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노을 속 모천 회귀하는 은어의 그리움

남호철 2023. 8. 30.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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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트레일 개통된 경북 울진
경북 울진군 울진읍 남대천 위에 조성된 은어 보행교가 저녁 노을에 붉게 물들어 있다. 해가 지면 은어 비늘보다 화려한 조명이 반짝거린다. 남대천 수면에 일렁이는 모습도 운치 있다.


경북 울진군의 젖줄인 왕피천과 울진 남대천의 출발점은 멀리 떨어져 있으나 동해를 만나는 지점은 가깝다. 두 하천은 산란철 회귀하는 은어(銀魚) 떼로 유명한 곳이다. 최근에는 한반도를 횡단하는 동서트레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은어는 모천 회귀어다. ‘수중군자(水中君子)’ ‘민물고기의 귀족’이라고도 불린다. 과거 임금에게 진상될 정도로 맛이 좋다. 살이 오르고 단맛이 최고로 높아지는 시기는 8월 초·중순이다. 귀한 대접을 받는 건 맛도 맛이지만 특유의 수박 향 때문이기도 하다.

남대천 하류 하천과 바다가 맞닿은 곳에 은어아치 보행교가 있다. 해가 지면 은어 비늘보다 화려한 조명이 반짝거린다. 남대천 수면에 일렁이는 모습 또한 운치 있다.

경북 영양군 수비면에서 발원한 왕피천은 북쪽으로 흐르는 매화천과 불영계곡을 따라 동쪽으로 흐르는 광천의 물줄기와 울진군 근남면에서 합류해 동해로 흘러든다. 총연장 68㎞의 물줄기다.

왕피천이 바다와 만나는 곳 옆 작은 산봉우리에 망양정이 우뚝하다. 조선시대 숙종이 내린 ‘관동제일루’라는 현판을 걸고 있는 관동팔경 중의 한 곳이다. 당초 기성면 망양리에서 이곳 근남면 산포리로 이건됐다.

‘관동제일루’ 현판을 덜고 있는 망양정 일출.


망양정은 예부터 해돋이와 달돋이가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소나무 숲과 바다가 만나는 해변, 광활한 품을 펼쳐놓는 동해, 내륙으로 휘어져 가는 왕피천 물길과 푸른 산줄기까지 한 폭의 동양화 같은 풍광을 마음에 담을 수 있다.

망양정은 동서트레일의 출발점이다. 트레일은 울진군에서 충남 태안군까지 숲길, 마을 길, 물길 등을 잇는 849㎞의 장거리 코스로 55개 구간으로 나뉜다. 1개 구간의 평균 거리는 15㎞로, 일반적으로 하루에 걸을 수 있는 거리로 구성됐다.

‘세계의 트레일, K트레일’로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꿈꾼다. 그 가운데 가장 마지막 구간이자, 동쪽에선 첫 번째 구간인 울진 구간 ‘우리금융길’이 지난 6월 1일 개통됐다. 길은 성류굴을 지나 왕피천과 불영계곡을 넘나든다.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으로 불리는 불영계곡은 금강송면 하원리부터 근남면 행곡리까지 이어지는 약 15㎞의 긴 계곡이다. 특이한 형태의 암석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불영계곡 행곡리에서 ‘처진 소나무’를 만난다. 수령 약 300년의 소나무는 가지가 가늘고 길며 그 수형이 아름다워 천연기념물 제409호로도 보호되고 있다.

수령 약 300년 천연기념물 행곡리 처진 소나무.


행곡리 뒤 작은 야산 너머 왕피천을 끼고 있는 근남면 수곡리 일대에 격암 남사고 선생 유적지가 있다. 생가와 기념관 등을 갖추고 있다. 기념관에는 남사고(南師古·1509~1571) 선생의 일생에 대한 연표와 생애 연출, 격암유록 등 관련 자료와 복제된 고서적이 전시돼 있다. 남사고 선생은 울진 근남면 수곡리 출신 조선 중기의 유학자로, 명종 19년(1564)을 전후한 시점에 효렴(孝廉)으로 조정에 천거돼 사직 참봉에 제수됐다. 말년에는 천문 교수를 역임하고, 임진왜란 발생과 선조의 즉위 등을 예언했다고 전해졌다.

이어 막금마을에서 ‘찬물이 나는 곳’이라 해 이름 붙은 ‘한티재’로 들어서면 유순한 숲길이 반겨준다. 한티재는 조선 시대에 울진에서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첫 번째 고갯길이다. 옛날 사람들의 삶과 발자취가 소나무 향에 품어져 짙게 풍겨 오는 듯하다.

동서트레일 울진 구간의 하이라이트 한티재.


가장 걷기 좋은 구간은 한티재에서 아미사로 넘어가는 구간이다. 지난해 울진·삼척 산불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보았지만, 민관이 힘을 합쳐 소나무숲을 지켜낸 것으로 유명하다. 아미사를 지나면 다시 불영계곡을 만난다. 55번 구간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인 광천 징검다리를 건너면 전치마을이다.

여행메모
동서트레일 울진 구간 18㎞, 7시간
9월부터 은어 금어기… 케이블카 휴업

왕피천에서 은어를 잡고 있는 낚시꾼.

동서트레일 울진 구간은 망양정 해수욕장~망양정~성류굴~행곡리 처진소나무~수곡리 남사고 유적지~막금마을~한티재~아미사~전치마을로 이어지는 약 18.4㎞로, 7시간가량 소요된다. 전치마을부터 중섬마을까지 구간은 오는 12월 개통 예정이다.

주의할 점도 있다. 태풍이나 집중호우 등에는 징검다리 침수 등이 우려되므로 미리 확인하고 찾는 게 좋다. 일부는 도로를 지나는 길이어서 안전사고에 유의해야 한다. 한티재까지는 차로 올라갈 수 있다. 한티재 정상 등에서는 휴대전화가 연결되지 않는다.

망양정 주변에는 울진대종과 전망탑이 세워졌고, 이를 연결한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왕피천을 가로질러 망양정으로 이어지는 왕피천케이블카는 임시휴업중이다.

은어낚시 시즌은 5월 21일부터 8월 말까지다. 9월부터 10월 말까지는 금어기다. 금어기 현수막이 걸리고 지도요원이 단속한다. 불법 어로 행위로 적발되면 내수면어업법 시행령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의 범칙금에 처한다.

울진=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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