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평 흉기난동범' 협상으로 체포했다…경찰 위기협상팀의 긴박한 순간

최태원 2023. 8. 31. 07:0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무력 아닌 대화·소통으로
안전한 사건 해결 목표
인질극, 자해 소동 등 투입
전국 위기협상요원 총 1618명

지난 26일 오후 7시30분께 서울 은평구의 한 주택가. 흉기를 든 남성 A씨(37)가 경찰과 대치했다. 그는 경찰관에게 다가오지 말라며 흉기를 휘두르며 위협하고, 본인에게 흉기를 겨눠 자해하는 등 흥분상태였다. 경찰은 무력 체포보다 '위기협상'을 선택했다. 타인을 해치려 하지 않는 자해 난동 사건이었기에 안전을 고려한 판단이었다. 협상관으로 윤기석 서울 은평경찰서 형사과장이 나섰다. 위기협상이라 적힌 옷을 입고 A씨에게 다가가 대화를 나누며 진정시키기 시작했다. 윤 과장은 "흉기가 범인 살 속으로 쑥 들어가는 것까지 보이는 긴박한 상황이었다"며 "이야기를 들어주며 흥분을 가라앉히고 제압하기 용이하도록 흉기를 내려놓도록 설득했다"고 말했다. 윤 과장이 A씨를 안심시키며 시선을 유도했고, 현장에 투입된 경찰특공대가 오후 10시께 A씨를 제압하면서 별다른 인명피해 없이 상황은 종료됐다. 윤 과장은 "시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상황에 맞춰 무력진압과 협상 중 더 안전하게 검거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한다"고 말했다.

양손에 흉기를 든 남성이 경찰과 대치 끝에 제압당한 지난 26일 저녁 사건 현장인 서울 은평구 갈현동의 한 주택가가 통제되고 있다.[이미지출처=연합뉴스]

경찰 위기협상팀은 주로 인질극이나 가정폭력, 투신 시도, 자해 소동 등 인명 피해 발생이 우려되는 현장에 투입돼 대화와 소통을 통해 사건을 해결한다.

경찰의 위기협상 시스템은 2014년 정식 도입됐다. 올해 3월 기준 전국에서 1618명의 위기협상요원이 활동하고 있다. 위기협상팀은 각 시도경찰청, 경찰서마다 비상설로 1개팀씩 존재한다. 평상시에는 일반 업무를 수행하다가 위기협상이 필요한 상황일 때 각 경찰관서마다 있는 위기협상요원들이 팀을 꾸려 투입되는 방식이다. 1개 팀은 통상 5명으로 팀장 1명과 주협상관 1명, 보조협상관 1명, 정보관 1명, 지원관 1명 등으로 구성된다. 팀장은 상황을 총괄하고 주협상관과 부협상관은 돌아가며 협상에 나선다. 정보관은 대상의 고향·가족 관계·직업 등 설득에 필요한 정보를 알아내는 역할, 지원관은 협상관의 지시에 따라 피의자가 원하는 물이나 담배 등 물품을 가져다주는 부수적인 역할을 한다. 위기협상요원이 되는데 별도의 자격증이 필요한 것은 아니고 내부 교육을 통해 지정된다. 경찰수사연수원에서는 매년 위기협상 기초과정 4회와 심화과정 2회를 운영한다. 교육에서는 협상 관련 이론을 공부하고, 전문 배우들을 초빙해 실제 상황에 대처하는 실습 등이 진행된다.

위기협상은 무력보다 대화를 통해 접근하는 만큼, 성공하면 인명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실제 2021년 9월 서울 도봉구의 한 건물 옥상에서 일용직 노동자인 50대 남성이 투신하겠다고 경찰과 대치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위기관리팀이 투입됐다. 당시 이 남성의 아내와 딸도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새벽부터 아침까지 이어진 위기협상팀의 설득 끝에 남성은 옥상 난간에서 내려왔다. 당시 협상에 투입됐던 위기관리요원 B 형사는 "투신 시도자는 옥상 난간에서 삶이 힘들고 지친다며 뛰어내리겠다고 하고 있었다"며 "장시간의 설득 끝에 아무런 사고 없이 가족 품에 돌아갔을 때 위기협상의 보람을 느꼈다"고 말했다.

모든 위기협상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2014년 경기 하남시에서 발생한 인질극 당시 경찰은 위기협상에 나섰지만, 피의자가 경찰관 철수를 요구하는 등 설득에 실패해 결국 강제진압으로 마무리됐다. 또 2015년 경기 안산시에서 일어난 인질극 당시 경찰은 경찰특공대와 함께 위기협상팀을 투입해 5시간 동안 설득에 나섰지만, 대화가 이어지지 않자 결국 강제진압했다. 최선화 경찰수사연수원 교수는 "위기협상 시스템이 2014년에 도입돼 아직 미흡한 부분이 없다고 말할 순 없다"며 "전문성을 제고하고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 중이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위기협상의 중요성이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 평화롭게 해결하는 것은 최선의 방법 중 하나"라며 "위기협상에 대한 필요성도 더욱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도 "사회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위기협상의 필요성 또한 계속 커질 것"이라며 "이에 발맞춰 위기협상팀에 대한 교육 및 훈련을 강화하고 인력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태원 기자 skking@asiae.co.kr

Copyright ©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