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서울시 관광 총력전에 환호할 수 없는 이유
오세훈 서울시장이 최근 외국인 관광객 3000만명을 목표로 관광 총력전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관광객의 10배 규모다. 해외 방문객이 늘어나고, 이들이 한국이 가진 다양한 매력을 경험하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관광도시 서울’이 절체절명의 과제라는 발표는 미래지향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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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관광객 3000만 목표 선언
‘오버 투어리즘’ 폐단은 고려했나
시민 삶의 질 개선이 공공의 역할
큰 선언보다 촘촘한 실행이 필요
」
코로나를 겪으며 인류는 그동안 정신없이 팽창일로로 달려오던 삶의 습관을 반추하면서 지속가능성이라는 화두를 정책적 선택의 중심에 두게 되었다. 양적인 팽창과 무조건적인 성장, 단기적으로 보이는 가시적인 성과 쫓기를 멈추고 차분히 사람과 자연의 조화를 생각하고 삶의 질을 챙기는 것이 장기적으로 우리 모두를 지키는 길임을 자각하게 된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주요 선진국은 이미 코로나 이전부터 낡은 방식의 관광 개발과 관광객 증대를 목표로 두는 것을 지양하고 지역에 미치는 다양한 임팩트를 우선 고려한다. 관광은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으며, 시민에게 더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데 부합하는 한도에서만 의미가 있다. 예컨대 코펜하겐 관광청은 2018년부터 명소를 지정하거나 추천경로를 표시하지 않는다. 집중적으로 몇 군데를 찍고 빠지는 식의 겉핥기 관광은 장려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단기간에 몇천만명이 다녀갔다는 기록이나 관광수지가 어떻다는 숫자를 바라보지 않고 지역사회와 관광의 양립을 추구한다. 길게 보고 매력적인 지역을 만드는 데만 오로지 집중하면 오히려 자연스럽게 개성 있고 각별한 경험을 주는 관광지가 된다는 논리다.
관광 패러다임의 전환은 특히 개성을 가진 주거지역이 ‘핫플’이 되어가는 추세 속에 더욱 중요하다. 골목 관광이 대세가 되고 있다. 그런데 서울 북촌이건, 전주 한옥마을이건 무슨 무슨 마을이라고 지정하면 이내 그 마을의 모습은 거의 동일해지고 뻔해진다. 부지런히 관광지도가 뿌려지고 어디를 가야 하는지 안내에 따라 관광객이 몰리면 오래 터전을 잡고 살던 사람들은 못 견디고 떠날 수밖에 없다. 거주민이 줄면서 마트나 세탁소 등은 하나둘 사라지고 더 높은 임대료를 내는 화장품매장이나 카페로 바뀌어 더욱 거주하기 힘들게 만드는 악순환에 빠진다. 그렇게 거주민이 떠난 지역은 진화를 멈추고 본래의 모습을 잃게 된다. 지역문화의 뿌리를 튼튼히 하려면 무슨 개발이나 진흥에 나설 것이 아니라 오히려 조용하고 꾸준히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면 될 일이다. 그것이 공공의 역할이다.
해외 주요 관광도시들은 하루 인원을 엄격히 제한하거나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곳에서 셀카를 찍으면 벌금을 부과하기도 한다. 그렇게까지 하나 싶지만 지역 거주민의 주거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공공부문이 적극적으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것이다. 홍보나 촉진 활동을 통해 단기간에 관광객을 늘릴 수는 있지만 한 번 망가진 주거환경이나 문화는 다시 만들기 어렵다. 최근 해외 뉴스로 많이 보도되고 있는 ‘오버투어리즘’ 문제는 우리라고 비껴가진 않는다.
지역자치단체의 유능하고 부지런한 공무원들은 민간영역일 법한 사업까지 공공이 도맡아 정말이지 일을 많이 한다. 각종 보고서나 기획 사업을 만들고 서울 재창조니 무슨 선언이니 비슷비슷해 보이는 문서들을 작업하느라 귀한 시간을 갈아 넣는 것이다. 보이고 드러나는 일을 하느라 과로는 과로대로 하면서도 공공이 해야 할 본연의 업무가 뒤처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잼버리 사태에 대한 각종 분석도 일하는 방식에 대해 많은 문제를 지적하고 있지 않은가.
관광도시 서울의 계획에는 글로벌 숙박 공유플랫폼 에어비앤비와 적극적인 파트너십도 있다. 세계 대도시들은 숙박공유의 확장이 기존 주거 시장에 끼치는 악영향을 경험하고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로 돌아섰다. 이익이 상대적으로 높은 단기임대로 돌려지는 공간이 늘면서 임대 부족과 가격상승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해외 대도시들이 숙박공유 플랫폼을 규제하는 것은 단지 시장에 끼치는 여파 때문만은 아니다. 거주민의 주거환경을 보호하고 삶의 질을 해치지 않도록 한다는 점을 최우선시하기 때문이다. 관광 활성화가 주는 경제적 수익으로 인해 거주민의 삶의 질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고다. 치밀한 현실 인식과 촘촘한 실행계획이 뒷받침되지 않은 개발은 부작용이 더 많기 마련이다.
서울시의 관광 활성화가 시민들에게 어떻게 더 나은 도시를 만들어주는지, 비전으로 삼고 있는 10년 후 서울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장기적인 그림 제시가 우선이다. 지난 10년간 동네가 사라질 정도로 정주 인구 감소를 거듭하고 있는 북촌 길목에서 관광안내원은 일요일에도 충실하게 거주자들이 사는 골목으로 관광객들을 안내하고 있다. 이들이 서울시 전역을 널리 탐험하게끔, 더 좋게는 서울로만 몰리지 말고 매력적인 지방도시들로 퍼져 각자 다양한 경험과 발견을 하게끔 지원하는 통합된 방향이 필요하다.
김은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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