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사 정신이 제대로 박혀 있었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 [이게 이슈]
[김동규 기자]
▲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교내뿐 아니라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에 대해서도 필요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
ⓒ 연합뉴스 |
1938년생인 표명렬 예비역 장군은 육사 18기(1958년)로 중위 복무 중이던 1965년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표 장군은 '공보정훈' 관련 보직을 연이어 맡으며 육군의 '정신 무장'에 대한 고민을 지속해 왔다.
표 장군은 정훈감 재직 시 독립군과 광복군 인사들을 육사로 초청해 생도들의 사열을 받게 해 화제가 된 바 있다. 예편한 후에는 우리 군을 인권 존중의 '민주군대', 평화통일을 뒷받침하는 '통일군대'로 개혁할 것을 주장하며 천주교인권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등에서 활동했다. 이라크 파병이 추진될 당시 이에 반대하며 대한민국재향군인회를 나와 평화재향군인회를 설립하기도 했다.
독립군과 광복군 출신 인사들을 대한민국 '육사'로 초청했던 예비역 장군은 이번 홍범도 흉상 논란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30일 오후 표명렬 장군을 인터뷰했다.
- 간단한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일생 동안 대한민국 군대 개혁에 관심을 두고 살아온 표명렬입니다. 저는 지난 1965년 당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위관 장교였습니다. 이때 미군과 합동작전을 펼치는 과정에서 큰 깨달음을 얻어, 지금껏 정훈 관련 고민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당시 제가 본 미군은 인간의 존엄성이 없는 우리 군대와는 너무도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사병들을 진급 목적의 노예로 생각하지 않는 그들의 문화를 보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이나 역사에 대해 그 어떤 개념도 갖지 않고 무기만 가진 군대여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훈병과에서 평생을 보냈습니다."
- 육군본부 정훈감을 지내셨습니다.
"정훈감은 우리 군의 군사력을 뒷받침하는 '정신전력'을 관리, 유지하는 보직입니다. 우리 군에 무기체계를 중심으로 한 물리적인 군사력이 있잖아요? 이것의 배경이 되는 게 정신전력입니다. 우리의 의식을 어떻게 견지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는 육본 정훈감 재직 시절 국군의 정신, 정통성, 이념, 철학 등 장교들이 가져야 하는 품성을 관리,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당시 국군기무사령부와 갈등을 빚기도 했습니다.
우리 군의 정통성은 항일무장투쟁 정신에 있습니다. 그것은 전체주의 왕조로 돌아가기 위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조국 독립을 위한 자랑스러운 투쟁의 역사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육사는 조국이라는 단어, 민족이라는 단어에 대해 아무 고민 없는, 정신문화 없는 곳이 되어 버린 것 같아 걱정됩니다.
사관학교는 생도들이 국군의 사상, 철학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육사에 들어가서 어떻게 출세할지 고민할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정신을 갖도록 해야 합니다. 이게 제가 했던 정훈의 일이었습니다."
▲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등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 회원들이 29일 오후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 정문에서 육군사관학교의 독립운동가 흉상 철거 규탄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
ⓒ 권우성 |
"우리에게는 누가 뭐라 해도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지향한 최초의 정부, 임시정부의 역사가 바로 그것입니다. 임시정부에는 정부를 지키는 군대도 있었습니다. 이분들을 비롯한 독립군, 광복군 선배님들은 대한민국 국군의 진정한 뿌리입니다.
육사에서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하라'는 교육을 받고 장교가 되었음에도 가슴 속에 정의가 없는 이들을 봤습니다. 그래서 정훈감으로 일하며 이런 것들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도록 구체적인 교육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권력에 붙어서 출세의 길을 걷는 이들 말고, 정권에 아부하는 이들 말고, 진짜 군인다운 군인이 나올 수 있는 군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독립군, 광복군 선배님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서울 청량리에 작은 사무실을 얻어 활동하고 계셨습니다. 우리 국군의 정통성이 독립군, 광복군에 있음에도 그렇게 활동하고 계시는 모습을 보니 이게 뭔가 싶었습니다.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박희도 대장에게 제안해 이분들을 육군본부 광장에 모셨습니다. 독립군, 광복군 선배님들을 모시고 군악대 퍼레이드를 하는데 다들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여기서 끝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한독립에 대한 연극도 만들어 보여드렸습니다. 그분들께 여러분들이야말로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 육사가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치우는 건 육사의 정신이 제대로 박혀 있었으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육사의 전통은 정치적 중립입니다. 대한민국을 위해서 선조들이 어떻게 싸워왔나요? 그 구체적 상징이 바로 독립군, 광복군입니다.
그 시절 독립군으로서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이들이 바로 지금 육사가 치우려고 하는 장군들입니다.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생각해 보면,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 전력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독립운동하려면 사회주의자들과 함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홍범도 장군의 목적은 대한독립이었습니다. 이런 걸 문제 삼으려 한다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남로당 전력부터 문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홍범도 장군은 우리 국군의 자랑스러운 선배님입니다. 이분의 흉상을 이전하겠다는 건 국군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겁니다. 저는 지금 홍범도 장군이 대한민국 국군으로부터 결코 받아선 안 될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분을 이렇게 취급하는 건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행위입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저는 현재 시골에 내려와서 나무 키우며 여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일을 접하고 너무 화가 나서 이야기합니다. 우리 군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왜 버리려 합니까. 이런 분들을 전체주의 북한만 기리도록 하겠다는 겁니까? 그리고 그 자리에 친일 전력이 확실한 백선엽 장군을 넣겠다고 하는데, 역사에는 팩트란 게 있습니다.
역사는 거짓으로 꾸밀 수 없는 것입니다. 친일 전력이 있는 백선엽 장군을 영웅으로 만들려는 군 수뇌부가 있는 한 우리 군의 정신은 지금처럼 썩은 상태를 유지할 겁니다. 제가 모신 독립군, 광복군 선배님들이 흘렸던 눈물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반드시 정의의 길로 간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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