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원봉 막히자 홍범도…文정부 목표는 '軍뿌리' 바꾸기"
문재인 정부에서 이뤄진 홍범도 장군의 유해 송환과 육군사관학교 내 흉상 설치 등은 한·미 동맹에 기반한 국군의 뿌리를 바꾸기 위해 계획적으로 이뤄진 조치였다고 현 정부가 판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각종 논란에도 불구하고 나온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방침에 대해선 "전임 정부가 남북관계를 고려해 치밀하게 군의 정체성을 바꾸려 했던 상황을 바로잡기 위한 정상화 조치"라고 복수의 정통한 소식통들이 전했다.
여권의 고위 인사는 30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전임 정부에서 북한군 창설의 주역이자 김일성 포상을 받은 김원봉이 이끈 항일운동을 국군의 뿌리로 만들기 위해 서훈을 시도하다 반대 여론 때문에 실패하자, 홍범도 장군을 일종의 ‘대체재’로 내세웠던 정황이 확인됐다”며 “문재인 정부가 홍범도 장군을 부각한 근본적인 목표는 독립 영웅 추앙보다는 한ㆍ미 동맹에 근간을 둔 군의 역사를 부정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첫 해인 2017년 8월 국방부의 첫 업무보고에서 국군의 뿌리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가 이뤄졌다. 문 전 대통령이 “광복군,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군의 전통을 육사 교육 과정에 포함하고 광복군을 군 역사에 편입시키라”, “10월 1일인 국군의 날을 광복군 창설일인 9월 17일로 바꾸는 방안을 마련하라” 등 두 가지를 지시하면서다. 보고에는 임종석 당시 비서실장과 장하성 정책실장 등이 배석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군 관계자는 “복수의 청와대 인사들은 특히 10월 1일 국군의 날이 ‘정통성이 없다’고 강조했다”고 말했다.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국군의 날은 6ㆍ25 전쟁 당시 국군이 처음으로 3ㆍ8선을 돌파한 날(1950년 10월1일)로 지정했다. 동시에 한ㆍ미동맹의 근간인 한ㆍ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일(1953년 10월1일)이라는 의미도 있다.
이런 10월 1일을 두고 청와대가 직접 ‘정통성’을 문제삼은 데 대해 이 관계자는 “참석자들은 국군의 날 변경 지시를 국군의 뿌리를 북한이 거부하는 한ㆍ미 동맹의 틀이 아닌, 북한이 동의할 수 있는 ‘김일성주의자’ 김원봉이나 ‘공산주의자’ 홍범도 장군 등으로 상징되는 프레임으로 바꾸라는 지시로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실제 당시 회의에선 김원봉에 대한 서훈 가능성을 비롯해 홍범도 장군과 관련한 논의도 함께 이뤄졌다고 한다.
이후 더불어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국회에 ‘국군의날 변경 결의안’을 제출하고(2017년 9월), 국방부는 “독립군과 광복군 관련 연구를 통한 국군의 역사적 뿌리 재정립과 신흥무관학교의 독립운동사 발굴”을 강조하는 등(2018년 1월 업무보고) 당·정·청이 일체가 돼 속전속결로 문 전 대통령의 지시가 이행됐다.
특히 국군의 뿌리로 김원봉을 내세우는 ‘작업’은 청와대가 국가보훈처(현 국가보훈부)에 설치한 혁신위원회가 맡았다.
중앙일보가 입수한 혁신위원회의 2018년 11월 의결 권고안 모음집에는 “2019년 3ㆍ1절 100주년에 김원봉 등 마땅히 독립유공자가 될 사람들에게 적절히 포상해 국가적 자부심을 고양해야 한다”고 돼 있다. 혁신위는 지은희 정의기억재단 이사장을 위원장으로 진보 인사 10여명으로 구성됐다.
해당 논의에 참여했던 인사는 “당시 정부는 한국군의 정체성에서 한·미 동맹 색깔을 옅게 하고, 친북 인사로 정체성을 바꿔야 향후 남북 대화에도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며 “청와대와 혁신위가 김원봉 서훈을 원했던 이유는 이를 통해 김원봉의 ‘김일성 낙인’을 먼저 없애야 그가 활약한 광복군을 국군의 뿌리로 만들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전했다.
실제 당시 회의록에는 김원봉을 서훈 대상으로 특정하면서 “남북 대화로 ‘누구를 기릴 것인가’에 대한 토론회가 필요하다”거나 “유공자 발굴을 남북 공동으로 추진하는 것이 좋겠다” 등 지속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을 목적으로 보는 대목이 수차례 등장한다.
하지만 김원봉 서훈 시도가 반대 여론에 부딪치자 청와대는 홍범도 장군 띄우기를 동시에 추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실제 문 전 대통령이 카자흐스탄을 방문해 홍범도 장군 유해 송환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던 시점은 혁신위가 '김원봉 서훈 완료' 시점으로 제시했던 3·1절이 막 지난 2019년 4월이었다.
다만 문 전 대통령은 그해 6월 현충일 추념사에서 돌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되어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을 집결했다”며 직접 김원봉을 언급하며 마지막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하지만 여전히 반대가 거세자 나흘 뒤 청와대는 “(김원봉)서훈은 불가능하고, 관련 조항도 바꿀 계획이 없다”고 밝히며 물러섰다.
이후 청와대는 '플랜B'에 해당하는 '홍범도 부각하기'로 목표를 변경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다. 청와대는 이듬해인 2020년 3월 홍범도 장군의 유해 송환을 추진하려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무산됐고, 2021년 8월 광복절에 맞춰 대대적인 유해 송환 행사를 진행했다. 유해 송환을 위해 군 특별수송기(KC-330)가 투입됐고, 공군 전투기 6대가 호위 비행에 나섰다.
대통령실은 이런 일련의 과정을 모두 파악하고, 문재인 정부가 치밀하게 몇 년에 걸쳐 국군의 정체성을 사실상 훼손했다고 보고 있다. 이에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등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흉상 이전이 단순한 돌발적 사건이 아니라 전·현 정부 간 전면전 양상으로 확대되며 장기화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흉상 이전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적지 않은 상황에서도 윤 대통령이 ‘이념과 철학’을 강조하며 ‘무엇이 옳은지 제대로 봐야 한다’고 지시한 것은 이번 사안을 타협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의미”라며 “대통령실이 이번 사안을 반드시 바로 잡아야 할 정체성과 원칙의 문제로 인식한다는 뜻”이라고 전했다.
여권의 핵심 인사도 “홍범도 장군의 항일투쟁의 업적은 분명히 제대로 평가받아야 하지만, 전임 정부가 치밀한 장기 계획을 세워 홍 장군을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 달성의 수단으로 활용한 것이 오히려 홍 장군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이 논란이 되자 문 전 대통령은 지난 27일 페이스북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대한민국의 뿌리가 임시정부에 있듯이 우리 국군의 뿌리도 대한독립군과 광복군에 있음을 부정하는 것인가”라고 적었다. 문 전 대통령의 입장에 대해 그의 측근들은 “글에 적은 그대로 이해해달라”며 구체적 언급이나 입장 표명을 피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K팝, 베트남에 밀릴 날 온다” 서울대 교수의 예언 | 중앙일보
- 안혜경, 9월 결혼…예비신랑은 방송계 종사자 | 중앙일보
- 잠든 남편 눈 흉기로 찌른 아내, 집유…검찰도 항소 포기한 사연 | 중앙일보
- "내가 사이코패스인지 궁금해서" 20대 브라질 여성 끔찍 살인 | 중앙일보
- '쌍천만 배우' 김동욱, 올겨울 비연예인 연인과 백년가약 맺는다 | 중앙일보
- "치마만 보면 충동" 서울·부산 여성 43명이 그놈에게 당했다 | 중앙일보
- 조폭 뜨는 그곳 '뛰는 CCTV' 켜진다…경기남부 접수한 동호회 | 중앙일보
- 윌리엄 왕자도 신혼여행 온 곳…매콤한 문어카레에 중독됐다 | 중앙일보
- ‘흉기위협·폭행’ 정창욱 셰프 “실형은 부당, 봉사하겠다” 호소 | 중앙일보
- 마일리지로 '항공료 30%' 결제 비밀…알짜 노선 따로 있었네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