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젓갈 담그는 일이 마지막이 아니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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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충민 기자]
엄마는 1932년 생입니다. 본인은 아흔 셋이라고 당신의 나이를 말하는데, 만 나이 통일 덕분에 이제 엄마는 아흔 한 살입니다. 두 살이 줄어드니 엄마가 젊어진 것 같습니다. 나이를 줄여준 현 정부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겠습니다. 어디까지나 제 심리적 위안이지만 말입니다.
▲ 엄마 손 젓갈덕분인지 오랜만에 밥 한 공기 다 비우고 후식으로 복숭아까지 드셨습니다. 거친 손에 엄마의 고단한 세월이 묻어납니다. |
ⓒ 강충민 |
"놔난 디만 노라게.. 경허민 여브는거 호나 어신다."
("놔두었던 곳에만 놓아라. 그렇게 하면 잃어버리는 물건 하나 없다.")
엄마가 먹고 싶다는 음식
이런 엄마가 나이를 드니, 요즘 음식을 잘 못 먹습니다. 평소에 좋아하던 머릿고기, 연어회, 소고기 미역국을 번갈아 해 드려도 그릇을 다 비우지 못합니다. 그런 날이면 또 나와 한 입씨름을 하게 됩니다.
사실 음식을 안 먹으면 걱정되서 하는 소리인데, 내 억양에 짜증이 배어나왔을 테지요. 또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하라고 해도 얘기하지 않으니까요. 그러던 엄마가 혼잣말처럼 당신이 먹고 싶은 걸 드디어 말했습니다.
"자리젓 포는 거 말앙 이녁냥으로 맨든거 먹어시민 좋키여. 고도리 젓도 막 맛좋는디...."
(자리젓갈 파는 거 말고, 직접 만든 거 먹었으면 좋겠다. 고도리 젓갈도 참 맛좋은데...)
자리젓은 제주도에서 여름에 물회로 자주 먹는 자리돔젓갈을 말하고, 고도리는 고등어 새끼를 말합니다. 엄마는 자리돔과 고등어 새끼로 만든 젓갈을 먹고 싶다고했습니다. 그것도 마트에 파는 것이 아닌 직접 담근 걸로요.
엄마가 모처럼 용기내서 한 말이지만 처음에는 그냥 흘려듣고 직접 만들어 파는 곳을 알아보려고 했습니다. 자리젓갈까지는 자리돔이 많이 잡히는 서귀포 보목포구 근처에서 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고도리는 전혀 답이 나오지 않더군요. 그 어느 곳에서도 고도리 젓갈을 파는 곳이 없었습니다.
▲ 제주 서부두 새벽시장 고도리 제주 서부두에서 고도리를 샀습니다. 어느 정도 크기까지 고도리라고 하는지 사실 저도 잘 모릅니다. |
ⓒ 강충민 |
우선 자리돔 젓갈과 고도리 젓갈의 재료인 그것들을 구해야 했습니다. 6월 말에 서귀포 보목 포구에서 자리돔을 5kg구입했습니다. 나의 특유의 넉살덕분인지 거의 6kg을 주셨습니다. 잘 생긴 남자가 자리돔 사러 왔다고 더 준다면서 말이지요.
자리돔을 사고 다음 날, 고도리가 있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제주시 서부두 새벽 수산시장에 갔습니다. 제 바람이 통했는지, 파는 아주머니의 "회로로 먹을 수 있다" 는 정말 싱싱한 고도리를 살 수 있었습니다.
아, 그때는 정말 내가 두 젓갈을 완성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보다는 무지 기뻤습니다. 먹을 수 있을 만큼 될런지는 그 다음 몫이라 생각했고요. 고도리를 일부러 사러 오는 경우는 별로 없다면서 비닐봉지 가득 담아주신 아주머니에게 고맙다 인사하고 그것을 차에 실으면서 혼잣말을 했지요.
"고도리 젓갈? 까짓거 내가 담가버리겠어!..."
자리돔 젓갈, 고도리젓갈
젓갈에 대한 기본적 지식이 없어도, 그것의 재료는 내용물과 소금만 들어간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알 것입니다. 소금의 비율을 얼마나 하느냐에 따라서 젓갈이 되느냐, 마느냐도 결정된다는 것, 또한 다 아는 사실입니다.
주재료에 소금을 너무 많이 넣으면 액젓처럼 흐물거리고 짜서 도저히 먹지 못하게 되고 적게 넣으면 썩어버리게 됩니다. 설령 썩지 않는다 해도 냄새가 나서 먹을 수 없습니다. 적당한 소금과의 비율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럼 적당한 재료와 소금의 비율은 얼마일까요? 5:1입니다.
▲ 완성된 자리돔 젓갈 자리돔 젓갈이 잘 익었습니다. 적당한 염도에 젓갈 특유의 비린내까지 완성되었습니다. |
ⓒ 강충민 |
고도리는 내장만으로 따로 젓갈을 담근다고도 하던데 나는 그것까지는 엄두가 나지 않아 고도리의 내장은 전부 빼고 담갔습니다. 고등어 새끼라고는 하지만 제법 실한 녀석들이라 소금이 내장속까지 들어가지 못해 자칫 부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사실 앞에서도 말했듯, 자리돔젓갈은 몇 차례 담갔지만 고도리 젓갈은 처음이라 위험요소는 사전에 차단했습니다.
▲ 고도리젓갈 처음 담근 고도리 젓갈이 참 잘 됐습니다. 고등어에서 나온 기름이 어우러져 국물도 감칠맛이 났습니다. |
ⓒ 강충민 |
밥 한 그릇 뚝딱 비우는 엄마
이제 두 달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혹여 젓갈들이 궁금하고, 소금 비율이 잘못되어 상하지나 않았을지 염려하여 두어 차례 열어보고 위아래가 잘 섞이도록 했습니다.
▲ 뼈를 바른 고도리 젓갈 고도리젓갈은 먹기좋게 머리를 잘라내고 뼈를 바릅니다. |
ⓒ 강충민 |
▲ 뼈를 바른 고도리젓갈은 먹기 좋게 잘라줍니다. 한 입 크기로 먹기 좋게 잘라줍니다. 그 다음 양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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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된 젓갈은 그 다음부터는 냉장보관해야 합니다. 냉장보관하기 전에 당연히 엄마의 밥상에 올려야 했습니다. 자리돔은 뼈가 억셉니다. 자리돔의 머리를 제거하고 지느러미와 배 바로 옆에 붙은 날카로운 가시도 가위로 잘라내서 버립니다.
▲ 양념된 젓갈 먹기 좋게 자른 젓갈에 양념을 합니다. 젓갈물이 있는 채로 양념을 하면 안 됩니다. |
ⓒ 강충민 |
▲ 자리돔젓갈, 고도리젓갈 두 가지 젓갈을 양념했습니다. |
ⓒ 강충민 |
젓갈에 양념을 할 때는 물기가 있는 채로 하면 안 됩니다. 꼬옥 짜준 젓갈에 고춧가루를 먼저 넣고 색을 입혀야 합니다. 젓갈물이 있는 채로 고춧가루를 넣으면 절대 빠알간 색이 들지 않습니다. 거무스름한 원래의 젓갈색이 바뀌지 않습니다. 고춧가루에 다진 마늘, 매실액, 다진 풋고추, 참기름 아주 조금, 참깨를 넣고 버무립니다. 이렇게 버무린 후에 젓갈물을 넣으면 농도와 색깔이 맞습니다.
▲ 엄마가 그리워 한 밥상 찐 양배추에 자리돔젓갈, 엄마가 그리워 한 음식입니다. 이제 고도리젓갈도 추가 합니다. |
ⓒ 강충민 |
제주사람들은 양배추를 간낭이라고 합니다. 간낭은 일본어입니다. 제주학연구센터장 김순자 박사는 간낭대신 사발나물이라고 한다고 알려줍니다. 찐 양배추 위에 밥을 얹고 자리돔 젓갈을 올려 먹는 것을 제주사람들은 여름의 별미로 생각했습니다. 우리 엄마도 이 맛을 그리워했습니다. 게다가 고등어 새끼인 고도리젓갈을 같이 올렸으니 밥상을 받기 전부터 참 좋아했습니다.
"막 맛 이시난 밥 혼사발은 다 먹어졌저, 너미 하영 먹었져..."
(아주 맛이 있어서 밥 한 사발은 다 먹을 수 있었다. 너무 많이 먹었어.)
엄마가 오랜만에 밥을 한 사발 다 비웠습니다. 혹시 짜게 먹는게 안 좋을까, 물에 헹궈 양념했지만 한 켠으로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삼시 세끼 주구장창 젓갈만 먹게 할 것은 아니기에 반찬 걱정 한 가지는 덜었습니다.
적절하게 조절하면서 말이지요. 고기도 먹게 하고, 단백질 음료도 드리고, 그러면서 오늘 저녁은, 혹은 내일에는 기대를 갖게 한 마디 하며 엄마를 달래는 게 좋겠습니다.
"오늘 이거 다 먹으민 낼랑 간낭에 자리젓이나 고도리 젓갈 주쿠다예."
(오늘 이거 다 먹어야, 내일은 양배추에 자리젓이나 고도리 젓갈 드릴게요.)
그런데 이렇게 젓갈을 담그고 엄마가 맛있게 밥 한 공기 다 비우시는 것을 보고도 한숨이 절로 나옵니다. 이제 일본 오염수 방류에 이 젓갈 담그기가 마지막이 되면 어쩌나요? 왜 늙은 아들의 눈 먼 노모를 위한 젓갈담기도 마음놓고 못하게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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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제주의 소리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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