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으로 연고지 옮기는 KCC... 체육관 신축 등 문제 불거져
[이준목 기자]
▲ 전주 KCC, 부산으로 연고지 변경 30일 오전 서울 강남구 KBL 센터에서 KBL 이사회가 열리고 있다. 이날 열린 이사회에서 KBL은 전주 KCC가 부산으로 연고지를 변경하는 안건을 승인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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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팀 KCC 이지스가 연고지를 22년 만에 전주에서 부산으로 이전하는 것이 확정됐다. KCC 구단은 지자체와의 신뢰가 무너지며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밝혔고, 전주시는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그리고 구단과 지자체의 갈등 속에 오랫동안 프로농구를 성원했던 지역 팬들의 목소리는 철저히 소외됐다.
KBL은 8월 30일 서울 강남구 KBL센터에서 이사회를 열고 KCC의 연고지 변경을 승인했다. 이로써 2023-2024시즌부터 구단의 연고지와 팀명은 '부산 KCC 이지스'로 바뀌게 됐다.
KCC의 전신인 현대는 실업농구 시대(현대전자)를 거쳐 프로 원년인 1997년 대전을 연고지로 하여 창단했다. 이후 2001년부터 팀명이 KCC로 바뀌고 연고지도 전주로 이전하여 올해까지 22년의 역사를 이어왔다.
KCC는 프로농구 통산 정규리그-챔프전 각 5회 우승(역대 2위)에 빛나는 KBL 최고의 명문구단이다. 특히 '전주 시대'로만 국한해도 3회의 챔피언전 우승-2회의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했으며, 이상민, 조성원, 추승균, 하승진, 전태풍, 강병현, 이정현 등 내로라하는 수많은 스타들이 거쳐갔다. 현재도 이승현, 허웅, 최준용, 라건아 등 호화멤버들을 보유하여 강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KCC는 프로축구 명문 전북 현대, 야구의 KIA 타이거즈와 더불어 호남을 대표하는 3대 프로스포츠 구단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KCC는 화려한 역사와 인기와는 별개로, 오랫동안 지자체에서 홀대 논란에 시달려왔다. 특히 홈구장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심각했다. KCC가 전주 시절 내내 홈구장으로 사용해온 전주실내체육관은 1973년에 완공하여 올해로 무려 50년이 됐다. 설립 당시에는 국내 최대 규모의 경기장이었지만 현재는 심각한 노후화로 시설이 크게 낙후된 실정이다.
그나마 2010년대 이후로 시설을 일부 개·보수했지만, 여전히 국내 프로농구단 홈구장 중 규모가 가장 적은 편이고 좌석과 편의시설, 주차 문제 등에 대한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이미 2015년에 건물의 안전등급이 낙제점 수준인 C등급에 그치면서 전주시의회에서도 심각한 노후화로 인한 안전성 문제까지 제기된 바 있다.
전주시는 2016년에도 KCC 구단의 연고지 이전 가능성이 거론되자 전주 월드컵 경기장 부근에 체육관 신축을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7년이 지나도록 체육관 건립은 아직 시작도 하지 못했다. 지난 7월에는 KCC의 홈 체육관 신축이 백지화되며 대신 해당 부지에 프로야구 2군 경기장 건립을 추진하겠다는 방침으로 바뀐 것으로 드러났다. 설상가상 전주시가 전북대와의 국책사업을 내세워, 2025년을 끝으로 전주체육관을 비워달라고 KCC 구단에 통보한 사실이 드러나며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결과적으로 이는 지자체가 프로 스포츠 구단을 얼마나 가볍게 여기는지 드러낸 장면이었다. 여론이 악화되자 부랴부랴 진화에 나선 전주시는 다시 KCC와 신축구장 문제를 협의하겠다며 한 발 물러서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전주시의 행태에 진저리가 난 KCC 구단은 결국 연고지 이전을 결심했다. 현재 전주시청 홈페이지는 사실상 KCC의 연고지 이전을 초래한 지자체의 행태에 분노한 팬들의 성토로 들끓고 있다.
▲ 입장 밝히는 최형길 단장 최형길 전주 KCC 단장이 30일 오전 서울 강남구 KBL 빌딩에서 열린 이사회 종료 후 취재진에게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날 이사회에서 전주 KCC가 부산으로 연고지를 변경하는 안건이 승인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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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C의 연고지 이전은 프로농구 역사적으로도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닌다. 프로농구 유일의 호남 연고팀이던 KCC가 이전하면서, KBL 출범 이래 최초로 호남에 프로농구 팀이 전무한 새 시즌을 맞이하게 됐다. 그동안 KBL에서는 광주 나산 플라망스-골드뱅크, 여수 코리아텐더(1997-2003) 등이 전주 KCC와 함께 호남 지역을 대표하여 프로농구의 역사를 이어왔다.
부산과 프로농구의 돌고 도는 묘한 인연도 눈길을 끈다. 부산은 프로 원년 챔피언을 차지했던 기아 엔터프라이즈(현 울산 현대모비스)의 연고지였다. 하지만 2001년 모비스가 울산으로 떠나고 2년 뒤인 2003년부터 코리아텐더-KTF를 거쳐 KT 소닉붐이 장장 18년간 부산에서 역사를 이어왔다.
2021년 KT가 수원으로 연고지를 옮긴 이후 2년간 공백기를 거친 부산은, 이번엔 KCC라는 새로운 농구단을 맞이하여 다시 한번 프로농구의 역사에 동참하게 됐다. 20년 만에 다시 호남에서 넘어온 연고팀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것도 기묘한 데자뷔다.
전창진 KCC 감독은 2009년부터 2015년까지 부산 KT의 감독을 맡은 경험이 있어서 8년 만에 돌아온 부산이 익숙하다. 한편 올해 새롭게 가세한 이상민 코치는 현역시절 'KCC 전주 시대'를 대표하는 레전드지만, 공교롭게도 올해 코치로 16년 만에 KCC에 돌아오자마자 정든 추억이 깃든 연고지를 이전하게 되면서 홈팬들과 인사도 하기 전에 또 작별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운명을 맞이했다.
또한 KCC의 간판 스타 허웅은 아버지 허재(부산 기아, 1997-99)와 동생 허훈(부산 KT, 2017-2021)에 이어 삼부자가 모두 각기 다른 부산 연고팀에서 활약하는 진기한 기록을 세우게 됐다.
이번 연고지 이전 결정에 대하여 KCC 구단을 비판하는 목소리는 높지 않다. KCC로서도 전주시와의 갈등과 홈구장 문제를 제외하면 20여 년간 안정적으로 정착해온 전주를 떠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부산은 2002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의 영광에 빛나는 한국농구의 성지이지만, 정작 프로농구의 인기는 크지 않았다. 허웅-최준용-이승현-라건아 등 화려한 올스타급 멤버들을 보유한 KCC가 부산의 농구인기를 중흥시키고, 1997년 원년의 부산 기아 이후 26년 만에 부산에서 프로농구 우승팀을 배출할 수 있을지 주목되는 이유다.
KBL의 연고지 제도가 가진 한계
다만 안타까운 것은 연고지 이전 과정에서 팬들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는 현실이다. 이는 태생적으로 취약한 KBL의 연고지 제도가 가진 한계 때문이다. 국내 프로스포츠는 지역보다는 기업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현재 프로농구는 10개 구단중 절반인 5팀이 수도권에, 영남에 4팀(부산 KCC 포함)이 각각 집중되어 있다. 이들을 제외하면 강원도를 연고지로 한 원주 DB 한 팀 뿐이고 호남, 충청, 제주 지역에는 프로팀이 전무하여 지역적으로 대단히 불균형한 연고 구도를 보이고 있다.
모기업 변경과 연고지 이전도 잦아서, 1997년 출범 이래 전신을 포함하여 연고지 이전 사례가 한 번도 없는 구단은 원주 DB, 안양 KGC인삼공사, 창원 LG 단 3팀뿐이다. 여기에 연고지와 모기업까지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은 구단은 창원 LG가 유일하다.
미국이나 유럽은 프로스포츠에서 연고지 개념이 절대적으로 중요시된다. 국내 스포츠 중에서도 연고지 제도가 잘 정착했다는 평가를 받는 프로야구나 축구는 모기업과 별개로 인기구단일수록 연고 지역과의 관계가 끈끈하고 지역색이 강하다는 특징을 지닌다. KIA 타이거즈나 전북 현대, 롯데 자이언츠 같은 팀들은 서울과 수도권 구단들에 비하여 시장과 인프라에서 불리한 지방 구단임에도 엄청난 인기와 화제성을 자랑한다. 지역 출신 프랜차이즈 스타들도 많다보니 해당 팬들은 연고지 구단을 자연스럽게 '고향팀' 혹은 '나의 팀'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프로농구에서는 이러한 연고지와의 유대감이나 밀착관계를 전혀 기대할 수 없다. 농구단은 홈구장에 대한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다수의 구단들은 홈경기가 있을 때만 잠시 방문하는 경우도 많다. 프로구단이 지역 출신 선수들을 우선적으로 데려올 수 있는 권한이나 지역 유스 시스템 등도 없다. 또한 KCC(전주)나 KT(부산), 오리온(대구)처럼 지자체와의 관계가 좋지 않으면 각종 제약을 받고 눈치를 봐야 하는 세입자 신세에 불과하다.
최근 10여 년간만 봐도 고양 소노의 전신인 오리온스는 2011년 하루아침에 대구에서 24년의 역사를 뒤로 하고 '야반도주식' 연고이전을 단행했다. 2021년에는 인천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전자랜드가 모기업이 구단 운영을 포기하고 가스공사가 농구단을 인수하면서 대구로 연고지를 옮겨야 했다. 부산에 있던 KT도 지자체와 갈등을 빚다가 수원으로 떠났다.
KCC는 그동안 LG, 모비스 등과 더불어 프로농구계에서 수도권이 아닌 지방 팀 중에는 그나마 해당 연고지역에서 잘 자리잡았다는 평가를 받으며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던 팀이었다. 하지만 그런 KCC 조차도 22년에 걸친 전주와의 인연을 정리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일은 앞으로 프로농구 어떤 구단에서든 또다시 벌어질 수 있다.
결국 한국 프로농구에서 연고지는 두고두고 뿌리를 내리고 역사를 이어갈 터전이라기보다는, 조건과 계약에 따라 언제든 이리저리 옮겨다닐 수도 있는 '셋방살이' 개념에 더 가까운 게 현실이다. 만일 연고지 이전으로 광주를 홈으로 하는 롯데 자이언츠나 삼성 라이온즈, 부산을 연고로 하는 KIA 타이거즈가 탄생한다면 해당 지역팬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하지만 농구에서는 20년 역사를 이어온 팀이 하루아침에 언제든 지역을 떠나는 것도, 호남에서 영남으로 전혀 다른 지역으로 연고지를 옮기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 과정에서 결국 상처가 가장 오랫동안 남는 것은 팀에 애정을 준 지역 팬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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