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동안의 증언 – 간토대지진, 혐오와 국가폭력

2023. 8. 30. 18:1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간토대지진 100년, ‘삭제의 죄악’에 맞서 ‘기억의 복원’을 말하다!
혐오와 국가폭력이 낳은 인재, 간토대진재!
20년 동안의 답사와 연구로 정리한 역작!

2023년 9월 1일은 간토대지진 조선인 학살 100주기다.

《백년 동안의 증언》은 1923년 간토대지진 이후 일본의 혐오사회와 국가폭력에 맞서온 한·일 작가와 일반 시민들의 기록이다. 이 책은 와세다대학 객원교수를 지낸 김응교 저자가 지난 20년 동안 간토대지진 관련 장소를 답사하고 여러 증인을 만나며 문헌을 연구 정리한 책으로, 반일(反日)을 넘어 집단폭력에 맞서는 두 나라 시민의 연대를 제안한다.

일본 정부는 지난 백년 동안 조선인 학살로 이어진 간토대지진을 끊임없이 삭제하려 했지만, 《백년 동안의 증언》은 의도적인 ‘삭제의 죄악’에 맞서 ‘기억의 복원’을 말한다. 이것만이 같은 비극을 막는 길이며, 한일 양국의 새로운 백년을 위한 시작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사건’에서는 지진이 어떻게 인재로 전개되는지를 정리하여 보여준다. 2장 ‘15엔 50전’은 쓰보이 시게지(壺井繁治)의 장시(長詩)
「15엔 50전」

을 국내 초역으로 수록하여 선보인다. 3장 ‘증언’에서는 이기영, 김동환, 구로사와 아키라,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드라마 ‘파친코’ 등 여러 작품을 통해 간토대진재를 다룬 작가와 감독의 증언을 전한다. 4장 ‘진실’에서는 진실을 드러내고 피해자의 치유와 가해자의 책임을 촉구하는 일본의 개인과 모임을 소개한다. 5장 ‘치유’에서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피해자와 삭제와 왜곡으로 시달리는 가해자 모두의 치유를 위한 방안을 살펴본다.

쓰보이 시게지 長詩
「15엔 50전」

국내 초역 수록
왜 ‘15엔 50전’인가

쓰보이 시게지의
「15엔 50전」

은 14연 204행으로 일본 시로서는 보기 드문 장시다. 시인은 자신이 직접 겪은 간토대지진 전후 상황을 서사시 정신으로 담담히 그려냄으로써 당시의 부조리를 드러낸다.

간토대지진은 지진 이후 조선인 학살이라는 인재가 더해져 간토대진재라고도 한다. 1923년 9월 1일 지진이 일어난 후 “조선인이 불을 지르고, 우물에 독을 넣는다”는 유언비어가 퍼져 불안에 떨던 일본인들이 9월 1일 밤부터 6일까지 6,000여 명의 조선인을 학살했다.

-십오엔 오십전(十五円 五十錢)이라고 해봐!
손짓당한 그 남자는
군인의 질문이 너무도 갑작스러워
그 의미를 그대로 알아듣지 못해
잠깐, 멍하게 있었지만
곧 확실한 일본어로 대답했다
-쥬우고엔 고쥬센
-좋아!
칼을 총에 꽂은 병사가 사라진 뒤에
나는 옆에 남자의 얼굴을 곁눈질로 보면서
-쥬우고엔 고쥬센
쥬우고엔 고쥬센
이라고 몇 번씩이나 마음속으로 반복해보았다
그래서 그 질문의 의미를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아아, 젊은 그 시루시반탱[印絆夫]이 조선인이었다면
그래서 “쥬우고엔 고쥬센”을
“츄우코엔 코츄센”이라고 발음했더라면
그는 그곳에서 곧 끌어내려졌을 것이다

이 대목에 이르러 독자는 이 장시의 제목이 주는 의미를 비로소 깨닫게 된다. ‘15엔 50전’이라는 일본어 탁음을 발음할 수 없는 조선인을 골라내려는 ‘광기의 오락’이었음을.

일본 정부는 아직도 조선인 학살에 대하여 ‘유언비어에 의한’ 시민의 우발적인 폭동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쓰보이 시게지는 “유언비어의 발화지가 어디였는지”를 정확히 지적한다. 집단 광기의 발화지는 일본 경찰이며, 그 배후에는 일본 정부가 있다고 말이다. 이것이 이 시의 중요한 창작 동기임을 밝힌다.

김응교 저자는 독자에게 “
「15엔 50전」

을 읽고 일본인을 미워한다면, 그것은 가장 저급한 시 읽기” 라고 말한다. 시인은 사건을 민족 대 민족의 싸움이 아닌, 가해자에 의한 피해자의 죽음으로 보고 있다. 그는 조선인에게 이족 혐오의 애국주의를 부추기려 하지 않는다. 일본인이라는 ‘우리’ 안에 적을 겨냥하고 있다. 그가 본 ‘일본 안의 적’은 당시의 지배 체제였다. 반대로 지배 체제가 본 ‘일본 안의 적’은 사회주의자와 조선인 등이었다.

쓰보이 시게지는 시를 통해 분노와 애정을 표시하려는 것이 아니라, 분노와 애정을 넘어 국제 연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배려하는 일본인의 혐오사회
일본은 왜 내셔널 아이덴티티를 강요하는가

간토대지진이 일어나기 전 일본의 조선인에 대한 감정은 곪을 대로 곪아있었다. 1910년부터 1918년까지 실행된 토지조사사업으로 많은 조선인 농민들이 경작지를 잃고 일본과 만주로 향했고, 조선인 노동자로 인하여 일자리를 잃게 된 일본 노동자와 시민의 원망은 극에 달했다. 뿐만 아니라 3.1운동 이후 일본 신문은 조선인을 적으로 보도함으로써 일본인의 조선인에 대한 공포감은 극대화되던 차였다.

일본 당국은 지진으로 인해 정부로 향하는 국민의 공포와 불안을 조선인에게로 향하는 불안과 공포로 바꾸어놓았다. 조선인 학살은 단순한 개인의 폭력 이전에, 국민들에게 내셔널 아이덴티티를 강요했던 ‘국가적 폭력’이었다.

본래 일본인은 ‘상불경(常不輕)’의 태도를 삶의 윤리로 중시한다. 남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늘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배려한다. 배려할 줄 아는 일본인들이 어떻게 끔찍한 조선인 학살을 저질렀을까. 일본인 특유의 ‘나와바리’, 곧 세력권인 ‘우리’라는 공동체 안에서는 철저히 ‘상불경’을 실천한다. 아쉽게도 그 나와바리 밖에 있는 타자는 ‘상불경’이 아닌 ‘적’으로 대하는 섬나라 특유의 원형 문화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조선인 학살은 나와바리를 벗어난 타자를 괴물화하는 일본 특유의 문화가 드러난 경우라 할 수 있다.

일본은 ‘종사회’(縱社會)다. 일본어로 ‘다테사회’라고 한다. 사회의 삼각형 제일 위에 천황이 있고 가장 아래는 천민이 위치하는 등 수직적 관계가 견고히 형성되어 있다. 이 종속적 구조를 따르지 않는 거주자는 혐오와 차별의 대상이 된다. 일본 특유의 종교적인 관료조직은 일본 근대화를 견인해왔지만 타자를 모멸하는 혐오 사회의 원인이기도 하다.

도쿄 지사 이시하라 신타로는 2000년 4월 9일, 도쿄 네리마의 육상 자위대 1사단 창설 기념 행사 축사에서 ‘삼국인’ 발언을 했다.

"지금 도쿄에는 불법 입국한 삼국인과 외국인이 흉악한 범죄를 거듭하고 있습니다. 이제 도쿄의 범죄 형태는 과거와 달라졌습니다. 이 상황에서 큰 재해가 일어난다면 엄청난 소요 사건까지도 상정할 수 있는 형국입니다. 경찰력은 한계가 있으니 자위대원 여러분에게 출동을 부탁하면 치안 유지에 나서주길 바랍니다."

삼국인, 이른바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인, 중국인, 대만인을 ‘일본 안의 적’으로 선언했던 것이다. 도쿄라는 거대한 메갈로폴리스의 밑바닥 계층인 이들을 섬멸해야 할 ‘사회적 해충(害蟲)으로 여기는 이 발언의 의도는 100년 전과 다를 것이 없다.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자 여전히 두려움을 악용하여 혐오 사회를 조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반일은 위험하다
백년의 갈등, 그 해법은 무엇인가

2008년 호주 노동당 총리 케빈 러드는 원주민 애버리지니(Aborigine)들을 모시고 ‘도둑맞은 세대’에 사과했다. 호주는 매년 5월 26일을 ‘국립 사과의 날’로 지키며 혐오 문제를 극복하려 애쓴다. 1970년 독일 총리 빌리 브란트는 폴란드 바르샤바 위령탑 앞에서 무릎 꿇고 사죄했다. 백년 이상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지배했던 흑인 차별은 1994년 넬슨 만델라에 의해 멈추었다. 이들은 진실을 밝히고 보복 대신 사면하고 화해의 공동체를 이루어나갔다.

일본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일본에도 아시아에 저지른 백년의 과거를 괴로워하는 일본 시민, 작가, 학생 들이 분명히 존재한다.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는 “일본이 어느 정도 사죄한다 해도 충분하지 않은 큰 범죄를 한국에 범했다. 게다가 아직 한국인에게 일본은 충분히 사죄하지 않고 있다.” 라고 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과거 일본의 침략 사실을 인정하고 상대국이 됐다고 할 때까지 사죄해야 한다.” 라고 했다. 소수이긴 해도 일본 내에도 과거사에 대해 반성하는 지식인들이 있기에 단순한 반일은 위험하다.

우리는 집단적 광기라는 것이 망상(妄想)에 불과하다는 뚜렷한 기억(記憶)을 새겨야 한다. 따라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반대하고 군인 위안부 문제나 왜곡된 역사 교과서를 시정하려는 일본 시민 단체와 연대하고, 한국과 일본의 양심 세력·연구자·작가들이 ‘우리’가 될 때, 장시
「15엔 50전」

의 숙제는 그 만남의 자리에서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

저자는 일본 정부가 변할 수 있을까 묻는다. 그 가능성이 0%라고 해도 일본 정치인들의 변화를 기대하고 모든 매체를 통해 바른 말을 하는 정치인을 격려하고, 잘못된 판단을 세뇌시키려는 정치인에 대한 비판을 멈추어선 안 된다고 말한다.

온라인 중앙일보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