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혐오 가득한 SNS, 마크 저커버그가 묵인하는 이유
[이인미 기자]
▲ 도나 주커버그(페이스북 마크 주커버그의 동생) |
ⓒ EIDF |
다큐멘터리 <백래시: 디지털시대의 여성혐오>(아래 <백래시>)는 여성혐오 범죄를 다룬다. <백래시>는 2023 EBS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출품작 중 한 편이며, D-Box에서 '다시보기'가 가능한 작품이다.
<백래시>가 짚어주듯, 여성혐오 범죄는 어제오늘 새롭게 탄생한 범죄가 아니다. <백래시>는 여성혐오라는 것이 주제 면에서나 소재 면에서 새롭지 않다고 강조한다. 왜냐면 그것이 다분히 천박하고 폭력적인 방식이긴 하나 '성역할 전통(고정관념)'을 환기하기 때문이다. 여성은 부엌에 있어야 한다, 여성은 입을 다물어야 한다 등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이 다만 전통인 듯, 전통 아닌, 전통 같은 것일 뿐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전통적 성역할 고정관념이 무너지고 있다는 느낌을 따라 여성혐오에 시동을 거는 게 사실이다.
굳이 범죄행위로까지 발현되진 않았을지라도 여성혐오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때 여성혐오의 의미는 '모든 여성이 싫다'라기보다는 '영향력 있는 여성이 싫다'에 가깝다. 여성이 직속 상관으로 부임하는 사태를 어색하게 느끼는 이들이 21세기에 들어선 지금도 여전히 많다. '여성상위시대'라는 말이 수십 년 전부터 통용되었지만, 그 낱말이 여성상위시대를 여성과 남성 모두가 편안하게 받아들인다는 표현은 아니다.
그렇지만, 여성혐오 범죄가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여성들만 엄격히 선별하는 절차를 밟는 것 같지는 않다. 다큐멘터리 <백래시>도 경고하듯, 여성혐오 범죄는 장차 영향력 있는 여성으로 성장할 만한 여성들도 그 대상이 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사실상 모든 여성이 여성혐오 범죄의 피해 후보자 혹은 잠재적 피해자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리라.
여성혐오도 자기표현이다?
오늘날 여러 SNS(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는 여성혐오를 발표하는 데에 최적화된(?) 활동무대가 되어있다. 원칙적으로 모든 SNS는 자기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끔 잘 설계된 매체다. 사람들은 SNS에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 원한다면 그 게시물은 '좋아요'를 받을 수 있도록 광범위한 익명의 대중들에게 공개된다. 나의 SNS 게시물은 내 고유한 자기표현으로 간주된다. 이같은 SNS의 보편적 원칙을 따라, 숱한 여성혐오 발언들까지도 자기표현의 한 종류로 취급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자기표현의 자유에 대한 옹호'라는 외피를 뒤집어쓴 '회원수 유지라는 상업적 이익'이 SNS를 여성혐오 범죄의 온상으로 만든다는 점을 눈치챌 수 있다.
일례로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는 여성혐오 범죄의 예방과 처벌에 시종일관 뜨뜻미지근하게 반응하는 중이다. 그런데 페이스북의 경우, 일기장에 사적으로 토로할 법한 개인적 편파적 경험들에서 나온 여성혐오적 의견이 공개되면, 동조자들이 '좋아요'를 누르며 연대하도록 유도하는 플랫폼이 된 지 오래다. '좋아요'가 많이 붙은 의견은 그 의견의 도덕적 올바름 여부를 초월해, SNS의 알고리즘을 타고 더 많고 더 다양한 사람들에게 일파만파 전달된다.
감정을 즉각적으로 자극하는 의견일수록 즉각적으로 '좋아요'가 달릴 수 있다. 때로는 균형 있고 예의 바른 토론 자체가 불가능한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최근에는 자신들을 나치(Nazis)에 견주거나, 나치문양을 자신들의 상징으로 삼는 여성혐오 범죄자들마저 있다. 혹자는 공포스럽게 느껴 피하고 혹자는 그냥 떠들어대는 것일 뿐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치부하는 이 표현들 역시 종종 자기표현의 일환으로 간주된다.
<백래시>는 페이스북을 비롯해 각종 SNS를 통해 여성혐오 공격을 받은 피해자 네 명을 차례차례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그들은 각각 국회의원(이탈리아), 교사(캐나다), 영화제작자 겸 연기자(프랑스), 하원의원(미국)으로서 공적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하다 여성혐오 범죄에 속절없이 피해를 입은 여성들이다. 공교롭게도 이 영화엔 아시아 여성이 단 한 명도 출연하지 않았는데, 아시아 여성들이라 해서 공적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하지 않는 게 아니며, 따라서 여성혐오 공격범위 안에 아시아 여성들이 포함되지 않는 것도 아님은 물론이다.
▲ <백래시> 영화의 한 장면. |
ⓒ EIDF |
두말할 나위 없이 세상 모든 여성들은 여성혐오에서 자유롭지 않다. 공격수위 면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여성혐오는 마치 '유령인 듯' 전 세계 곳곳을 어슬렁거린다. 그들은, 도나 저커버그(마크 저커버그의 동생)가 지적한 것처럼, 영향력 있는 여성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그 여성들을 깎아내리겠다는 소위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온라인 여성혐오 목표물로 뽑히면 두 겹의 어려움을 경험한다. 한 겹은 온갖 욕설로 여성을 직접 비난하는 발언이고, 다른 한 겹은 여성을 보호하는 발언이다. 여성을 보호하는 발언은 부드럽고 친절하게 여성을 위로하지만, 마침내 피해여성을 공적 영역으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여성의 공적 영향력이 줄어들어야 한다는 여성혐오 범죄의 의도를 현실화시켜준다.
<백래시>가 예시한 바에 따르면, 온라인 여성혐오 괴롭힘을 당하는 피해여성을 향해 어떤 이들은 '계정을 삭제하는 게 좋겠다'라고 조언한다. 이는 피해자를 직접 보호하는 기술적, 논리적 해결방안이 될 수 있다. A라는 여성이 자신의 계정을 삭제하면 A를 향한 여성혐오 온라인 괴롭힘은 자연히 중단되니 말이다. 그렇다면 여성혐오 온라인 괴롭힘이 중단되었을까? A는 안전해졌을지 모르나, 여성혐오 온라인 괴롭힘은 중지되지 않았다. A에게서 성공사례를 한 번 맛보았으므로 타깃을 바꾸어 다시 시작되는데, 더 정교해지고 더 악랄해진다. 여성혐오의 비난과 욕설을 받을 피해후보 여성들은 (공적 영역에서 여성이 계속 활동하는 한) 말하자면 '무궁무진'하게 제공된다.
온라인 괴롭힘에서 그치지 않는다?
<백래시>는 여성혐오 온라인 괴롭힘이 '강간, 폭행, 살인'을 암시하거나 예고하거나 심지어 현실에서 '실행되는' 단계로 나아가는 경우가 꽤 있음에도, 실제로 그런 사건이 발생하기까지는 대수롭지 않게 무시된다는 점을 비판한다. 실제로 온라인 괴롭힘이 오프라인으로 옮겨가면 비로소 강력범죄 사건으로 진지하게 다루어지는 사례들이 간간이 있다. 그러나 매번 그런 것도 아니며, 강력범죄 사건으로 다루어지기를 기대하며 '강간, 폭행, 살해'가 실제로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건 더더욱 안 될 말이다.
현실에서는 <백래시>에 출연한 프랑스의 영화제작자나 미국의 흑인 하원의원의 경우처럼, 피해자가 두려움을 못 이겨 공적 영역에서 자신을 스스로 삭제하는 일이 먼저 일어난다. 그러한 경력단절 후 그녀들의 공적 영역 복귀는 아마 간단치 않은 일이 될 것이다. 물론 이 간단치 않은 일을 해내는 용감한 여성들이 있기는 하다. 여성들의 물러남은 'X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라는 식으로 합리화되며 그 합리화 또한 피해 당사자에게는 분명히 유익하지만, 궁극적으로 따져보면 여성혐오 온라인 괴롭힘에서 어쩔 수 없이 도피하는 행위에 다름 아니다.
여성혐오를 극단으로 몰아붙이는 사람들 때문에 하릴없이 정신이 피폐해져 여성혐오에서 도피하는 사태가 유발되는 한, 그리고 여성혐오 범죄자들이 피해 여성의 도피를 자신들의 업적(?)으로 획득하도록 놔두는 한, 여성혐오는 당분간 아니 앞으로 좀 더 오래도록 유지될 것 같다. 여성은 모름지기 고분고분 조용해야 하고, 여성은 얌전히 집안에 머물러야 한다는 낯익은 성역할 전통(고정관념)이 피해 여성의 도피로 성취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여성혐오 범죄에는 직접 행위자와 간접 행위자가 있다!
다큐멘터리 <백래시>는 이탈리아의 한 남성 고위공직자(시장)가 여성혐오 공격자로 맹활약하자 그의 추종자가 날마다 결집되는 기묘한 상황을 상세히 고발한다. 그 남성 고위공직자를 고소해서 정식으로 재판을 받아 그를 간신히 멈추게 했더니, 웬걸, 그의 추종자들이 힘차게 들고일어나 여성혐오 공격을 확대재생산했다.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랄까. 또 캐나다의 한 대학교에서는 여성 사용자를 가장해 여성혐오 공격을 양산하는 한 범죄자를 (피해자들이 추적해) 경찰에 고발했지만 정작 경찰은 아무 대응도 하지 않았다. 여성혐오 범죄자의 공격수위는 줄어들지도 낮아지지도 않았다. 그는 체포되지 않았다. 학교 차원의 공식적 경고조치도 시행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신중히 따져보아야 할 것은, 여성혐오를 직접 저지르는 가해자들이 물론 근본적 문제지만, 여성혐오를 저지르는 가해자들을 제지하는 데에 힘을 쓰지 않고 피해자 여성들을 조심시키는 데에 더 많은 힘을 쓰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지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여성혐오 범죄가 횡행할 때 피해자 여성을 조심시키는 일에 유독 초점을 맞출 경우, 뜻하지 않게 기존의 여성혐오 범죄를 방치하는 부대효과를 낳을 수 있다. 그런 데다 해당 피해자 여성을 조심시켜 그 여성을 공적 영역에서 물러나도록 기어코 설득하게 되는 때에는, 앞서 한 번 언급했듯이, 사실상 여성혐오 범죄가 주야장천 관철코자 했던 성역할 전통(고정관념)에 동의해주는 셈이 되기도 한다.
<백래시>는 바로 그 문제를 계속해서 거론한다. 여성혐오 범죄자들이 여성혐오에 대해 침묵하는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사람들 때문에 오늘도 활동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다는 현실적 문제를 반복적으로 언급한다. 요컨대 여성혐오 범죄의 경우, 이를테면 범죄를 저지르는 직접 행위자가 한 편에 존재하고, 다른 한 편엔 범죄를 방치(방조)하는 간접 행위자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백래시>를 보며 관객들 스스로 자문자답을 실천해보기를 권한다. 나는 여성혐오 범죄의 직접 행위자인가, 간접 행위자인가, 둘 다 아닌가? '둘 다 아니다' 쪽이 더 많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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