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오늘도 무사히’를 위해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경찰청 범죄예측 시스템에 경보가 울린다.
"서울 신림동 ○○번지, 범죄지수 기준치 초과자 출현." 범죄예방국 소속 대응팀이 즉각 현장으로 출동해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골목길을 걷던 A를 에워쌌다.
정부는 흉악범죄가 속출하자 인공지능과 바이오, 빅데이터 등 첨단 기술력을 총동원해 범죄예측 시스템을 구축했다.
개별 국민의 생체 정보와 심리 상태, 행동 패턴 변화 및 환경적 요인 등을 종합적으로 수치화해 모니터링하다 범죄 발생 위험도가 기준을 넘어서면 해당 대상자를 격리 조치하는 제도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찰청 범죄예측 시스템에 경보가 울린다. “서울 신림동 ○○번지, 범죄지수 기준치 초과자 출현.” 범죄예방국 소속 대응팀이 즉각 현장으로 출동해 반바지에 슬리퍼 차림으로 골목길을 걷던 A를 에워쌌다. A는 “난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고 저항해 보지만, 대원들은 “범죄예방특별법에 따라 당신을 체포한다”며 제압했다. A는 호송차에 실려 잠재적 범죄자 특별 수용시설로 이송됐다.
정부는 흉악범죄가 속출하자 인공지능과 바이오, 빅데이터 등 첨단 기술력을 총동원해 범죄예측 시스템을 구축했다. 개별 국민의 생체 정보와 심리 상태, 행동 패턴 변화 및 환경적 요인 등을 종합적으로 수치화해 모니터링하다 범죄 발생 위험도가 기준을 넘어서면 해당 대상자를 격리 조치하는 제도다. 법리적 문제와 인권 침해, 집행 오류 가능성 등을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범죄로부터의 시민 보호’라는 명분과 여론의 월등한 지지에 힘입어 도입이 결정됐다.
어디까지나 상상이다. 연속적으로 발생하는 무차별 범죄를 보며 영화 속 프리크라임(PreCrime) 같은 시스템이라면 우리를 구할 수 있을까 생각해 봤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 섬뜩하고 살벌하다. 범죄로부터 안전하다고 인식되는 대낮에, 그것도 도심 거리나 공원 백화점 등 일상생활이 이뤄지는 곳에서 느닷없이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현장 영상이 SNS로 퍼져나가면서 ‘나도 언제든 당할 수 있다’는 공포심은 더욱 확산된다. 70대 남성이 열차 안에서 쓰러지자 놀란 승객들이 앞다퉈 탈출하고, 112에 “칼부림이 났다”는 오인 신고가 접수된 일은 불안 사회의 단면을 드러낸다. “불특정 피해자를 겨냥한 강력범죄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요즘처럼 시간적 간격이 거의 없이 연이어 발생한 적은 없었다”는 베테랑 형사의 한탄이 나올 정도다.
방학 중 출근하던 초등학교 교사, 저렴한 원룸을 구하기 위해 신림동을 찾았던 20대, 남편과 외식을 하려고 서현역 인근에 나왔던 60대 여성. 이들은 하필 그 순간,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희생됐다. 가해자와는 아무런 관계성이 없는 남이었다. 당국은 이번에도 대책 발표에 부심하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비롯한 엄벌 방안들이 쏟아진다. 흉악범에 대한 단죄는 마땅하다. 다만 이런 부류의 범죄를 억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실제 가해자들은 자신이 저지른 죄에 따른 형량에는 관심 없다는 식의 태도를 공통적으로 보였다. 범행 실행 자체가 목적인 듯 도주 의사도 보이지 않았다.
이들의 범행을 묻지마 범죄로 부르든, 이상동기 범죄 혹은 증오 범죄로 분류하든 중요한 건 범죄의 씨앗이 발아되는 생태계 자체를 바꿔야 한다는 점이다. 가해자들은 대개 20~30대 남성으로, 뚜렷한 직업 없이 사회적 고립 상태인 경우가 많았다. 혼자의 굴속에 갇혀 세상으로부터 정상적인 취급을 받지 못한다는 불만, 어떤 희망도 희망할 수 없다는 불안으로 지냈을 수 있다. 이것이 수치심을 넘어 분노로 변질되고 끝내 타인을 향한 무차별 폭력으로 표출된 것이다. 물론 범죄자 개인에게 일차적 책임이 있다. 다만 사회적 외톨이들의 실태를 파악하고 이들의 좌절과 분노를 줄이기 위한 구조적 관점에서의 접근도 필요하다. 경제와 복지, 심리적 지원 등을 통해 끊어진 사회 관계성을 다시 연결해 주는 정책도 동반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최근의 사건들로 다시금 확인된 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곳’도 언제든 범죄 현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거리의 악마들’로부터 무고한 시민을 보호하는 일은 국가의 기본적 책무다. 가뜩이나 각박한 현실인데 집을 나설 때마다 ‘오늘도 무사히’를 기도해야 하는 국민은 너무 불행하지 않나.
지호일 사회부장 blue51@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후쿠시마산 회 먹은 기시다 “오이시데스”… 먹방 영상
- 김남국 제명안 ‘부결’… “민주당 후폭풍 감당해야할 것”
- “우린 오스트리아 소금 써요” 초밥집도 빵집도 안간힘
- ‘뺑소니 혐의’ 이근, 사고 직전 중앙선 넘었다
- 남의 집 앞 개똥 안 치우고 간 견주… 블랙박스에 딱
- [영상] 소화기로 ‘퍽퍽’…남의 차 분노의 내려치기, 대체 왜?
- 대낮 등촌역서 갑자기 밀치고 폭행…“교도소 가고싶다”
- “선처한다”던 주호민, 유죄의견 냈다…‘카톡 갑질’까지
- 軍心 달래기… 장교 1200만원, 부사관 1000만원 준다
-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있던 일, 이것도 맘충인가요?” [사연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