보고 싶다. 5월 20일 오가자'라고 쓰던 할머니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연필을 내려놓자 밥상 정중앙에 앉아 있는 새 뒤로 노란 광채가 일었어요. 저는 그 새가 오가자 할머니로 보였습니다. '엄마' 하고 고함 지르는 할머니가 아이처럼 보였습니다. 새 그림 이후 할머니는 <엄마한테 보내는 그림, 보리콩>을 완성하고 글을 썼는데, 그림 때문에 '울어진다'라면서 붓을 놓지 못하셨습니다. - 145~147p 내용 중
  
그림으로 진짜 해방을 맞은 제주할망들은 그림 그리는 마음을 이렇게 전했다.

'뭔 나무판을 주기에 그렸지. 종이가 있으니 그렸지'
'마음속에 말이 그림을 배우면 조금씩 나올 것 같아'
'할망 친구들이 같이 그림을 그리니까 재미있어'
'그림 그리는게 막 좋아'
'마음 속 말이 그림으로 나오니 그게 해방이주'

제주 조천읍 선흘마을.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먹고사느라 제주 4.3을 겪어내느라 글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자신을 위한 시간을 써보지 못했던 할망들. 손에 잡던 화투와 호미를 놓고 붓을 집어 들었다. 가족들이 떠난 할망의 집은 그림으로 채워져 미술관이 되었다. - 6p

<할머니의 그림수업>은 말랭이 동네글방 어머니들의 마음에 표본이 되었다. '아 우리도 책 한 권 만들 수 있겠구나. 내 말이 글이 되고 시가 될 수 있구나'라며 연신 자신감을 갖는다.

끝으로 제주할망 그림수업 프로젝트에 함께 한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 교수의 말을 빌어본다.

반사라는 별명을 가진 한 예술가에 의해서 소막이, 창고가, 집 마당이, 안방이 미술관이 되는 기적. 마을 곳곳에 자리한 할망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을 작지만 거대한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마술의 세계로 인도한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식물, 사람과 동물이 만나고 삼라만상이 마음을 열게 되는 환대의 장소가 열리고 있다. 우정과 환대를 생성하는 이런 마을이 이 시대의 우울을 벗겨내기를 기대하다. - 15~19p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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