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해외에서 살아보기, 이렇게 이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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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욱 기자]
마닐라 공항을 떠난 항공기는 이내 대류권 상층에서 항로를 따라 구름 위를 나른다. 발 아래는 기상변화가 느껴지지 않아 뭉게구름이 솜털처럼 떠 있다. 7천여 개의 섬으로 이뤄진 나라답게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섬들은 미동도 없이 바다 위에 정박해 있다. 너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라 아스라이 멀어 그 내막을 속속들이 볼 수 없기에 아름답고 신비롭기만 하다.
숨가쁘게 달려온 지난 시간들이 기창 밖으로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올 4월 강원도 영월에 있는 코이카 글로벌인재교육원에서 해외봉사단원 기본교육을 1개월간 이수했다. 이어 7월 중순 필리핀으로 출국하여 마닐라에서 5주간의 현지적응교육을 거쳤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 25일 1년 동안 봉사활동을 수행하게 될 임지 다바오로 가는 중이다.
직장생활 내내 퇴직 후엔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해오다 우연히 코이카 해외봉사단을 접했다. 금년 초 코로나19 팬데믹이 완화될 즈음 공고문이 뜨는 걸 보고, 내 버킷리스트 1순위인 해외에서 살아보기와 맞아떨어져 일사천리로 신청 서류를 준비하여 지원하게 되었다.
꽃샘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영월의 4월은 봉사단원으로 입문하는 내게 설렘과 두려움으로 서성이게 했다. 봉사단원으로서의 기본소양과 현지어 교육 등 꽉 짜여진 바쁜 일상 속에서도 나는 쉬이 내 좌표를 찾지 못하고 머뭇댔다.
남쪽이나 서울에서는 이미 벚꽃이 지고, 철쭉이 앞다퉈 필 무렵인데도 찬바람에 나풀거리는 벚꽃을 보며 아침저녁으로 우리를 서성이는 맹수처럼 교육원 울안에 갇혀 배회했다.
가족을 두고 홀로 멀리 떠나는 다소 이기적인 가책과 혹서의 땅에서 버텨낼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과 언어도 통하지 않고 봉사활동에 대한 현장경험이 없는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낯선 곳에서 맞게 될 새로운 날들이 영월의 꽃샘추위를 더 춥게 했던 모양이다.
국내교육을 마치고 2개월 보름 동안의 다소 긴 대기시간을 거쳐 출국할 때는 영월의 시간은 이미 아스라이 먼 기억 같았다. 그때 가졌던 설렘이나 두려움은 온데간데없고 이제부터는 현실과 부딪혀 나가야만 했다.
▲ 코이카 필리핀사무소에서 입소식을 마치고 가운데가 김은섭 소장, 좌측 끝이 이형원 부소장, 우측에서 네번째가 필자 |
ⓒ 임경욱 |
항공기는 어느새 민다나오섬 상공으로 진입한 모양이다. 마닐라에서 다바오까지 2시간의 비행거리가 짧게만 느껴진다. 코이카 해외봉사단은 교육 및 농수산업, 보건, 위생, 농촌개발 등 각 분야의 봉사단원 파견을 통해 개발도상국 경제사회발전에 필요한 기술인력 양성 및 기술이전에 우리의 청장년 인재들이 참여하는 기회가 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시류에 따라 청년층은 자꾸 줄어드는 반편, 중장년층이 늘어나는 추세란다.
개발도상국 주민들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 선진기술을 이전하고, 우리의 개발 경험을 전수해 소득수준 향상 및 생활환경을 개선해 나가는 것이 봉사단원의 주 임무이다.
또한, 우리나라와 상대국의 역사, 문화, 전통을 교류함으로써 우호협력 관계를 돈독히 하고 양국 국민의 상호이해증진을 도모하는 것도 중요한 임무 중 하나다. 아울러 봉사활동 경험을 국내사회에 환원시킴으로써 해외봉사에 대한 국민 공감대를 형성해 국민의식 함양과 국가 브랜드가치를 높여 나가는데 기여할 것이다.
우리 항공기는 다바오국제공항을 목전에 두고 고도를 낮추고 있다. 빈 좌석이 없는 객실에는 외국인이 나 혼자 뿐인가, 그래도 낯설지가 않다. 이곳 다바오 TESDA(기술교육개발청)내 한필직업훈련센터가 내가 일년 동안 머물며 봉사활동을 할 곳이다.
이곳에서는 3년 학위과정과 단기 기술교육과정, 지역사회 기술개발과정 등을 개설하여 운영하며, 학과도 산업자동화, 메카트로닉스 기술, 토목공학 기술, 자동차 기술, 농업 및 생물시스템공학 기술 등 산업전반에 대한 기술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나는 농업 및 생물시스템공학 디플로마 과정을 맡았다. 학생 25명을 대상으로 온실원예 중심의 전문지식과 기술을 전수하고, 토양 혼합물 및 유기비료 시용, 온실의 환경적 고려사항, 작물습성 및 관리시스템 등에 대한 내용을 함께 토론하고 공유하게 될 것이다.
내가 그들을 가르치기에는 너무 부족하지만, 그동안 쌓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방법밖에 다른 방도가 없다. 퇴직 후에 이렇게 먼 타국까지 와 시작하는 봉사활동이니만큼 후회 없는 값진 시간을 보내고 싶다. 그래서 이들에게 나와 내 나라, WFK(World Friends Korea)를 자랑스러운 표상으로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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