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라이트]신념을 지켜야 했다…그렇게 우는 법을 잊어버렸다

이종길 2023. 8. 30.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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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서울시는 지반 붕괴로 초토화된다.

유일하게 파괴되지 않은 황궁 아파트에서는 대책 회의가 한창이다.

"무척이나 올곧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황궁 아파트라는 공동체에 잘 섞이지 않죠. 신념에 충실하다고 해석했어요. 카메라 앞에서도 충분한 정당성을 담보로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랐죠."

그는 "어떠한 어려움에도 굴복하지 않고 견고하게 지켜낸 신념을 보여주고 싶었다. 잠깐의 흔들림도 새어 나오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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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주명화役 박보영
차분한 얼굴로 화합 도모…단연한 모습 탈바꿈도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 어떻게 우는지 몰라 해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서울시는 지반 붕괴로 초토화된다. 유일하게 파괴되지 않은 황궁 아파트에서는 대책 회의가 한창이다. 안건은 외부인 처우. 배척으로 의견이 모이자 602호 주명화가 이의를 제기한다. "아니, 저기. 그래도 다 같이 살 방법을 먼저 찾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요?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보면…." "그게 다 같이 살자는 거예요? 다 같이 죽자는 거지?" "우리가 지금 가진 게 뻔해요. 말은 쉽죠. 우리가 가만히 있다고 그쪽도 계속 그렇게 나오라는 법 있어요? 왜 되지도 않는 말을 하시나?"

주명화는 다정다감한 간호사다. 이 영화에서 가리키는 공생, 협력, 화해 등 가치와 맞닿아 있다. 엄태화 감독은 배우 박보영의 선한 눈빛을 빌려 표현한다. 따뜻한 동정의 손길과 타인에게 굴하지 않는 고집스러움을 모두 부각해 관객을 스스로 돌아보게 한다.

밑바탕에는 사상적 입장이 완전히 다른 커뮤니티가 있다. 그들에게 주명화의 언행은 모순이며 배신이다. 그저 같은 주민이기에 포용할 뿐이다. 박보영은 "답답하고 위선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어느 세계에서나 존재할 거라 확신한다"고 말했다. "무척이나 올곧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황궁 아파트라는 공동체에 잘 섞이지 않죠. 신념에 충실하다고 해석했어요. 카메라 앞에서도 충분한 정당성을 담보로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랐죠."

모순된 커뮤니티 참여는 오늘날 매우 중요한 문제다. 직접적 대화가 아니고서는 융합할 수 없는 문제가 빈번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융합될 가능성이 있다. 의식 단계에서나 무의식 단계에서나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어떤 형태로든 대립하는 커뮤니티의 가치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물론 그 역(逆)도 가능하다.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는 에세이 '나란 무엇인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매우 미시적으로 느껴질지 모르지만 나는 커뮤니티를 통해 사회의 분단을 극복하는 큰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 대립하는, 혹은 관계없는 두 개의 커뮤니티를 보다 큰 하나의 가치관으로 통합하려는 게 아니라 쌍방에 동시에 참여하는 여러 사람의 작은 결속으로 융합을 도모하는 것이다."

주명화의 차분한 얼굴에는 화합을 도모할 능동성이 내재해 있다. 그것은 김영탁(이병헌)의 살인을 확인하면서 본격적으로 발휘된다. 박보영은 그 순간 맹수를 쫓는 사냥꾼의 얼굴로 탈바꿈한다. 비장한 각오를 한 듯 단연한 표정으로 이병헌을 쏘아본다. 그는 "어떠한 어려움에도 굴복하지 않고 견고하게 지켜낸 신념을 보여주고 싶었다. 잠깐의 흔들림도 새어 나오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살인이 융합의 본질을 파괴하는 행위이기 때문이었다. 인간은 타자 없이는 새로운 내가 될 수 없다. 한 인간의 죽음으로 수많은 인간은 자기 변혁의 기회나 성장의 계기를 잃어버린다. 마음에 드는 내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를 가능성을 박탈당한다. 히라노는 "살인은 결코 피해자 개인, 가해자 개인에게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라며 "살인자는 한 사람을 죽임으로써 현실에서 복잡하고 대규모인 파괴를 야기한다"고 강조했다.

안타깝게도 주명화의 삶에서 일상적 공간과 죽음의 공간은 경계 없이 뒤섞인다. 생각 없이 지나치던 공간에서도 죽음의 그림자가 목격된다. 그 기운이 자기 곁으로 다가오자 뺨 위에선 또르르 눈물 한 방울이 구른다. 단순히 슬픔이나 죄책감으로 규정할 수 없다. 덧없이 몰려와 괴롭히는 비관적 생각들로 신념마저 흔들린다. 애도의 웅덩이조차 마음껏 뛰어들 수 없도록. 박보영이 안갯속을 헤매며 찾아낸 디스토피아의 실체다. "어떻게 울어야 하는지 잊어버린 듯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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