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이 선거제도 바꾼 이유? 더 좋은 민주주의!"
대결을 넘어 전쟁으로 치닫는 한국 정치는 어떻게 해야 달라질까요? <오마이뉴스>는 그 답을 찾기 위해 국민투표로 선거제도를 바꾼 뉴질랜드, 선호투표제로 사표를 막는 호주 두 '정치신대륙' 탐방에 나섰습니다. <편집자말>
[박소희, 박현광, 유성호 기자]
▲ 제프리 파머 전 뉴질랜드 총리가 7월 4일 뉴질랜드 웰링턴에 위치한 빅토리아대학교 연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지난 1993년 국민투표를 통한 독일식 혼합형 비례대표제 도입 과정과 선거제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 유성호 |
☞ 앞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https://omn.kr/24w32
- 1979년 저서 <고삐 풀린 권력?(Unbridled Power?)> 출간을 계기로 본격화했다고 알고 있다. 당시 양당제의 어떤 점이 문제라고 진단했나.
"당시 의회에는 오직 국민당과 노동당, 두 정당만 있었다. 여전히 양당이 다수 의석을 차지하지만, 그래도 이제는 녹색당, 뉴질랜드행동당, 마오리당 등 다른 정당들도 함께 존재한다. 또 독일식 혼합형 비례대표제(MMP)를 도입하기 전 선거 결과는 불공정했다.
1978년과 1981년 총선의 경우 득표 수는 노동당이 앞섰지만, 의석은 국민당이 더 가져갔다(1978년 노동당은 40.4%, 국민당은 39.8% 득표했지만 의석 수는 각각 40석, 51석였다. 노동당은 1981년에도 국민당보다 5석 적었다. – 기자 주). 단순다수대표제에선 선거구 획정에 따라 표의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선거제도 전반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국회의원이 되고, 노동당 정책위원으로 뽑히면서 당이 총선 공약으로 선거제도 개혁을 내걸도록 힘썼다."
- 당론이어도 현역 의원들은 썩 내키지 않았을 것 같은데.
"처음에는 이 아이디어 자체를 이해하지 못해서 반대하지 않았다(웃음). 선거제도 개혁의 방향은①MMP 도입과 ②의석 수 확대(99석→120석) 여부를 ③국민투표로 정하자는 1986년 왕립위원회(The Royal Commission on the Electoral System) 보고서가 나오면서 명확해졌다.
노동당은 1984년 총선 승리로 집권한 뒤 왕립위원회를 설치했는데, 보고서가 나온 이듬해(1987년)에 마침 총선이 있어서 자연스레 선거제도 개혁에 관한 많은 논의가 이뤄졌다. 하지만 노동당 의원 가운데 선거제도 개혁에 찬성하는 이들은 8, 9명 정도였다. '재집권하면 왕립위원회 안대로 선거제도에 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던 데이비드 롱이 총리의 약속 또한 말실수였다. 재집권 후 우리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1987~1990년 사이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뉴질랜드 수도 웰링턴에 위치한 국회의사당.뉴질랜드 총선은 독일식 혼합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한국의 총선처럼 지역구 국회의원을 뽑는 '제1투표'와 지지 정당을 뽑는 '제2투표'로 1인 2표제를 실시하고 있다. 지역구 72석(지역 65석+마오리족 대표 7석), 비례대표 48석으로 의회를 구성한다. 다만 선거 결과에 따라 초과의석이 발생할 수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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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당 내부조차 반대한 이유가 무엇이었나.
"MMP가 도입되면 너무 많은 정당이 난립한다고 봤다. 또 노동당과 국민당 모두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길 원했다. 하지만 국민당이 1990년 총선이 다가오면서 (약속을 어긴 노동당과 달리) 자신들이 집권하면 왕립위원회 안대로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들은 두 번의 국민투표를 실시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선거제도 개혁안이 통과됐다(국민당 또한 선거제도 개혁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1992년 9월 선거제도 개혁 지지 여부와 대안을 고르는 1차 투표를 실시한 다음 가장 선호도가 높았던 MMP와 기존의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를 놓고 1993년 11월 2차 투표를 하는 식으로 국민투표를 까다롭게 설계했다. – 기자 주).
- 그럼에도 선거개혁이 가능하게끔 만든 전환점이 있었나.
"사람들이 '빛'을 볼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공론화가 이뤄지자 전환점이 생겼다. (대중에게) 의제를 던져 (그들이) 토론하게끔 해야 한다."
- '국민투표'라는 방식을 택한 이유도 궁금하다.
"선거제도 개혁은 큰 변화다. 따라서 대리인(정치인)이 아닌 유권자들이 직접 결정해야 한다. 그게 더 민주적이니까. 뉴질랜드 선거법에 따르면 국회의원의 75% 이상 또는 국민의 50% 이상이 찬성해야 하는 절차들이 몇 개 있다. 왕립위원회는 선거제도 개혁 또한 이 절차를 준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국민투표 방식이 아니라면 실패했을까? 아니다. 하지만 반드시 거쳐야만 했다. 법적으로도 다른 방법이 없었고. 무엇보다 정치인들은 반드시 약속을 지켜야 한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 한국은 1987년 개헌을 제외하면 매번 국회의원들끼리 선거제도를 바꾸고 있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럴 텐데, 뉴질랜드는 특수성이 있다. 우리는 아주 오래된 민주주의 국가다. 1857년부터 의원내각제를 실시함으로써 책임감 있는 정부를 가졌고, 굳건한 민주주의를 유지해왔다. 또 1879년 모든 남성에게, 1893년 세계 최초로 여성에게 투표권을 부여했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려면 국민들이 투표해야 하고, 그래야만 정부가 정당성을 확보한다.' 이것이 바로 뉴질랜드의 전통이다."
- 어쨌든 국민투표 전까지 상황이 좋진 않았다. 1990년 총선 직전 총리에서 물러난 뒤 정치를 떠날 때만해도 '선거제도 개혁은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진 않았는가.
"저는 계속 선거제도 개혁을 지지했을 뿐이다. 결국 국민들이 해낸 일이다. 선출직 정치인들이 아니라 국민들이, 한 번도 아닌 두 번의 국민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졌다. 또 변화에 회의적인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꽤 좋은 논거가 있어야 하는데, 당시 우리에겐 좋은 논거가 있었다. 정말 똑똑한 사람들로, 독립적으로 구성된 왕립위원회 보고서에는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과 명료한 논거들이 담겨 있었다. 이 보고서가 없었다면 선거제도 개혁은 불가능했다."
- 'ERC(Electoral Reform Coalition)'라는 시민단체도 굉장히 적극적으로 움직였다고 들었다.
"ERC는 변화를 원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분위기를 바꿨다. 아주 좋은 캠페인을 벌였다. 반면에 자금력이 풍부한 재계에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상당한 규모의 반대 캠페인을 하기도 했다."
▲ 제프리 파머 전 뉴질랜드 총리가 7월 4일 뉴질랜드 웰링턴에 위치한 빅토리아대학교 연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지난 1993년 국민투표를 통한 독일식 혼합형 비례대표제 도입 과정과 선거제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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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거개혁 이정표 세운 제프리 파머 전 뉴질랜드 총리 "민주주의 계속 고쳐야...참여하라" ⓒ 유성호 |
- 국민들이 선거제도 개혁을 이뤄낸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더 좋은 민주주의를 갖기 위해(To have a better democracy)", '더 좋은 민주주의가 더 완전한 민주주의다(A better democracy is more complete democracy).' 우리에게는 한 표, 한 표가 공정한 민주주의가 중요했다. 국민들이 선거 결과에 납득하려면 제도가 공정해야 하는데, 옛 선거제도는 아니었다. 선거제도가 바뀌면서 더 다양한 목소리가 의회 안에 존재하고 여성, 마오리족, 아시아계 등 소수자들이 더 대표되고 있다. 보다 포용적인 시스템이다. 제가 처음 국회의원이 됐을 때만해도 백인 중년 남성들이 의회를 지배했다. 다민족국가의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 현재 뉴질랜드 의회는 어떠한가. 사회의 다양성을 충분히 반영한다고 평가하는가.
"선거제도 개혁 이전에 비해 훨씬, 훨씬 낫다. 의사당 안에는 무슬림, 중국계, 멕시코계 등 다양한 이들이 앉아 있다. 이게 바로 선거제도를 개혁한 이유이고, 그대로 작동하고 있다. 오늘날 그들은 과거 대표되지 못했던 이들의 목소리를 대표하고 있다. 가령 마오리족은 1867년부터 국회의원이 있었지만, 선거제도 개혁 전에는 단 4명뿐이었다. 이제는 마오리당 의원은 물론 다른 정당에도 마오리족이 있기 때문에 그 숫자가 훨씬 늘어났다."
- 하지만 선거제도를 계속 유지할지 말지를 놓고 2011년 또다시 국민투표를 하지 않았나. '현행 유지'가 과반을 넘었지만 반대도 40%가 넘었던데.
"당시 국민당 정부는 여전히 혼합형 비례대표제를 탐탁지 않아 했다. 하지만 20여 년간 많은 논쟁을 벌인 끝에 이 제도는 뉴질랜드 사회에 완전히 자리잡았다. 혼합형 비례대표제 자체를 바꾸자고 할 사람은 더 이상 없다. 제도가 바뀌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본다.
노동당 정부가 꾸린 독립적인 조사기구(The Independent Electoral Review)에서 선거제도를 점검 중이긴 한데, 이 위원회는 정치자금 관련 제도나 봉쇄조항 등을 살피고 있다. 그들도 혼합형 비례대표제의 기본정신을 건드리진 않는다.
다만 이 위원회 제안 중에 '봉쇄조항(비례대표 의석을 배분 받으려면 지역구에서 1명 이상 당선되거나 정당 득표율이 5%를 넘겨야 함)'을 3.5%로 낮추자는 내용이 있는데, 별로 좋은 생각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3.5%인데 정당이 너무 많다 보니 아주 작은 정당이 정책결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때론 정부가 입맛대로 소수정당을 캐스팅보터(결정권을 쥐고 있는 세력)로 이용한다.
▲ 뉴질랜드 시민들이 웰링턴 시내에서 자신들의 업무를 보내기 위해 분주히 이동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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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질랜드 민주주의에 남은 과제는 없을까.
"다른 민주주의 국가들처럼 뉴질랜드 민주주의 또한 많은 도전을 받고 있다. 현재 많은 나라에서 권위주의적인 지도자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그들은 포퓰리스트다. 포퓰리즘은 정책을 두고 적절한 토론이 이뤄질 수 없게 만든다. 민주적이지 않다. 또 모든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얼마든지 부정부패가 발생할 수 있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유지하려면, 민주주의를 계속 고쳐야 한다.
뉴질랜드도 최근 몇 년 간 크라이스트처치 이슬람사원 테러, 코로나19 팬데믹, 재난재해 등이 이어졌고 그때마다 정부가 적절히 대응해야 했다. 이 모든 일은 선거에 반영된다. 우리는 도전을 뚫고 나갈 정부를 필요로 한다. 그러한 정부를 갖는 일은 바로 선거제도에 달려 있다. 민주주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정하고, 국민의 이익에 부합하며 효과적인 의사결정 결과를 도출하는 선거제도를 원한다. 국민들의 불만이 커질수록 선거제도를 바꿀 수 있는 가능성도 커질 것이다."
▲ 제프리 파머 전 뉴질랜드 총리가 7월 4일 뉴질랜드 웰링턴에 위치한 빅토리아대학교 연구실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나 지난 1993년 국민투표를 통한 독일식 혼합형 비례대표제 도입 과정과 선거제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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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손녀와 함께 <뉴질랜드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otearoa New Zealand, Aotearoa는 뉴질랜드 지명을 뜻하는 마오리어)> 책을 썼다. 사람들이 우리의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들에게 정부는, 민주주의는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려주고 싶었다. 민주주의 안에서 살아남으려면(to survive in democracy) 민주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참여해야 한다. 현재의 정치가 마음에 안 든다면 정당에 가입해서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 한국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가?"
- 한국도 내년에 국회의원 선거가 있지만, 선거제도 개혁에 관한 논의는 좀처럼 동력을 얻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말인가? 흠, 과거 뉴질랜드 상황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하지만 희망을 버리면 안 된다. 모든 나라의 정치, 문화, 역사가 다르고 국민들의 견해가 다르기 때문에 제가 '한국이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한 가지 말하고 싶은 것은, MMP는 영국 같은 나라의 단순다수대표제보다 대표성 면에서 월등히 나은 제도라는 점이다."
- 정치에 실망한 한국 유권자들은 점점 정치를 외면하고 있다.
▲ 뉴질랜드 웰링턴 쿠바 거리에 다양성을 상징하는 무지개로 횡단보도를 꾸며 놓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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