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꼭 민간으로 이직하라고 해주세요”

김필수 2023. 8. 31. 08:38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요즘 문과생들의 진로 선호도는 '로·회·대'로 요약된다.

이런 면피와 보신주의가 쌓이고 쌓여 절정으로 치달은 사례가 새만금 세계잼버리대회 사태 아닐까.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요즘 문과생들의 진로 선호도는 ‘로·회·대’로 요약된다. 1순위 로스쿨, 2순위 회계사, 3순위 대기업.

한때 손꼽혔던 언론, 공무원은 열손가락에서 진작에 벗어났다. ‘언론고시’는 옛말이 됐다. 수백대 일에 달했던 입사 경쟁률은 수직낙하했다. 마지 못해 들어왔으니, 대기업 등에서 스카웃 제의가 오면 뒤도 안돌아보고 간다. 메이저 언론, 마이너 언론 가릴 것 없다.

‘진짜 고시’(행정고시)를 봐서 공직에 들어온 공무원의 위상은 어떨까. 언론보다 더하면 더했지, 나아 보이지 않는다. ‘공무원의 민간 이직’은 더이상 뉴스가 아니다. 다반사라 이제 그러려니 한다는 얘기다.

최근 만난 한 최고위 공직자가 전한 일화다. “국제금융기구에서 근무할 때 일이다. 같이 일하던 행시 출신 공무원의 부인이 집사람을 찾아와 이런 부탁을 했다. ‘제 남편이 바깥어르신에게 민간으로의 이직을 상의하러 올텐데, 꼭 이직하는 쪽으로 조언해 주시라고 말씀 좀 드려달라’” 연봉이나 복지 등에서의 민간 메리트가, 직업 안정성이나 명예 등에서의 공직 메리트를 압도한 지 오래다.

마음이 떠났으니, 공직을 천직으로 알고 진정으로 국민에게 봉사하겠다는 공무원을 찾기 어렵다. 그러니 세제, 예산 등 일은 고되지만, 엘리트 코스로 여겨지던 부서를 기피하는 경향이 MZ세대 공무원들 사이에서 두드러진다. 권한은 적지만, 그만큼 책임도 크지 않은데 만족하는 것이다. 워라밸이 중요하고, 성과에 대한 욕심도 없다. 귀가 닳게 지적돼 온 ‘보신주의’다.

지난 6월초 기획재정부 보도자료가 화제가 됐다. ‘(보도설명)연금소득 저율 분리과세 확대 관련(실수)’. 누가 봐도 마지막 단어 ‘실수’에 눈길이 간다. 확인해 보니 ‘실장이 수정한’이라는 뜻이란다. ‘국수’(국장이 수정한), ‘과수’(과장이 수정한)도 있고, ‘국수원’(국장이 수정을 한번 지시한), ‘과수원’(과장이 수정을 한번 지시한)도 있다. 기재부 뿐 아니라 부처 전반에 널리 쓰인다는데, 나중에 해당 정책이 문제가 됐을 때 누구 책임인지를 명확히 하려는 의도다. 원전 수사 등에서 윗선 지시를 충실히 따른 것임에도 대가를 치르는 사례를 보면서 대응장치를 둔 셈이다. “그 정책 내가 아이디어 내고, 주도했다”며 자부심을 드러내던 예전 공무원들이 보면 혀를 찰 일이다.

이런 면피와 보신주의가 쌓이고 쌓여 절정으로 치달은 사례가 새만금 세계잼버리대회 사태 아닐까. 조직위원회는 태만했고, 여성가족부, 문화체육관광부, 전라북도 등 유관 부처는 “누군가 하겠지”, “어떻게 되겠지”로 일관했다. 중간에서 가르마를 타 줄 컨트롤타워마저 부재했으니, 저 사달이 났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라고 직격한 게 약 30년 전이다. 돌아보면 그동안 정치, 행정은 퇴행했고, 기업은 전진했다. 퇴행한 쪽의 권한이 오히려 커져, 전진한 쪽을 더 옭아매는 오늘의 현실 역시 혀를 찰 일이다. '공무원'의 영어표기는 주로 'public servant'(국민의 머슴)를 쓰는데, 'government employee'(정부 고용인)도 있다. 공무원에게 묻는다. 머슴이 될 것인가, 고용인에 머물 것인가.

김필수 경제금융매니징에디터 pilsoo@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