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3막 기업]4050 커리어우먼 패션 커머스 '라빔'
흰 칠판을 빼곡히 채운 미팅 일정과 경쟁사 현황. 지난 22일, 패션 IT 스타트업 ‘루덴시티’ 사무실에 들어서자 분주한 초기 창업기업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졌다. 최근 스마일게이트 창업재단이 운영하는 공유오피스 ‘오렌지플래닛’ 강남센터에 입주한 루덴시티는 40·50대 여성의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제작을 꿈꾼다.
루덴시티의 대표 사업은 큐레이팅 서비스 ‘라빔(Lavim)’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40·50대 여성들에게 매일매일 다른 스타일을 큐레이팅 해주는 서비스다. ‘매일 한 페이지로 보는 패션스타일’을 제공한다는 게 이날 만난 한동식 대표(35)의 설명이다. 한 대표는 "중장년 여성이 온라인으로 옷을 구매하는 비율은 아직 높지 않다”며 “자체 조사 결과 연 평균 36%의 성장이 예견되는 기회의 시장"이라며 시장 가능성을 엿봤다고 말했다. 루덴시티는 지난 2년 동안 40대부터 60대까지와 50·60대를 겨냥한 베타 서비스를 운영했고, 10월 라빔 런칭을 통해 40·50대를 위한 패션 큐레이팅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한 대표는 카이스트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하고 석·박사까지 마친 수재다. 천생 공대생이 패션을 소재로 한 스타트업을 창업한 이유는 뭘까. 이날 만난 한 대표의 관심은 패션에서 끝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인구 고령화 시대에 디지털 문해력 차이로 소외받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날 거라 전망한다”며 “앞으로도 기술은 더 발달할 텐데, 그 과정에서 중년세대가 소외되지 않도록 다양한 영역에서 친근한 UX(User experience) 디자인을 탑재한 서비스를 내놓는 게 목적”이라고 말했다.
- 창업 전에 무슨 일을 했나.
▲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 진학해 생명공학을 전공했다. 학창시절부터 창업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고, 대학원을 졸업하고는 컨설팅 기업 '베인앤컴퍼니'에서 잠시 일했다. 창업을 하려면 다른 비즈니스도 잘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컨설턴트로 일하면서 삼성전자 등 유수 기업들의 반도체, 정유, 빅데이터 같은 공학 관련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루덴시티 창업 직전에는 취미·여가 플랫폼 회사에서 전략실장을 맡아 일했다.
-창업을 꿈꿨는데 공대 대학원에 진학해 박사까지 마무리했다는 점이 신기하다.
▲기술로 세상에 임팩트를 주려면 기술을 더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헬스케어에 관심이 많아 박사과정 때는 헬스케어 기술을 연구했다. 그 덕에 모바일 헬스케어 스타트업에 초기 멤버로 합류해 연구개발(R&D)를 담당하기도 했다. 베인앤컴퍼니에 입사했을 때는 최소 3년은 있어야겠다는 다짐으로 입사했는데, 자문역이라 실제 실행하기보다는 한 걸음 뒤에서 제안이나 조언을 주는 역할이라는 점이 답답했다. 그래도 백그라운드가 다른 동료들과 함께 일하며 컨설팅 회사는 어떻게 문제를 풀어가는지, 커뮤니케이션은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를 접하며 자극 받고 배운 것도 정말 많았다.
- 라빔이 여타 패션 커머스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
▲바쁜 직장 여성들의 시간을 아껴준다는 장점이 있다. 40·50대 직장인 여성들은 (중간)관리자 위치에 있을 가능성, 아이를 포함한 가정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책임감 있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자기 시간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아침 스타일링을 고민할 시간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라빔은 가입자에게 매일매일 ‘오늘의 컨텐츠’ , ‘오늘의 브랜드’, ‘오늘의 아이템’을 추천한다. 선택과 집중을 돕기 위해 ‘무한 스크롤링’ 기능은 없앴다. 스크롤을 계속 내리면서 새로운 옷을 보여주면 오히려 선택지가 늘어나 결정 과정이 비효율적이다. 라빔은 선별된 상품과 정보를 적재적소에 제공해 빠른 선택을 돕는다.
- 타깃 고객 선정 과정이 궁금하다. 왜 중년 여성이었나.
▲우리가 직접 통계청과 증권사 자료들을 갖고 모델링해봤는데, 중년의 90% 이상이 온라인에서 금융이나 콘텐츠 서비스를 활발히 쓴다는 계산이 나왔다. 근데 이 비율이 낮은 영역이 패션 분야였다. 중년 여성 중 약 70%는 아직도 패션 쇼핑을 주로 오프라인에서 하고 있더라. 온라인으로 쇼핑을 할 경우 필요한 정보를 다 획득하기 어렵다는 인식 때문이다. 이커머스 시장에서는 이 분야가 블루오션이라는 점을 다 알고 있다. 접근이 쉽지 않을 뿐이다.
-라빔은 그냥 옷이 아닌 '프리미엄' 제품이 위주던데.
▲맞다. 저가 상품이나 이월 상품 등은 이미 중년 여성 사이에서도 온라인 구매율이 높다. 정성적인 질보다는 정량적인 가격, 소재 비교가 구매 판단에 주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석해보니 20만원 선을 넘어가는 옷에 대해서는 온라인으로 사는 걸 꺼려하더라. 20만원이 넘는 옷을 살 때는 그날의 기분, 정성적인 가치 등 복합적인 요소가 결정에 작용하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그게 고객들의 심리적 선인 거다. 이 선을 깨는 게 라빔의 목표다.
-디지털 문해력에 관심이 많은데, 앞으로 더 중요해질 거라 보는 건가.
▲기술 자체는 지수함수 형태로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는데, 기술로 말미암아 삶의 질이 향상되는 속도는 세대 간 차이가 정말 심하다. 청년 세대는 발달된 기술을 탑재한 서비스가 런칭되는 족족 100% 이해하고 활용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렇지 못하다. 기술 습득은 언어 습득과 비슷하다.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20대까지 경험한 기술이 내 ‘모국어’가 되는 거고, 그 뒤로 기술을 받아들일 때는 ‘외국어’를 배우는 것 같다. 그러니까 배워서 쓸 수는 있지만 유려하게 쓰지는 못한다는 의미다. 익히는 데 시간도 더 들고. 공학자 입장에서 봤을 때는 이런 디지털 문해력의 차이를 좁히는 일이 역할이라고 생각했고, 여기서 시장 가능성을 인식했다.
-앞으로 계획은.
▲10월쯤 라빔 정식 서비스를 런칭하면 4분기가 3개월 남는다. 그 사이 거래액 1억원을 달성하는 게 목표다. 내년에는 마케팅비도 많이 투자해 연 기준 80억원의 거래액을 달성하고 싶다. 패션을 넘어 중장년의 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이 되고자 한다.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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