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데믹에 쪼그라든 와인 시장 때문에…신세계L&B의 ‘소주 사랑’이 시작됐다

나건웅 매경이코노미 기자(wasabi@mk.co.kr) 2023. 8. 30.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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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트렌드가 워낙 빠르게 변하는 요즘이다. 2015년 수제맥주와 전통주 인기가 급부상하더니 팬데믹과 함께 와인 시장이 급속도로 커졌다. 엔데믹에 접어들면서는 와인에 대한 관심이 줄고 대신 위스키와 하이볼 판매가 빠르게 늘었다.

최근 와인 시장이 위축되면서 직격탄을 맞은 건 와인 수입업자다. 업계 1위인 신세계L&B도 위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해 좋지 않은 성적표를 받아들며 타개책 마련에 나선 모습이다. 핵심은 포트폴리오 다각화. 그중에서도 올해 선보일 예정인 새 희석식 소주 브랜드 ‘킹소주24’ 성공 여부에 업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지난해 영업이익 반 토막

와인 시장 위축, 발포주도 부진

지난해 신세계L&B 실적은 부진했다. 매출은 2064억원으로 전년(2000억원) 대비 소폭 늘었지만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됐다. 영업이익은 2021년 212억원에서 지난해 116억원까지 거의 반 토막이 났다. 당기순이익은 155억원에서 66억원까지 쪼그라들었다. 팔리지 않은 재고 상품이 크게 늘어난 데다 인건비를 비롯한 판매관리비, 여기에 이자비용까지 급증한 결과다. 매출이 늘기는 했지만 팬데믹 시절 고속 성장에는 턱없이 못 미치는 증가폭이다. 2019년 1072억원이었던 신세계L&B 매출은 2021년 2000억원으로 2년 만에 두 배 가까이 성장한 바 있다.

와인 부문 부진이 뼈아프다. 지난해 와인 매출은 1529억원으로 전년 1531억원에 비해 소폭 감소했다. 와인 납품 매출과 직영 와인 판매점 ‘와인앤모어’ 와인 판매 매출을 더한 액수다. 맥주·발포주·위스키 등 기타 매출이 늘어나며 그나마 마이너스 성장을 막았다.

와인 부진은 신세계L&B만의 문제가 아니다. 금양인터내셔날(-28.9%), 아영FBC(-26.2%), 나라셀라(-3.9%) 등 국내 주요 와인 수입사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큰 폭으로 줄었다. 위축된 와인 시장 현주소는 데이터에서도 드러난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국내 와인 수입량은 2만6235t으로 전년 동기(3만3495t) 대비 21.7%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위스키 수입량은 1만3700t에서 1만9878t으로 45% 이상 늘었다. 와인 수요를 위스키가 빨아들인 모양새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홈술 트렌드와 술을 적당히 마시는 문화가 확산되면서 오히려 와인 인기가 식었다. 개봉하면 당일에 다 마셔야 하는 와인 대신 두고두고 마실 수 있는 위스키 그리고 위스키를 활용한 하이볼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위해 야심 차게 준비했던 ‘발포주’ 시장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신세계L&B는 지난해 3월 가성비를 앞세운 발포주 브랜드 ‘레츠’를 내놨다. 레츠 500㎖ 캔 기준 판매 가격은 1800원. 동일한 용량 한 캔 가격이 3000원 가까이 되는 맥주에 비하면 가격이 절반 수준이다.

브랜드 출범으로부터 1년 6개월이 지난 현재, 발포주 시장에서 레츠 존재감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경쟁자인 하이트진로 필라이트와 오비맥주 필굿이 두 자릿수 성장을 이어가며 시장을 양분한 가운데 레츠 판매량은 매우 저조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발포주 시장에서 레츠 점유율이 한 자릿수를 겨우 유지할 정도로 상황이 안 좋다”며 “신세계그룹이 이마트와 이마트24 등 여러 채널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판매는 별로”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70% 내린 가격으로 ‘떨이’ 수준의 할인 행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최근 CU·GS25의 주류 스마트오더 서비스를 통해 할인 판매에 나섰는데, 24캔(330㎖) 기준 4만1000원에 판매하던 제품을 1만2500원까지 낮췄다. 레츠의 이례적인 파격 할인을 둘러싸고 “품질 유지 기한에 임박한 악성 재고를 떨어내기 위한 게 아니냐”는 게 유통업계 관계자 중론이다.

소주 등 포트폴리오 다각화 中

푸른밤 철수 이후 2년 만…성공할까

돌파구가 절실한 상황에서 신세계L&B가 주목하는 것은 ‘소주’다. 기존 과일 소주 제조자개발생산(ODM) 수출을 늘리고 새로운 희석식 소주 브랜드 론칭을 통해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계획이다.

사실 소주 사업은 신세계에 ‘아픈 손가락’ 중 하나다. 2016년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이 제주소주를 인수하고 희석식 소주 브랜드 ‘푸른밤 소주’를 선보였지만 계속된 영업손실 누적으로 2021년 결국 사업을 접었다.

신세계L&B는 위스키와 하이볼 제품 라인업을 늘리며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나섰다. 왼쪽은 최근 선보인 위스키 ‘에반 윌리엄스 플레이버’, 오른쪽은 하이볼 신제품 ‘부우부우 하이볼’. (신세계L&B 제공)
최근 신세계L&B 소주 사업은 지향점이 조금 달라졌다. 참이슬·처음처럼 등이 장악하고 있는 희석식 소주 시장에서 정면 승부를 보기보다는 과일 소주·고도주 소주 등 틈새시장을 겨냥하는 모습이다.

대표적인 사업이 ‘과일 소주 ODM’이다. 제주소주 인수로 보유하게 된 제주 소주 공장에서, 수주한 과일 소주를 위탁생산해 동남아에 수출하는 방식이다. 푸른밤 철수 이후 한동안 놀고 있던 공장은 과일 소주 ODM 덕에 다시 재가동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제품군을 더욱 늘려가는 모습이다. 베트남에 ‘아라소주’와 ‘힘소주’를, 미얀마에서는 ‘보라소주’를 수출한 데 이어 지난해 9월 미국에서 판매하는 ‘고래소주’를, 12월에는 ‘보라소주’를 추가하며 제품군을 7개까지 늘렸다. 수출을 시작한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6개월 동안 누적 생산량 119만병을 기록했다. 생산된 소주는 전부 수출되며 국내 유통은 하지 않는다.

위탁생산을 넘어 조만간 새로운 희석식 소주 브랜드도 선보일 예정이다. 상품명은 ‘킹소주24’로 정해졌다. 이름에서처럼 알코올 도수는 24도로, 16도 수준인 참이슬·처음처럼보다 높다. 주류 업계 내에선 회의적인 반응이 나온다. 저도주가 트렌드로 자리 잡은 가운데서 나온 고도주인 데다 기존 제품과 큰 차별점도 없어 마케팅 비용만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신세계L&B 관계자는 “과거 ‘푸른밤’처럼 회사의 이름을 내건 대표 상품이 아니다. 특색 있는 주류에 대한 소비자 요구에 대응하기 위한 한정 수량 기획 성격의 상품”이라며 “대대적인 마케팅 활동이나 상품 운영은 계획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소주와 함께 위스키 사업 규모 역시 키워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신세계L&B는 지난해 위스키 생산을 공식화하며 증류소 설립을 위한 인허가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직 공식적인 출범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지만 지난해 ‘제주 위스키’ ‘탐라 위스키’ 등 상표를 출원했다. 한국식품연구원과 함께 국산 참나무를 활용한 ‘토종 위스키’ 개발로 기대감을 모으는 중이다.

최근에는 하이볼 시장에도 뛰어들었다. 올해 4월 하이볼 상표 3개를 출원하더니 8월에는 신제품 ‘부우부우 하이볼’을 삼겹살 전문 프랜차이즈 하남돼지집에서 선보였다. 일본 유명 주류 제조사 오에논주류가 돼지고기 안주를 즐기는 소비자를 공략하기 위해 만든 제품이다. 하이볼 치고는 높은 8%대 알코올 도수와 스코틀랜드산 그레인 위스키 블렌딩으로 차별화를 꾀했다. 신세계L&B 관계자는 “최근 와인 시장이 주춤한 것은 맞지만 소주·위스키·하이볼 등 포트폴리오 다각화에 나서고 있다”며 “와인 역시 로버트 몬다비, 쉐이퍼 등 프리미엄 와인을 중심으로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4호 (2023.08.30~2023.09.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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