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깃발과 AI 규제 [임상균 칼럼]

임상균 매경이코노미 기자(sky221@mk.co.kr) 2023. 8. 30.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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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증기기관 개발 영국, 규제 때문에 車 산업 못 키워
‘한국판 AI’ 시작도 전에 규제부터 내놓는 정치권
미래 좌우할 혁신 전쟁서 또 뒤처지면 책임질 것인가
임상균 주간국장
증기기관을 가장 먼저 발명한 국가는 영국이다. 영국에서는 1700년대에 증기기관을 얹은 자동차가 나왔고, 1826년 22명이 탈 수 있는 버스 모양의 증기 자동차가 탄생했다. 마차를 타고 다니던 당시 증기기관을 동력으로 삼은 자동차는 엄청난 혁신이었다.

하지만 1834년 승객 21명이 탄 증기 버스에서 엔진 보일러가 폭발했다. 승객 2명이 사망하자 증기 자동차에 시장을 빼앗긴 마차업계가 여론을 등에 업고 정치권에 규제를 요구했다.

1865년 영국 의회는 적기조례(赤旗條例·Red Flag Act)라는 규제를 만든다. 일명 ‘붉은깃발법’이다. 자동차 앞에 반드시 붉은 깃발을 든 기수가 말을 타고 자동차를 선도하도록 강제했다. 시속 6.4㎞ 이상 달리지 못하도록 속도 제한도 걸었다.

31년간 존속한 적기조례 때문에 영국에서는 더 빠르고 멀리 달리는 자동차가 필요 없었고, 자동차 회사들도 기술 개발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사이 미국, 독일에서는 내연기관에 대한 연구가 진행됐다. 1885년 독일 벤츠가 세계 최초로 가솔린 자동차를 발명하면서 영국은 자동차 산업에서 주도권을 상실한다.

섣부른 규제가 혁신 산업을 망가뜨린 대표적 사례다. 국내에서도 공유 차량 서비스인 ‘타다’를 택시업계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금지시킨 ‘타다금지법’ 사례가 있었다.

지금 가장 치열한 글로벌 혁신 경쟁의 무대는 ‘생성형 AI’다. 모든 플랫폼을 대체할 새로운 혁신 기술로 각광받고 있다. 미국 빅테크 모두가 뛰어들었다. 그런 AI에 가장 중요한 칩을 공급하는 엔비디아는 이미 실적이 급팽창하고 있다. 주요국 정부들도 AI 플랫폼을 장악해야 세상을 지배한다는 사명감 속에 사활을 걸고 덤벼들고 있다. 인터넷과 모바일을 둘러싼 혁신 경쟁에서 뒤처진 한국도 다음 격전지인 ‘AI 전쟁’에서 만큼은 낙오돼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8월 24일 국내 최대 포털인 네이버가 내놓은 한국형 AI인 ‘하이퍼클로바X’와 한국판 챗GPT인 ‘클로바X’는 주목받기에 충분했다. 우리도 초거대 AI 전쟁에서 싸워줄 용사를 얻은 격이다. 하지만 막 데뷔전을 치렀을 뿐이다. 든든한 전투력을 갖추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꾸준한 투자와 육성이 필요하다.

하지만 정치권은 AI에 대해 규제부터 생각한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AI의 위험도를 구분해 고위험 AI 개발을 금지하거나 강도 높은 규제를 적용하는 ‘인공지능 책임 및 규제법안’을 내놨다. AI를 ‘금지’ ‘고위험’ ‘저위험’으로 나눠서, 금지된 AI는 원칙적으로 개발을 못하도록 막는 내용을 담고 있다.

AI가 인간의 통제를 넘어설 수 있다는 우려를 외면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아직 현실화하지 않았고, 제대로 체험해보지 못한 기술이 AI다. 어떤 AI가 등장해 어떻게 인류와 공존할 것인지 예상조차 어려운데 어디에다 고위험, 금지 등의 딱지를 붙일지 의문이다.

혁신은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기 때문에 더더욱 가치가 높다. 미리 재단해서 혁신의 싹을 잘라버린다면 또다시 신산업에서 패배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이번만큼은 시장과 기업, 사회를 믿고 맡겨봐야 한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4호 (2023.08.30~2023.09.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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