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3년 만에 아시아 MRO 1위…김동철 서브원 대표 [CEO 라운지]

박수호 매경이코노미 기자(suhoz@mk.co.kr) 2023. 8. 30.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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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회사 두 달 만에 인수…판세 뒤집는 리더
1968년생/ 1996년 필립스코리아(영업·마케팅)/ 2003년 오비맥주 수석부사장·COO/ 2019년 서브원 부사장(COO)/ 2020년 서브원 대표이사 사장(현)
비아다빈치.

올해 설립 13년 차인 의약품 도매 업체다. 지난해 매출 9504억원, 영업이익률 11%대를 기록했다. 이런 알짜 중견기업 인수 결정에 일주일, 실사 후 우선협상대상자가 되기까지 2개월 정도밖에 안 들인 회사가 있다. 국내 1위 MRO(기업운영자재) 전문 기업인 서브원이다. 서브원은 2021년에도 문구·사무용품 업계 1위 업체 오피스디포를 인수해 화제가 됐다. 당시에도 실질적인 의사 결정과 실사가 3개월 정도 만에 완결됐다.

이처럼 서브원은 굵직한 M&A 의사결정을 스타트업처럼 빠르게 진행하면서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2020년 4조526억원이었던 매출액이 지난해 5조4000억원으로 2년 만에 1조4000억원가량 껑충 뛰었다. 그 덕에 일본 미쓰미, 중국 진둥공업을 제치고 아시아 1위 MRO 회사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 8월 기준 서브원 글로벌 고객 수는 1300여곳, 협력사는 2만9000여개에 달한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 김동철 대표(55)가 자리한다. 그는 2019년 서브원의 최고운영책임자(COO)로 합류했다 2020년 대표로 선임됐다.

특히 이전 경력을 감안했을 때 그는 2위권 업체를 업계 1위로 올려놓는, 이른바 ‘업계 판도를 뒤집는 데’ 일가견이 있는 인물임을 알 수 있다. 호주 UWS(University of Western Sydney)를 졸업하고 1996년 필립스코리아에서 사회생활을 한 그는 2003년 오비맥주로 이직하면서 진가를 드러냈다. 영업·마케팅을 담당하면서 당시 하이트에 밀려 만년 2위였던 오비맥주를 카스를 앞세워 1등으로 끌어올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 덕에 당시 한국인으로는 최고위직인 수석부사장까지 올랐다. 서브원과의 인연도 드라마틱하다. 2019년 당시 서브원은 LG그룹에서 독립,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던 시기였다. 그해 5월 서브원 대주주가 글로벌 사모투자펀드인 어피니티(서브원 지분 60.1%를 6021억원에 인수)로 바뀌었다. 어피니티는 인수 직후 오비맥주 1등 신화를 이끌어낸 김동철 대표 영입에 공을 들였고 마침내 김 대표를 COO로 데려왔다.

대표도 부서장처럼 오픈테이블 근무

지난 8월 중순 찾은 서브원 본사. 흔히 대기업에 가면 당연히 있을 법한 대표이사실은 없다. 김 대표 좌석은 드라마에서 보면 부서장이 앉아 있을 법한 자리다. 다른 임원도 김 대표 책상과 T자 형태로 맞댄 형태로 서로 마주 보고 앉아야 하는 좌석 배치다. 사장, 임원, 직원이 한 공간, 이른바 오픈테이블에서 일하는 구도다.

“대표라면 임직원이 몰라야 할 정보를 혼자서 다룰 때도 있고, 손님이 오면 환대할 공간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빅데이터나 주요 정보는 IT 기술로 해결하고, 손님은 대회의실에서 맞으면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오히려 오픈테이블 체제를 갖추고 나서 의사 결정이 훨씬 빨라지고 임직원이 굳이 결재 순번을 기다리는 풍경도 싹 사라졌다고.

그래서일까. 서브원 신사업 상당수는 임직원이 직접 제안하고 김 대표가 곧바로 재가하는 ‘보텀업(Bottom Up·상향식)’ 방식으로 정착됐다. 서브원 임직원과 고객사 임직원이 할인된 가격에 물건을 살 수 있는 폐쇄몰 ‘브이멤버스’, 자영업자 전문몰 ‘오너하이’, 서브원 협력사 전문몰 ‘서브메이트’가 다 이런 의사 결정 과정을 거쳐 탄생했다. 김 대표는 “자연스럽게 의견을 개진하고 성과가 났을 때 철저히 보상한다는 원칙, 일명 서브원식 성과주의(Meritocracy)가 이렇게 정착됐다”고 소개했다.

회사 문화만 변화시킨 것이 아니다. 서브원 이직 후 그는 MRO 시장의 ‘업의 본질’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했다. 흔히 MRO 업체 하면 원자재나 대형 설비를 제외한, 기업에 필요한 모든 소모성 자재를 공급하는 회사로 알려져 있다. 기업 고객이 요구하면 그에 맞는 제품을 적시적기에 충족시켜주는 것이 미덕이라는 인식이 많았다. 말 그대로 ‘구매대행’이다. 김 대표는 이런 구도로는 소위 판세를 뒤집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른 곳보다 ‘더 싸게, 더 빨리’ 제품 조달을 하려다 보면 출혈 경쟁에 직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 이렇게 되면 건강한 성장이 어렵다고 봤다.

그가 생각하는 업의 본질은 뭘까. ‘고객이 생각하기 전에 고객이 필요한 부분을 찾아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수준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게 김 대표가 새로이 정의한 MRO업의 본질이다. 일명 ‘구매 솔루션 전문 회사(Procurement Solutions Expert)’다.

서브원이 여타 MRO 회사와 달리 전기차(EV)사업부를 운영, 해외 시장까지 진출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볼 수 있다. 단순히 구매대행이었다면 LG에너지솔루션이 해외에 공장 짓는다고 같이 따라 나가지 못했을 테다. 서브원은 2021년부터 관련 전문가를 영입해 BSP(Battery Solutions Package·배터리 관련 패키지 형태 조달) 프로젝트를 본격 가동했다. 이를 바탕으로 LG에너지솔루션이 해외 공장을 지을 때 공장 초기 셋업부터 구축, 생산 공정 전반에 걸쳐 필요한 MRO 자재에 대한 구매, 배송, 재고 관리까지 원스톱으로 제공했다. 김 대표는 “해외에서 공장 하나 지어보면서 MRO 자재만 4만여가지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며 “이를 다시 건설 공정별로, 시기별로 나눠 데이터로 정리해뒀더니 기회가 왔다”고 말했다.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회사 얼티엄셀즈(Ultium Cells·LG+GM 합작사)가 당시 새 공장을 짓겠다는 발표를 했을 때다. 서브원은 BSP팀을 가동, 당시 얼티엄셀즈 구매를 담당한 GM 계열 구매 담당자에게 공장 지을 때 어떤 자재를 언제 주문해야 하는지, 어디서 조달하는지 등 전문성을 앞세워 상세히 브리핑했다. 그 결과 서브원과 손을 안 잡으려야 안 잡을 수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이런 성과가 다른 업체에도 소문이 나면서 미국, 유럽 지역 EV 시장에서 서브원이 또 하나의 신성장동력을 마련할 수 있었다. 김 대표는 공격적인 M&A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설명한다.

“고객사가 언제 어떤 신사업에 나설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들이 어떤 분야로 진출하든지 이들에게 맞춤형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성을 보유한 회사를 두루 인수하면서 미래를 대비하는 겁니다.”

연구개발을 예로 들면 어떤 기업이 신규 연구소를 만든다고 하면 서브원은 어떤 설비와 장비가 필요한지 알려줄 수 있고, 제약사라면 시약과 분석 장비, 실험 소모품은 어떤 것이 필요한지 선(先)제안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김 대표는 “지난해 선보인 B2B 산업재 유통 플랫폼인 서브원스토어를 통해 서브원이 필요한 품목과 가격 정보까지 관련 데이터를 모두 갖춰놓은 덕”이라고 소개했다.

이런 노력 끝에 서브원은 ‘LG 계열 업무지원 회사’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얼티엄셀즈, 코오롱, 한화, HD현대중공업 등 국내외에 구매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로 거듭났다. 해외 매출도 지난해 기준 1조9000억원에 달한다.

김 대표는 “ESG가 화두인 만큼 ESG에 걸맞은 구매와 조달이 가능한 생태계 구축으로 2027년 매출 9조5000억원대 글로벌 선두권 MRO 회사로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4호 (2023.08.30~2023.09.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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