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줄고, 재정건전성 악화…내년 성장률 '2.2%'도 불안
허리띠 졸라 맸지만 내년 건전성도 악화
한은 내년 성장률 전망치 2.2%도 불안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 규모를 656조9000억원으로 당초 계획보다 줄이면서 한국은행이 최근 전망한 내년 성장률 2.2% 달성도 쉽지 않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가 허리띠를 졸라매는 대신 재정건전성이라도 개선했다면 긍정적일 수 있지만, 예산안 축소에도 불구하고 내년 관리재정수지는 올해보다 더 나빠질 예정이어서 중장기 성장률 하방 압력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30일 한국은행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내년 정부 예산안은 올해(638조7000억원)보다 18조원(2.8%) 늘어난 656조9000억원으로 확정됐다. 지출 예산 자체는 올해보다 늘었으나 당초 계획보다는 감소했다. 앞서 기재부는 지난해 8월 '2022~2026 국가재정운용계획'을 통해 2024년 총지출 규모를 669억7000억원(4.8%)으로 제시했다. 이와 비교하면 내년 예산은 약 12조8000억원 줄어들게 된다.
이에 따라 내년 성장률 전망치 달성에도 일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한은은 지난 24일 수정경제전망을 통해 내년 성장률을 지난 5월 전망치 대비 0.1%포인트 낮은 2.2%로 제시했는데, 여기엔 삭감되기 전 정부지출 규모가 반영됐다. 중국 경기와 반도체 수출, 국제유가 등 가뜩이나 내년 성장률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정부마저 씀씀이를 줄이면서 2%대 초반 성장률마저 흔들리게 됐다.
한은 관계자는 "정부의 내년 예산안이 성장률에 미치는 영향은 더 분석해봐야 한다"면서도 "지난해 중기 재정계획에 나와 있던 금액보다는 지출 증가율이 낮다"고 설명했다. 내년 정부 지출이 줄어든 것은 그만큼 경기 전망과 세수 기반이 불안하다는 의미다. 기재부에 따르면 기업 실적 부진과 소비 둔화로 국세 수입이 크게 줄어, 내년 재정수입은 올해 대비 13조6000억원 감소할 전망이다.
문제는 내년 정부 예산안이 축소됐음에도 재정건전성은 더 나빠진다는 점이다. 한은은 당초 정부가 건전재정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내년까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이 2%대 중반 수준을 보일 것으로 내다봤으나, 전날 뚜껑을 열어보니 3.9%로 예상과 큰 차이를 보였다. 이는 올해(2.6%)보다 높을 뿐 아니라, 정부가 도입을 추진 중인 재정준칙 기준(3% 이내)도 벗어난 수준이다.
관리재정수지는 정부의 재정건전성을 판단하는 지표로, GDP 대비 적자 비율이 높을수록 재정 상황이 나쁘다는 뜻이다. 재정건전성은 성장률과 직접 연동되진 않지만, 직·간접적으로 경제 전반에 영향을 준다. 한은 관계자는 "최근 미국이 재정 문제로 신용등급이 강등되기도 했다"며 "(재정건전성은) 정부 재정 여력을 평가하는 데에도 중요한 지표이기 때문에 (전망할 때) 보고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이같은 정부 재정 여력 약화는 향후 국내 경기 회복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최근 중국 사례만 봐도 수십년간 누적된 막대한 지방정부·기업부채가 경기 둔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은 부동산·내수 경기가 침체하면서 지방 세수가 크게 줄었고, 이는 정부의 적극적인 부양책을 제약해 다시 침체를 부추기고 있다. 경기 부진과 기업 실적 둔화로 세수가 주춤하고 있는 한국과 큰 틀에서 맥락이 비슷하다.
통상적으로 정부는 경기가 안 좋을 땐 정부 지출을 늘리고 공공사업이나 인프라 투자를 강화하면서 성장률 하락을 막는데, 앞으론 이런 대응을 기대하기 힘들다. 여력도 없지만 정부 기조와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일각에서 '정부가 성장을 리드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요구하는 것을 알고 있다"며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재정의 정상화, 건전재정 기조"라고 말했다.
다만 우리나라의 내년 정부 지출 감소와 재정건전성 악화는 모두 경기 둔화에 따른 것인 만큼, 내년 수출 회복 정도에 따라 분위기가 바뀔 가능성도 있다. 다른 한은 관계자는 "정부가 올해 세수가 부족한 것을 감안해서 내년 지출 규모를 줄인 것으로 보인다"며 "그런데 내년에 가서 반도체 경기가 좋아지고 세수가 예상보다 더 걷힐 수도 있다. 예산안만 보고 내년 성장률 둔화를 예단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문제원 기자 nest2639@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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