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하늘 아래 초록초록한 ‘배추고도’

남호철 2023. 8. 30.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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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랭지 배추밭 수채화 풍경
8월 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 수확을 앞둔 고랭지 배추밭은 수채화 같은 풍경으로 다가온다. 사진은 강원도 태백시 매봉산 ‘바람의 언덕’.


고랭지 배추밭이 풍경이 되는 계절이다. 80%가 넘는 면적이 산지로 구성된 강원도에서는 평균 해발 900m인 태백, 평균 해발 700m인 대관령 등이 고랭지 채소 산지로 유명하다. 이곳은 여름철 평균기온이 20도 내외로 서늘한 데다 밤낮의 일교차가 커 고랭지 농업이 발달하기에 적합한 기후를 가지고 있다.

이곳 배추밭은 드넓은 초원처럼 끝없이 펼쳐진다. 여름의 끝자락인 8월 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 수확을 앞둔 ‘배추고도’를 찾으면 푸른 배추의 수채화 같은 풍경을 눈에, 마음에 담을 수 있다. 배추 출하 시기는 지역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이때를 놓치면 한여름 ‘풍경의 별미’와 마주하기 위해서는 또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일출·풍력발전… 태백 ‘배추고도’

하사미동 ‘귀네미마을’.

태백시에는 두 곳의 고랭지 ‘배추고도’가 자리하고 있다. 매봉산 ‘바람의 언덕’과 하사미동 ‘귀네미마을’이다. 매봉산은 해발 고도 1303m를 자랑한다. 서울 남산(해발 262m)보다 거의 5배 높다.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의 분기점이자 전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조성된 고랭지 배추밭으로 유명하다. 해발 1100m 8부 능선부터 정상까지 고랭지 배추밭이다. 지대가 높아 배추밭 위로 구름이 수시로 넘나들며 쉬어 간다. 일교차가 큰 날씨 덕에 고소한 맛과 아삭한 식감이 특징이다.

이곳에서 강한 바람은 풍경을 시시각각 바꾼다. 구름 몇 점 없이 둥실 떠가는 파란 하늘이 펼쳐지는가 하면 구름이 능선을 타 넘으면서 온통 운무로 뒤덮여 한 치 앞도 보여 주지 않는 때도 있다. 삽시간에 운무가 걷히면서 풍력발전기와 주변의 산자락들이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를 연출하기도 한다.

매봉산 고랭지 배추 단지 위 ‘바람의 언덕’은 일출이 아름다운 곳으로도 유명하다. 132만㎡(약 40만평) 넓이의 푸른 배추밭 사이에 우뚝한 하얀 풍력발전기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며 아름다운 풍광을 펼쳐놓는다. 아침노을이나 햇살이 퍼질 때 붉게 물드는 배추밭의 구릉과 그 뒤로 중중첩첩 이어지는 산자락에 고인 구름이 출렁이는 모습은 그림 같다. 발아래 운해를 보면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다. 배추밭은 보는 위치와 시각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서쪽 하늘을 붉게 채색하는 해 질 녘 배추밭과 별빛이 쏟아지는 한밤의 배추밭은 매봉산에서나 만나는 진귀한 풍경이다.

귀네미마을은 해발 1000m에 자리한 전형적인 산촌이다.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의 형세가 소의 귀를 닮았다고 해서 우이령이라 불리다가 귀네미마을로 바뀌었다. 이곳에도 배추밭 위로 풍력발전기 날개가 ‘쉭, 쉭’ 소리를 내며 바람을 가르고 있다.

귀네미마을의 정상은 태백시와 삼척시 경계에 솟은 삿갓봉(1185m)으로 해돋이 명소다. 정상에 서면 덕항산 매봉산 푯대봉 가덕산 등 백두대간 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아침햇살에 황금색으로 물드는 배추는 ‘금추’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황홀하다.

운무 속 수채화, 강릉 안반데기

강릉 안반데기의 ‘배추고도’.

해발 1100m 높이의 백두대간에 위치한 안반데기는 우리나라에서 주민이 거주하는 가장 높은 마을이다. 피득령을 중심으로 남쪽의 옥녀봉(1146m)과 북쪽의 고루포기산(1238m)에 198만㎡의 고랭지 배추밭이 독수리 날개처럼 펼쳐 있다.

안반데기는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대기4리에 속한다. 지형이 떡메로 떡살을 내려칠 때 쓰는 안반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이다. 1965년 화전민에게 국유지 개간을 허용해 임대해 오다 1986년 경작자들에게 매각했다. 처음에는 감자나 옥수수 등이 재배됐으나 고랭지 배추가 인기를 끌면서 마을 전체가 배추밭으로 변신했다.

이곳 배추는 단단하고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경사가 워낙 가팔라 배추 농사짓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쟁기질을 위해 굴착기와 소가 동원된다. 안개와 이슬을 먹고 자란 배추가 가파른 등고선을 그리는 풍경이 일품이다.

안반데기 일대를 한눈에 조망하려면 옥녀봉 정상이나 맞은편 멍에전망대에 올라야 한다. 배추밭 사이로 난 가파른 농로를 오르면 하늘 아래 첫 동네답게 파란 하늘과 맞닿은 배추밭이 부드러운 곡선을 그린다. 비가 그치고 난 뒤 안반데기는 운무에 휩싸여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한다. 운무는 짧은 기간에 왕성하게 발육하는 배추에 많은 수분을 공급해 준다.

운탄고도 옆 새가 나는 형상, 새비재

정선 새비재.

새비재는 ‘새가 나는 형상’이라 해서 ‘조비치(鳥飛峙)’라고도 불리는 고갯길이다. 광활한 배추밭과 옥수수밭, 그리고 메밀밭이 한 폭의 풍경화처럼 장대하게 펼쳐져 있다. 강원도 남부에서 첫손에 꼽히는 고랭지 배추밭이 이곳에 있다.

1967년 일대 험준한 산골에 무장공비의 출몰이 잦자 정부는 산골마을의 스물두 가구 외딴집 주민들을 모아 이곳으로 이주시켰다. 이들이 개간해서 만든 너른 구릉이 광활한 고랭지 배추밭으로 변모했다.

새비재 아래에서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남녀 주인공이 그 앞에 사랑을 약속하는 ‘타임캡슐’을 묻은 소나무를 만날 수 있다. 타임캡슐 공원을 조성해 관광객들이 타조알처럼 생긴 캡슐에 추억의 물건들을 담아둘 수 있도록 했다.

글·사진=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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