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필리핀 이모님 모시기 대작전
서울에서 두 아이를 양육 중인 A씨는 최근 셋째 임신 사실을 깨닫고 큰 충격에 빠졌다. 그간 친정 엄마의 도움으로 맞벌이를 해왔는데 더 이상은 무리일 것 같아서다. 임신 중절 수술을 결심하고 병원 앞까지 갔지만 차마 실행에 옮길 순 없었다는 A씨는 결국 부부 중 한 명의 퇴사까지 고려하고 있다.
A씨처럼 기로에 선 맞벌이 부부에게 대안이 하나 생겼다. 고용노동부가 올해 안에 도입하겠다고 밝힌 ‘외국인 가사관리사’ 제도 얘기다. 정부는 외국인 가사관리사 100여 명을 고용해 서울의 20~40대 맞벌이 부부·한부모·임산부 가정 등에 시범적으로 파견한다는 방침이다. 가사 관련 자격증 제도를 운영하는 필리핀 등이 주된 대상국이다. 인증 기관을 통해 이들의 경력·어학능력·범죄이력 등을 검증할 계획이다.
도입 취지는 명료하다. 맞벌이로 가사·돌봄 노동에 대한 수요는 느는데, 공급은 줄었다. 국내 가사관리사는 2019년 15만6000명에서 지난해 11만4000명으로 3년새 27% 감소했다. 이들 10명 중 9명(92.3%)은 50대 이상이다. 물론 고령 인구가 늘고 있음에도 가사관리사가 줄어든다는 건 그만큼 처우나 인식이 열악하기 때문일 수 있다. 정부는 당장 이용자의 부담을 덜기 위해 외국인 고용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고, 시민단체는 외국인·여성 노동자의 저임금 구조를 고착화할 수 있다며 반발한다.
결국 관건은 실효성이다. 정부의 취지대로 제도가 정착하려면 합리적인 비용으로 양질의 가사·돌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고용 비용은 최저임금법에 따라 시급 9620원, 내국인 가사관리사의 시급이 약 1만5000원인 점을 고려하면 3분의 2 수준인 셈이다. 하지만 주 40시간 근무 기준으로는 주휴수당을 포함해 월 201만원이다. 지난 1분기 기준 가구당 월평균 소득(505만4000원)으로 보면 부담이 적지 않다.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외국인에게 질 높은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도 있다.
본질적으로는 저임금·장시간 노동 구조를 개선해 부모가 직접 아이를 양육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문제는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인구 절벽’과 ‘경력 단절’의 딜레마를 해소하는 게 시급하다는 점이다. ‘현대판 노예제’라는 자극적인 문구를 앞세워 반대만 하기보다 함께 대안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다. 외국인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면서 가사·돌봄 서비스의 질은 높일 수 있도록 정부와 시민사회가 오히려 머리를 맞대야 할 때다.
김경희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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