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부모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2023. 8. 30.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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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천 목사의 교육 인사이드 ⑫
지난 12일 졸업예배 및 6.25 한국전쟁 정전협정 70주년 참전용사를 추모하며 열린 ‘SDC 나라사랑 콘서트로 위부터 졸업생들의 기념사진촬영. 초등학생들의 국악 공연. 폐회송 ‘마지막 날에’ 찬양 부르는 모습.

우리는 누구나 어릴 적 어머니나 아버지의 품 안에서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을 느꼈던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그 따뜻함은 자녀의 성장과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치며 자녀가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부모가 자녀의 행복과 성장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못할 때, 부모와 자녀 관계는 금이 가고 갈등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늘 내가 과연 좋은 부모인가 돌아보고 스스로 좋은 부모로 만들어 나가야 하며 시대에 뒤 쳐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녀에게 사랑받고 존경받는 부모인가요? 아니면 자녀와의 관계에 갈등이 있는 부모인가요? 아래의 글을 통해 좋은 부모가 되어 자녀에게 고소당하지 않고, 존경받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5가지 방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존경받는 부모 5가지 방법

첫째, ‘권위주의가 아닌 권위 있는 사랑을 하라’입니다. 부모와 자녀는 평등한 관계가 아니라 건강한 권위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상호관계이기에 반드시 부모의 권위를 세워 놔야 합니다. 권위주의적인(authoritarian)것과 권위 있는(authoritative)것은 분명히 다릅니다. 권위주의적인 부모는 자녀를 통제하려 하고 명령하고 복종시키려 합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급속도로 힘을 잃어버리고 자녀의 반항과 단절을 야기하며, 형식적인 아이로 성장시킵니다. 그러나 권위 있는 부모는 그저 자신의 말을 듣게 하려 강요하는 것이 아닌 깊은 사랑의 뿌리를 두고 있는 관계입니다. 가정에서 자신의 위상을 높이려는 것이 아니라 가족을 끝까지 보호하고 책임지는 종의 위치로 내려가는 것이 부모의 권위이기에 오히려 자녀들이 부모의 위상을 높여주고 존경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 ‘자신과 자녀를 절망에 빠트리는 죄책감으로부터 벗어나라’입니다. 부모는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생기면 자신을 탓하며 죄책감에 빠집니다. ‘내가 뭘 잘못해서 아이에게 저런 문제가 생겼지?’ ‘더 좋은 것을 해주지 못해서 그런가?’ 수없이 질문하며 괴로워합니다. 하지만 죄책감을 가진 부모는 교육의 방향성을 상실해 올바른 교육을 할 수 없게 되고, 자기 책망과 죄책감에 빠져서 주변의 조언을 듣지 못합니다. 또한 자녀의 뜻을 무조건적으로 들어주거나 자녀의 역할까지 자신이 다 해주려고 하기 때문에 자녀에게 양육의 주체권을 뺏기게 되고 결정적인 순간에 자녀의 요구에 끌려 다니게 됩니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무언가 실패했을 때 무조건 부모를 탓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책임을 배울 수 없으며 통제할 에너지를 잃어버린 어린 독재자가 되는 것입니다.

셋째, ‘자녀에 대한 나의 욕망을 간절함이라 착각하지 마라’입니다. 우리는 나의 자녀가 정말 잘되길 바라는 간절함으로 자녀를 교육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간절함이 부모의 욕망일 뿐 사랑이 아닌 경우가 많으며 그 부모의 욕망은 자신의 분노와 희망, 콤플렉스를 자녀에게 투사하게 만듭니다. 따라서 부모는 자신의 체면 때문에 자녀를 미워하고 있지 않은지, 자녀가 부모의 소유물인 양 마음대로 하려다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자녀를 탓하고 있지 않은지 자신의 마음을 먼저 들여다봐야 합니다. 자녀를 자신의 유익을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그 욕망을 간절함이라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사랑을 빙자한 욕망이기 때문에 부모의 욕망을 내려놔야만 자녀를 살릴 수 있습니다.

넷째, ‘부모 자신의 과거와 자녀의 현재를 비교하지 마라’입니다. 부모는 아이들이 부모 때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 속에서 풍족하게 살아가는데 왜 더 잘하지 못하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힘든 삶을 살아온 부모만큼 열심히 하지 않는 자녀를 이해하지 못하고 답답해하며 끊임없는 비교의 늪에 빠집니다. 지금 우리의 자녀들의 세대는 더 많은 것을 누리는 것 같지만 사실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린 세대입니다. ‘풍요 속 빈곤’이라는 말처럼 모든 것이 갖춰진 환경 속에서 살아가기에 따뜻한 밥 한끼에 감사할 줄 모르는 저주 속에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누리는 가난이 없는 풍요로움과 발전된 문화와 IT 기술이 우리 자녀들의 감사와 도전과 성실과 도약하려는 의지를 전부 빼앗아 갔음을 알고 이제는 자녀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교육해야 합니다.

다섯째, ‘말로써 교육을 완성하려 하지 마라’입니다. 아이의 잘못을 고치기 위해 부모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도구가 바로 ‘말’입니다. 그러나 자녀의 뿌리 깊은 습성, 약점, 기질적 특징은 몇 마디 말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말은 주로 똑같은 지시와 교정을 반복하는 ‘잔소리’로 끝나 버리기 때문에 순기능을 하기는커녕 대부분 역기능적 역할을 합니다. 사랑으로 시작한 말도 나중에는 화를 전달하는 매개체로 변질돼 부모가 목소리를 높일수록 자녀는 마음의 귀를 닫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부모가 자녀에게 지르는 고함은 부정적 감정을 쏟아내는 역류 된 하수가 되어 자녀의 감정과 영혼을 급속도로 더럽힙니다. 이런 부모의 고함 속에서 자란 아이는 공격적이고 위협적인 아이로 자라거나 공포와 불안 속에서 위축된 아이로 자라게 됩니다. 이 세상 모든 부모들은 좋은 부모가 되어 자녀에게 존경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가장 사랑하면서도 어느 순간 가장 아프게 하는 대상, 가장 힘들게 하는 대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 부모들은 그 이유를 먼저 부모 자신에게서 찾아야 합니다. 가장 자녀를 사랑하면서도 가장 자녀를 부정하는 사람, 가장 자녀의 기를 죽이는 사람이 바로 부모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자녀의 삶과 영혼을 망가뜨리는 가장 큰 주범이 바로 부모 자신임을 인지하고 모든 언행을 돌아보며 그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세상은 선과 악, 긍정과 부정, 감사와 불평, 하나님과 마귀 딱 두 가지로 나눠진다고 성경에 쓰여 있습니다.(고후 6:14~15)

이제 우리의 자녀에게 세상 만물을 다스리시고 부모와 자녀 관계를 주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가장 올바른 가치 기준임을 끊임없이 가르쳐 주십시오. 그것이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주는 가장 값진 믿음의 유산이며 예수님을 알려주는 부모가 가장 좋은 부모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토록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유산을 자녀에게 물려줄 때 그 자녀의 인생은 결코 실패란 없으며 긍정과 감사가 넘치는 믿음의 선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고 자신에게 예수님을 가르쳐준 부모를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자녀로 자라게 될 것입니다. 부모가 먼저, 예수님을 구하며 위의 5가지 방법을 기억하고 실천함으로 자녀들에게 존경받고 하나님께도 칭찬받는 멋진 부모가 되기를 바랍니다.

홀리씨즈교회 담임

< 아래에는 SDC를 통해 하나님을 배우고 자녀 교육의 지혜를 얻어 부모와 자녀가 서로 존중하며 함께 믿음의 길을 걸어가는 홀리씨즈교회 서미혜 권사님의 사례를 소개합니다 >

서미혜 홀리씨즈교회 권사
아이들 SDC교육 통해 소중한 말씀 영접


친정어머니는 조계종, 시어머니는 천태종을 다니시며 불교에 열심인 양가 환경 속에서 지인의 소개로 SDC와 서대천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서울대를 보내려면 과목당 최소 200만원 과외비를 쏟아 부어야 할 큰아이가 고1 때쯤이었습니다.

첫 만남에서 목사님께 들은 이야기가 “매년 70만 명이 수능을 본다. 그중 1등급 4%, 2등급 7%까지 총 11%인 7만 7천 명이 1~2등급인데 서울대 연고대 정원이 1만 명 정도고,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 정원이 7만 명에 불과하다. 숫자상으로 2등급을 해도 7천 명의 아이들은 인 서울(in Seoul)을 할 수 없다”라는 참혹한 입시 현실이었습니다. 이어서 목사님은 “SKY대 가는 아이를 원하느냐? 3개 국어 잘하는 아이가 좋겠느냐? 전략을 바꾸면 대학이 보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에 종교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저는 ‘기독교’라는 남의 둥지에 알을 낳았고, 난생 처음 꿈도 꾸지 못한 ‘유학’으로 아이들의 대입 전략을 바꾸게 됐습니다.

공부 잘해 좋은 대학 가려고 왔던 SDC에서 하나님은 목사님을 축복의 통로로 우리 아이들을 집안의 첫 번째 ‘믿음의 조상’ 되게 하시고, 거룩한 씨앗(홀리씨즈)들인 두 아이를 통로로 저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할렐루야!

‘문제 부모는 있어도 문제아는 없다’는 것이 서 목사님의 교육헌장 1장 1조입니다. 저 역시 목사님을 만나고야 내가 자녀를 절망에 빠트리고 죄책감을 들게 했던 엄마였으며 ‘엄마라는 이유’로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우격다짐을 했던 내 모습을 뒤 돌아 볼 수 있었습니다. 시험 당일 8점짜리 찍어준 수학 문제 틀리고 왔다고 “머리는 장식품으로 달고 다니냐”며 아이에게 면박을 일삼았고, 주말에 스파게티 먹고 싶다는 아이에게 “장을 못 봤으니 일주일 기다리라”고 말했던 일방적이고 부끄러운 엄마였음을 반성합니다.

‘부모가 바뀌어야 아이가 바뀐다’는 교육에 따라 저도 변해가기 시작했고, 모르면 꼭 다시 여쭤보는 방법으로 자녀 교육에 지혜를 배웠습니다. SDC에서는 학생들이 부모님께 존댓말 쓰기를 가르칩니다. 저는 딸들과 반말 대화가 친근해 좋았고 존댓말은 왠지 쑥스럽고 어색해 ‘꼭 존댓말을 해야 하냐?’ 질문하니, 목사님은 “아이들이 사춘기가 되기 전에 반드시 존댓말을 쓰도록 가르쳐야 한다. 사춘기가 돼 부모와 부딪힐 일이 있을 때 존댓말을 하던 아이는 반말까지 수위를 높이지만 반말을 하던 아이는 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현답을 주셨습니다.

SDC 학생들의 일정을 두고 “주말에는 공부도 좀 쉬고 놀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공부를 가장 잘하고 싶은 것은 부모보다도 아이 자신이다. 아이들과 공부는 자존심과 비례하며 공부를 못하면 아이들이 주눅이 든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도 주말에 놀지 않고 공부하는데 평범한 우리 아이들이 주말을 다 놀고서는 따라갈 수가 없어 공부해야 한다”였습니다. “아이들의 이 꼴 저 꼴은 도대체 언제까지 봐주어야 하느냐?”고 질문을 드렸을 때 목사님의 답은 “예수님을 제대로 가르쳐 주었을 때까지”였습니다.

이처럼 SDC 안에서 하나님을 배우고 큰 아이는 워싱턴대학을, 작은 아이는 FIT를 조기 졸업했으니 저는 만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서툴렀던 좋은 부모 되기는 아직도 차근차근 배우고 있고 예수님을 잊어버리면 다시 가르쳐주시며 “평생 AS해 줄 테니 걱정하지 말아라”고 말해주시는 서대천 목사님이 계시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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