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평양 유미' 차단 이어…정부 '北매체 개방' 사실상 중단

박현주 2023. 8. 30.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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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국내에서 보다 쉽게 북한 언론 매체 보도에 접근할 수 있도록 추진해온 북한 언론의 국내 개방을 사실상 중단하기로 했다. 통일부는 지난 1월 업무보고에서 전국 통일관에 노동신문을 배포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또한 보류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7일 조선인민군 해군사령부를 방문한 모습. 노동신문. 뉴스1.


"남북 상호 개방" 공약했지만…


당초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5월 인수위원회를 가동한 뒤 발표한 '110대 국정 과제'에서 "남북 간 상호 개방과 소통‧교류를 추진하겠다"며 언론‧출판 교류, 미디어 콘텐트 분야 교류 등을 예로 들었다. 이후 같은 해 7월 통일부는 윤석열 대통령에 업무 보고를 하며 "북한의 언론‧출판‧방송 등의 단계적 개방을 통해 상호 이해와 공감대를 넓혀가며 민족 동질성을 회복하겠다"고 보고했다.

이처럼 정부 출범 당시 남북 간 '상호' 개방이 전제였던 방송 개방 공약은 한때 북측 방송의 '선제' 개방 구상으로까지 발전했다.

권영세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단기간 내 남북 상호 개방이 어려운 현실 감안해 우리가 먼저 북한 방송 개방을 추진하겠다"며 "위성을 통하지 않고 일반 수신기로 편하게 (북한 방송을) 볼 수 있게 하는 것도 하나의 진전된 조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일반인이 북한 방송을 국내에서 보려면 위성 수신 장비를 갖춰야 하므로 현실적으로 접근이 쉽지 않다.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는 통일부 북한자료센터 등에서만 북한 방송을 제한적으로 시청할 수 있다.
김주원 기자


노동신문 배포도 '스톱'


통일부는 방송 뿐 아니라 북한 신문을 국내에서 볼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했다. 지난 1월 통일부는 업무보고에서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볼 수 있는 장소를 전국 10여개 통일관을 중심으로 확대해나가겠다"고 밝혔다. 현재 노동신문을 보려면 통일부 북한자료센터나 여의도 국회 도서관을 방문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이런 모든 조치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국민 여론과 남북 관계의 현실을 고려해야 할 뿐 아니라 국가보안법 저촉 소지까지 있기 때문이다. 통일부 당국자는 "국민 정서를 고려할 때 북한 방송 개방에 대해선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당초 통일부에 북한 방송 개방 사업을 위해 별도로 배정된 예산도 전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지난해 11월 창간 77주년을 맞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발언을 되새기며 "신문과 통신, 방송을 비롯한 출판보도물은 우리 당의 사상적 대변자, 정치적 무기이며 대중을 계몽 각성시키는 위력한 수단, 힘 있는 진격의 나팔수"라고 보도했다. 노동신문. 뉴스1.


통일부 장관 자문 기구인 통일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정훈 연세대 교수는 30일 중앙일보 통화에서 "윤석열 정부 초기에 담대한 구상을 통해 전향적인 대북 제안을 했지만 돌아온 건 핵 위협뿐이었다"며 "북한이 인권 문제에 대한 개선의 의지가 전혀 없고 적화 통일 전략을 포기하지 않는 상황에서 우리만 북한의 프로파간다로 가득한 방송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北 유튜브, 이미 국내 차단


'북한의 체제 선전물을 여과 없이 국내에 유포해선 안 된다'는 정부의 판단은 지난 6월 국가정보원이 '평양에 사는 유미' 등 북한을 노골적으로 홍보해온 유튜브 영상을 국내에서 더는 볼 수 없도록 방송통신심의위원회를 통해 조치한 데서도 드러난다. 북한이 관영 매체와 유튜브 등 각종 SNS를 통해 보여주는 일상은 현실과는 딴판인 데다 당국의 선전 선동 전략과 검열로 연출된 모습이기 때문에 자칫 국내 여론을 호도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난 6월부터 국내에서 접근이 차단된 유튜브 채널에서 평양 주민들의 일상을 전하는 브이로거 유미가 자신을 소개하는 모습. 유튜브 캡처.


또한 남측이 먼저 방송 개방에 나서는 것 자체가 상호주의 위배된다는 지적도 있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은 "기본적으로 남북 간 상호주의 원칙이 지켜져야 하는데 북한이 일방적으로 도발만 거듭하는 상황에서 그들의 선전선동에 앞마당을 열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정부가 북한 매체 개방을 그대로 추진한다면 북한은 이를 역으로 이용하려고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현 국면에선 북한 사회에 대한 외부 정보 유입 추진과 심리전 강화 등에 방점을 두는 게 맞다"고 말했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도 이날 '2023 한반도국제포럼'에서 "정부는 북한인권 실상을 전파하는 가장 큰 스피커이자 허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적 방향성은 맞아"


다만 한국 사회가 북한의 체제 선전 시도에 이미 충분히 '면역력'을 갖췄다는 반론도 있다. 현 남북 관계 국면에서 당장 방송 개방을 추진하기는 어렵지만 방향성 자체는 옳다는 지적이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북한의 선전선동물에 노출돼도 쉽사리 휘둘리지 않을 만큼 한국 사회의 내성은 이미 충분히 갖춰졌다고 생각한다"며 "현재 해외의 각종 콘텐트가 우리 사회에 유입되지만 바이러스에 면역력을 갖춘 신체처럼 별다른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북 간 상호 매체 개방ㆍ교류가 추진된다면 장기적으로는 북측이 한국에 비해 확연히 질이 떨어지는 조악한 프로파간다를 스스로 개선해나갈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박현주 기자 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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