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시게 느껴졌던 고양이 때문에... 눈물이 났다

조영준 2023. 8. 30.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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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버링 무비 293] 인디그라운드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14 < SAVE THE CAT >

[조영준 기자]

 영화 < SAVE THE CAT > 스틸컷
ⓒ 인디그라운드
*주의!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누군가에게 곁을 내어준다는 건 어떤 것일까? 단순히 자신의 옆자리에 앉을 수 있는 공간을 빌려주는 일은 분명 아닐 것이다. 특정한 시각적 형태로 보여줄 수 없는 표현들은 그래서 어려운 부분이 있다. 다만 한 번의 사건으로 완성해 낼 수 있는 종류의 표현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내어주고, 다시 내어주고, 또 내어주고, 그렇게 여러 번의 시간이 겹치고 또 쌓인 후에야 비로소 이 문장은 오롯이 완성된다.

영화 < SAVE THE CAT >에는 두 인물이 등장한다. 영화를 만드는 진희(이태경 분)와 책을 쓰는 영우(옥자연 분)다. 두 사람은 작업실을 함께 공유하며 따로 또 같이, 자신의 작업을 이어간다. 어느 날, 진희가 고양이 한 마리를 데리고 온다. 두 사람의 작업실 앞에 버려져 있던 아이다. 영우의 동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공간을 이 작은 생명체는 분주히 뛰어다니며 적막함과 고요함을 깨뜨리기 시작한다. 내내 잠겨 있던 작업실의 방문 하나를 열어젖히는 것도 그의 몫이다.

두 사람과 고양이 한 마리. 이들의 만남을 통해 영화가 나아가고자 하는 마지막 지점은 어떤 모양일까. 예고도 없이 찾아온 존재를 대하는 진희와 영우의 모습처럼 영화는 각각의 장면에 작은 온기를 불어넣으며 하나의 문장을 완성해 나간다. 내어주는 쪽의 입장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머물게 되는 쪽의 시선도 결코 가벼이 하지 않는 태도로. 찾아오는 누군가를 마주할 때와 마찬가지로 떠나고 난 이후에도 제 자리를 잘 어루만지는 마음으로 말이다.

02.
이 작품의 중심에 놓여 있는 것은 '누군가에게 내어주는 품'에 대한 이야기다. 이 주제를 가운데 두고 영우와 진희 두 사람이 공유하는 큰 이야기 하나에, 영우와 고양이 메기(원래 이름은 감자인데, 진희에 의해 이름이 바뀌고 말았다) 사이에서 형성되는 작은 이야기 하나가 완성된다. 작은 이야기는 큰 이야기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훨씬 더 직접적이고 자세한 예시로 기능하게 되는데, 가령 처음에서 이야기했던 시각적 형태로 보여줄 수 없어 어려운 감각을 대신해 보여주기 위함이다. 영화는 그렇게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존재의 호기심으로 인해 두 인물의 과거를 들여다볼 수 있는 통로를 가지게 된다.

영화가 바라보는 품의 시간적 위치가 하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 역시 중요한 지점이다. 앞서 '누군가에게 내어주는 품'이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여기에서 쓰인 내어준다는 표현은 어떤 관계의 시작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끝점 역시도 함께 포함한다. 그러니까 이 작품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관계의 어느 한 부분만이 아니라 처음과 끝 모두에 놓여 있는 셈이다. 모호한 관계의 시작에 이어, 무르익은 관계가 언젠가 다시 떨어지는 동안의 모든 과정. 영화 전체를 두 개의 이야기로 분절한 것은 시작에서부터 무르익기까지의 과정을 하나의 덩어리로, 이제 회복할 수 없는 기억이 놓여 있는 연결된 관계를 또 하나의 덩어리로 형성하여 최종적으로 한 자리에서 이어내고자 한다.
 
 영화 < SAVE THE CAT > 스틸컷
ⓒ 인디그라운드
03.
두 인물의 자리를 잠시 미뤄두고 두 사람의 품으로 뛰어 들어온 생명체를 먼저 들여다보자. 진희에 의해서 이름까지 바뀌며 두 사람의 공간에 머물게 된 메기는 다소 정체되어 있던 작업실의 공기를 완전히 바꿔놓는다.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아도 작업을 할 때마다 모습을 드러내며 제 존재를 조금도 감추려 하지 않는 고양이로 인해 두 사람의 환경은 바뀌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두 사람의 곁을 파고들던 메기는 이윽고 영우와 진희가 오래 감추어두고 있던 과거의 일까지 파헤치게 된다.

굳게 닫혀 있던 방문을 이제 열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진희의 제안에 영우는 끝내 열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이러한 모습과 이후의 침울한 분위기를 생각하면, 방법까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방을 열고 들어가 뭔가를 깨뜨리고 도망쳐 나오는 고양이의 허리에는 막중한 책임이 걸려있다.

다시 말하면, 외부인 격에 속하는 그의 행동이 아니고서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방문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다시 꺼낼 수 있었을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물론 당장에야 그 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하게 되지만, 이 일을 계기로 두 사람은 외면하기에 바쁘던 마음을 직시하는 쪽으로 조금 돌려놓게 된다.

다시 말해 이 영화 속에서 고양이의 존재란, 누군가의 품에 안겨 돌봄을 받는 대상이기도 하지만 아직 어떤 시간으로부터 빠져나올 준비가 되지 않은 인물의 환기를 불러일으키는 대상이기도 하다. 품 속의 무언가를 잃어버린 채로 오래 방치되어 있던 누군가의 자리를 스스로의 존재로 하여금 다시 비워내고 정리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손님과도 같은 역할로 말이다. 영화는 이 작은 생명체가 가진 그런 역할을 빌미 삼아 큰 이야기와 작은 이야기 사이를 연결시키고, 그 통로를 통해 관객들이 영우와 진희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유도한다.

04.
"자기가 다치지 않고 책임질 수 있는 사람."

영우는 진희가 데려온 고양이를 함께 머물게 하는 조건으로 이렇게 말했다. 너무 힘들어 보이면 반드시 그런 사람을 찾아 내보내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룸메이트의 일방적인 결정으로 인해 함께 생활하게 된 영우와 자신이 직접 데리고 왔기 때문에 직접적인 보호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는 진희의 사이에는 다소 거리가 있다. 광고 연출부 일을 나가면서까지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자 하는 진희의 모습에서 그 차이를 발견할 수 있게 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로 인해 메기와 함께 시간을 더 보내게 되는 것은 영우다.

이런 상황에서 영화가 영우의 모습을 더 바라보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쌓이는 시간에 의해 서서히 품을 내어주는 쪽의 역할을 영우가 하게 되는 것이다. 작업을 성가시게 하는 메기와 조금씩 교감하기 시작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장면에 이어 갑자기 사라져 버린 메기를 찾기 위해 온 동네를 찾아다니며 걱정을 하고 진희를 만나 눈물부터 터뜨리는 장면에 이르는 모든 장면에는 그녀가 자신의 품을 내어주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새로운 존재의 성공적인 안착, 이제 남은 것은 'M의 방'이라고 쓰인 저 방문 너머의 일일 뿐이다.
 
 영화 < SAVE THE CAT > 스틸컷.
ⓒ 인디그라운드
 05.
"아까 메기가 명진이 방에 들어갔었다? 문도 열 줄 아는 고양인가 봐."

'M의 방'이라고 쓰인 방문 너머의 일은 눈물을 쏟아내는 영우의 모습 뒤로, 고양이 메기가 그 방에 들어가 깨뜨린 화분의 모습에서부터 시작된다. 진공 상태와도 같은 적막함 속에 홀로 갇혀 있던 화분이 그로 인해 중력에 제 몸을 내던지게 되면서부터다. 이 커다란 파열음은 방문 바깥의 공간에서 내부에 묶인 이야기를 외면하던 두 사람에게도 전해지고, 비로소 영우와 진희는 이제 세상에 없는 명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게 된다.

어떤 대상을 사랑하는 과정을 통해 과거의 슬픔을 비워냈다거나 새로운 대상으로 인해 놓지 못하고 있던 미련을 놓을 수 있게 되었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를 상실한 경험에 너무 매몰된 나머지 다른 곳을 둘러볼 여력이 없던 상황에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줄 존재를 만나게 된 것에 오히려 더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다시 채울 수 있었기 때문에 비워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는 계기를 만나게 되는 것 말이다. (때마침 완성된 영우의 원고는 추측컨대 아마도, 명진과 관련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고양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의 마음을 보듬고, 사람은 옆 사람이 데려온 그 작은 생명체에 마음을 내어준다. 다시, 고양이로 하여금 보듬어진 마음은 아직 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던 존재에 대해 함께 이야기할 수 있게 되고, 그 이야기는 이제 남은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갈 새로운 동력이 된다. Save the Cat. 제목만큼은 이 사회가 세상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선을 담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 속 세상은 그렇지 않다. Save each other. 서로가 서로를 구하는 쪽에 더욱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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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작품은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설립한 인디그라운드(Indieground)의 독립영화 라이브러리 열네 번째 큐레이션 ‘내일도 만날 너와 나’ 중 한 작품입니다. 오는 2023년 8월 30일까지 인디그라운드 홈페이지를 통해 무료회원가입 후 시청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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