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美기름값, 갤런당 4달러 육박…바이든 재선 가도에 ‘빨간불’

김형구 2023. 8. 30.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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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있는 한 주유소에 휘발유 가격이 1갤런당 4.29~5.19달러로 적혀 있다. EPA=연합뉴스

미국 내 기름값이 1갤런(3.78리터) 당 평균 4달러에 육박하는 등 고공행진을 하면서 조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도전에도 빨간 불이 켜졌다. 유권자들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기름값을 잡지 못하면 내년 대선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27일 미 전역의 휘발유 평균 가격은 갤런 당 3.82달러를 기록했다. 올 초 3.21달러에서 약 20% 오른 수치다. 지난해 6월 1갤런당 5달러를 돌파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뒤 꾸준히 떨어졌던 휘발윳값이 최근 다시 상승하고 있다. 수도 워싱턴 DC를 비롯해 하와이ㆍ유타ㆍ네바다 주는 평균 4달러를 웃돌고 있다. 가장 높은 캘리포니아주에선 5달러를 돌파했다. 디젤유 역시 지난 7월 초까지만 해도 갤런당 3.84달러로 비교적 안정세였으나 한 달여 만에 갤런당 4.36달러로 치솟았다.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콜로라도주 코퍼 마운틴의 한 주유소에 디젤유 가격이 1갤런당 5.319달러, 휘발유 가격이 1갤런당 5.059~5.539달러로 적혀 있다. AP=연합뉴스

기름값 상승엔 수요와 공급 요인이 한꺼번에 작용했다. 공급 측면에서는 주요 원유 생산국의 감산 정책이 유가 상승 압력 요인이 됐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비(非)OPEC 주요 산유국들의 협의체인 ‘OPEC 플러스’(OPEC+)가 지난해 10월 200만 배럴 감산에 합의한 데 이어 사우디아라비아가 지난 7월부터 시작한 하루 100만 배럴의 추가 감산을 9월에도 연장하기로 했다. 러시아도 최근 9월 한 달 동안 원유 공급량을 하루 30만 배럴씩 감축한다고 발표하면서 국제 유가 상승을 견인했다.

미 정유업계의 정유 생산량도 하루 220만 배럴씩 줄었다. 팬데믹 기간 동안 방역 문제로 미뤘던 시설정비작업을 올 상반기에 재개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여름철 휘발유 수요 증가가 겹치면서 기름값 급등을 불렀다는 분석이다. 미국 내 정유업계에서는 수요가 늘고 공급이 제한적인 상황이 가을 이후에도 계속되면서 유가 상승 기조가 한동안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재선 캠페인에 본격 시동을 건 바이든 대통령 캠프엔 비상이 걸렸다. 대통령 취임 후 기록적인 경제성장률에 사상 최저치 수준의 실업률 등 지표상 호조를 보이는 경제를 앞세워 ‘바이드노믹스’(Bidenomicsㆍ바이든 대통령 이름을 딴 경제 정책) 집중 홍보에 나섰지만 떨어질 줄 모르는 기름값에 힘을 못 쓰고 있다.

워싱턴 DC에 있는 에너지 컨설팅 기업 래피던에너지그룹 대표이자 미 국가석유위원회 위원으로 있는 로버트 맥널리는 “백악관이 최근 유가 상승에 패닉에 빠진 모습”이라며 “치솟는 기름값은 대통령에 대한 신뢰와 지지율에 위협을 줄 것”이라고 했다. 2008년 6월 미국 사상 최초로 월 평균 휘발윳값이 갤런당 4.105달러로 4달러 벽을 돌파한 뒤 5개월 만에 치러진 그 해 대선에서 당시 여당 공화당은 민주당(버락 오바마 후보)에 패해 정권을 내준 사례가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경제정책 ‘바이드노믹스’(Bidenomics)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제는 공수가 바뀌어 야당이 된 공화당은 바이든 대통령의 대표 공약인 친환경 에너지 드라이브 탓에 기름값이 올랐다며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2020년 대선 때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약 2조 달러를 투입해 청정에너지 인프라에 투자하겠다고 공약했다. 반면 화석 에너지 인프라 건설과 개발은 사실상 중단되면서 유가 상승을 불렀고 미 국민의 부담으로 이어졌다는 게 공화당의 비판 요지다.

백악관은 기름값 추이를 면밀히 지켜보며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도 천정부지로 오른 기름값을 끌어내리느라 진땀을 뺐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해 3월부터 전략비축유(SPR)를 대거 풀기 시작해 급한 불을 일단 껐다. 이후 남아 있는 전략비축유는 전체 용량의 절반 수준인 3억7100만 배럴로 1980년대 이후 최저치 수준이다. 지난해 7월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부터 “국제사회에서 ‘왕따’ 시키겠다”고 했던 사우디아라비아 실권자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만나 원유 증산을 요청했으나 설득에 실패하는 ‘굴욕’을 당했다.

2024년 대선을 앞두고 다시 기름값 끌어내리기에 사활을 건 바이든 정부는 일단 전략비축유 회복 속도를 늦추기로 했다. 미국은 이달 초 계획된 비축분 600만 배럴의 구매를 취소했다. “미국을 화석연료로부터 멀어지게 하겠다”던 대선 공약을 뒤로 하고 원유 공급량 확보에도 다각도로 나섰다. 멕시코 만에 있는 연방정부 소유 부지 7300만 에이커를 경매에 부쳐 시추 작업에 들어가게 했고, 최근 알래스카의 석유 시추 프로젝트을 승인했다.

세계 최대 원유 매장국인 베네수엘라에 대한 경제 제재를 일부 완화해 원유 생산의 숨통을 틔우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미국은 베네수엘라의 2018년 대선을 부정선거로 규정해 당시 재선된 마두로 대통령을 공식 행정부 수반으로 인정하지 않았지만 최근 양국 정부는 고위급 물밑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기름값을 떨어뜨리기 위해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만났던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에는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과의 관계 회복을 타진하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 비영리 연구 기관 루가센터의 폴 공 선임연구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민주ㆍ공화 양당의 대선 경선 하이라이트인 내년 3월부터 후보 확정 시기인 내년 여름철까지 이르는 기간의 기름값이 지금처럼 고공비행을 한다면 바이든 정부 경제 실정론이 상당한 규모로 커질 것”이라며 “기름값 추이에 따라 바이든의 재선 전략이 크게 달라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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