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문도를 불법 점거한 영국 [조선의 의인, 조지 포크]
[김선흥 기자]
한국인 여러분, 안녕하세요. 조지 포크예요. 1885년 6월 한양에서 전합니다.
한국의 여름은 무덥지만 밤하늘은 아름답죠. 맑게 빛나는 별들로 수놓인 밤하늘을 바라보노라면 내 마음 속에도 별들이 떠오르곤 했죠. 내 마음 속에는 세 떨기의 별 무리가 빛났습니다. 내 나라 미국이 부모 형제가 그 하나요, 일본 나가사키의 여인 카네의 두 눈동자가 또한 그 하나요, 조선인들이 또한 그 하나였지요. 나는 그리움과 기다림을 품고 살았고 현실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지요.
뉴욕항에서 출발한 우편선이 제물포항에 들어오면 그 편에 아버지의 편지가 오지 않을까 하면서 애를 태웠지요. 무심한 아버지. 편지를 잘 보내지 않으시는 아버지를 나는 원망했죠. 그리고 가끔 역정을 내기도 했지요. 내 안전을 늘 걱정하시는 아버지는 날더러 얼른 조선 땅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오라고 하셨기 때문이죠.
"그리운 아버님, 오늘 아침 우편선이 도착했는데 아버님이 5월 3일 쓰신 편지가 왔습니다. 이게 지난 두 달 동안에 제가 아버님으로부터 받은 유일한 편지입니다. 우편선을 한 차례 놓치신 것 같군요. 게다가 우편선의 운항이 불규착적이어서 이처럼 긴 공백이 생겼나 봅니다.
이곳에서 제가 처해 있는 상황이 아버님을 불안하게 만든 것 같아 제 마음이 안 좋군요. 저도 불안하지 않는 건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저의 불안은 이곳의 위험한 정세 때문이 아닙니다. 저의 고충은 우리 본국 정부가 보이고 있는 무책임한 태도 때문입니다. 날마다 저는 조선인들로부터 당신의 나라가 했던 약속은 어떻게 되어가느냐는 질문을 받고 있답니다.
저는 이에 대해 이중의 책임감을 느낍니다. 왜냐면 미국이 조선에 대해 마땅히 이행해야 하는 모든 일에 제가 어떤 방식으로든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죠. 우리 정부의 잘못이 저의 잘못이 되고 우리 정부의 거짓이 저의 거짓이 됩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애써 구축했던 조선과의 우호협력이 허사로 돌아가고 맙니다. 저는 그게 괴로울 따름입니다........
제가 사직을 한다면 6개월 이내에 연봉 3,000불의 다른 직장을 구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일자리는 태평양 지역에서나 찾을 수 있을 거라는 점입니다. 미국에서의 인생에 대해서는 특별한 기대가 없구요. 어떤 이유에서든 이곳 복무가 머잖아 종자부를 찍는다 하더라도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여기에서의 제 직책과 능력 수준 아래의 하위직책은 받지 않겠다는 점입니다. 만일 그런 발령이 난다면 저는 즉시 사표를 던질 겁니다."
-1885.6.30 편지에서
여름 혹서를 위로하기 위해서인지 고종 임금이 선물을 보내주셨습니다. 하절기 정례적인 선물로서 신하들과 와교관들에게 보냅니다. 여러 개의 합죽선과 꿀단지였습니다. 마실을 나갔는데 몸이 가라앉았습니다. 왜 이렇게 기력이 없나 싶어 알렌 의사에게 갔더니 각성제를 주더군요. 그러나 나는 약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약은 결국엔 독이 되니까요.
제주도와 여수의 중간 요충지점에 거문도라는 섬이 있는 것을 아십니까? 우리 서양인들은 그 섬을 해밀턴항Port Hamilton이라 불렀지요. 역사를 아는 사람들은 그 섬을 영국이 1884년 봄에 불법 점거한 사실을 기억할 겁니다. 하지만 영국보다 먼저 미국이 그 섬에 눈길을 보낸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을 겁니다.
작년 그러니까 1884년 챈들러 국무장관이 그 섬을 조차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거기에 석탄 저장소를 만들어 항행하는 미국의 함선과 상선이 기항하여 연료를 공급받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정치적. 외교적 고려도 있었지요. 북에서 남하하는 러시아와 이를 막으로려는 영국이 각축을 벌이면서 전운이 감돌고 있었고 조선의 바다가 그 싸움터로 전락될 소지가 있었으니까요.
만일 그때 챈들러 국무장관의 구상대로 조선 정부에 거문도를 조차하겠다고 제안했다면 순조롭게 성사될 가능성이 많았습니다. 그때만 해도 거문도에 대한 서양 열강의 관심이 높지 않았지요. 그러나 미국 정부는 챈들러의 제의에 관심을 보이지 않아 없었던 일이 되어 버렸고 결국 1년 후에 영국이 점령하기에 이른 것이죠.
그런데 아세요? 사태가 이렇게 악화된 배경에는 한 독일인의 비행이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름이 묄렌도르프Möllendorff인 그 자는 능청스럽게 조선 벼슬아치의 복식과 사모관대를 착용하고 다녔죠. 사람들은 그를 친근하게 '목참판'이라 불렀구요. 지금 내 입에 올리기 민망스러울 정도로 나는 그 자를 맹비난했습니다.
"...영국의 거문도 점거는 어떤 면에서는 이 독일인 악당의 소행으로 말미암았습니다. 지난 두 해 동안 조선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가 된 그는 사기꾼, 망상가에다 불한당 그 자체랍니다. 이 자는 깜냥에 조선인으로 행세한답니다. 현지인의 복장을 입고 다니지요. 그는 순박한 조선인들 사이에서 세도가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그의 세도는 심지어 나라를 장악할 것만 같아 보인답니다.
지난 1~2월 간에 그는 러시아와 모종의 비밀 교섭을 가졌답니다. 낌새를 챈 영국은 '조선이 거문도를 러시아에 주려는 것일까?' 하고 의심을 품게되었지요. 이제 진실이 드러났는데, 묄렌도르프 이 자가 조선에 대한 역적질을 저지르지 않았겠어요? 그 자는 아무런 권한도 없으면서 조선인들 몰래 조선을 처분하려 했던 것이랍니다. 지금 시간이 없어 아버님께 사건의 전말을 다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암튼 이 일로 저는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해야했지요. 언젠가 아시게 될 겁니다.
묄렌도르프는 만인의 적이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 땅을 떠나야 될 겁니다. 제가 그 자에게 한 대 먹였는데, 통쾌합니다."
- 1885.6.30 편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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