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현장] '프로 첫 실점' 충남아산 20세 골키퍼의 눈물과 분노
[풋볼리스트=아산] 윤효용 기자= 축구에서 수중전은 언제나 변수가 많다. 피치는 미끄럽고 공 속도, 바운딩 등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비가 많이 올 경우 바닥이 드러나면서 컨트롤 자체가 어려운 환경이 된다.
29일 오후 7시 아산의 이순신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충남아산과 경남FC의 '하나원큐 K리그2 2023' 29라운드가 그랬다. 경기 전부터 많은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그라운드가 고르지 못했다. 골라인 앞에는 잔디가 완전히 드러났다. 얼마 전 보수공사를 진행했던 충남아산이지만 늦여름 쏟아지는 비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이는 변수로 작용했다. 충남아산은 전반 19분 경남의 코너킥 상황에서 수비수 이찬욱에게 헤딩 선제골을 내줬다. 이찬욱의 머리를 떠난 공은 문현호 골키퍼 바로 앞에서 불규칙적으로 튀어올랐다. 문현호는 급하게 손을 뻗었지만 공은 어깨를 타고 뒤로 흘러 골라인을 넘었다. 막을 수 있었던 헤딩 슛이었지만 미끄러운 공과 울퉁불퉁한 노면이 변수를 만들어냈다.
충남아산은 경기에서 패했다. 이후 경남을 몰아붙였지만 내려서서 역습을 노리는 상대를 뚫긴 쉽지 않았다. 역시 불규칙적으로 튀는 공 때문에 매끄럽고, 빠른 공격 전개는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공중볼로 한 방을 노려야 했지만 상대도 이를 알고 있었다. 박동혁 감독은 후반전, 헤딩에 능한 미드필더 김혜성을 공격수로 투입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결국 문현호의 실수가 팀 패배로 연결되고 말았다. 심지어 이 실점은 본인의 프로 무대 첫 실점이었다. 지난 시즌 데뷔한 문현호는 작년에 4경기, 올해 3경기를 뛰며 실점이 없었다.
충격은 컸다. 박동혁 감독에 따르면 문현호는 경기 후 눈물을 보였다. 박 감독은 "경기 끝나고 하이파이브 할 때 울더라. 본인이 막을 수 있었던 거라 생각해서 속상했던 거 같다. 제가 잘했다고, 이렇게 경험을 하고 발전하는 거라고, 좋은 경험을 하는 거라고 말했다. 현호는 이제 스무살이다. 경험만 쌓이면 좋은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위로했다.
문현호는 당장은 용납하지 못했다. 그의 표정에서 스스로에 대한 자책, 반성, 분노 등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무엇보다 팀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컸다. 문현호는 "감독님께서 그렇게 성장하는 거라고 해주셔서 감사했다. 그러나 저는 프로 선수이고 성과를 내야 한다. 감독님께 죄송한 마음이 크다. 더 열심히 해서 좋은 성과를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경기장 상태 때문이라는 핑계도 대지 않았다. 문현호는 "그라운드가 사실 축구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러나 핑계를 대면 끝도 없다. 핑계보다는 제가 실점한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 고쳐서 보완하겠다"며 반성의 자세를 보였다.
큰 실수로 프로 첫 실점을 했지만 추가실점 없이 풀타임을 마쳤다. 이에 대해서는 "실점은 언제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항상 경기에 임했다. 실점을 하더라도 그 이후에 최대한 멘탈을 잘 잡고 하려고 생각했다"며 "실점 후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거기서 제가 멘탈을 놔버리면 팀은 더 크게 패할 거다. 그러면 저나 팀에 마이너스다"며 실점 후 상황을 설명했다.
문현호는 유스 명가 매탄고를 거쳐 2022년 충남아산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연령별 대표팀에 언제나 소집되는 유명한 선수는 아니었다. 그러나 김은중 감독 눈에 들어 U20 대표팀에 발탁됐고 지난 6월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U20 월드컵에도 다녀왔다. 조별리그 3차전에서는 감비아를 상대로 뛰어난 선방을 펼치며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쳤다. 큰 대회 후 문현호의 성장을 본 박 감독은 최근 출전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프로 첫 실점은 이제 본격적으로 커리어를 시작한다는 의미다. 탄탄대로 보다는 울퉁불퉁한 피치를 견뎌보는 것도 큰 경험이다. 오늘 문현호가 느낀 감정들은 그를 더욱더 성장시킬 것이다. 충남아산 관계자는 문현호가 구단 내에서도 훈련량이 많은 걸로 유명하다고 들려줬다. 이런 자세에 경험만 더해지면 좋은 선수가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박 감독의 말대로 이렇게 발전하는 거다.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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