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로 확산되는 '묻지마 범죄'…日 예방책에 주목하는 이유
범죄 저지를 기회 없애는 방식의 대안 집중
최근 우리나라에서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이상 동기 범죄, 일명 '묻지마 범죄'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주로 인종차별이나 일부 원리주의 교단의 테러에 집중됐던 미국 등 서방 국가들에서도 잇따라 이상 동기 범죄가 보고되면서 지구촌이 몸살을 앓고 있다.
전문가들은 과거 이러한 이상 동기 범죄 확산의 원인을 사회 구조적 문제로 파악하고 이를 해결하는 데 집중했지만, 이제는 동기를 확실히 알 수 없는 범죄가 급증하는 만큼 범죄 기회를 아예 박탈하는 방식의 예방책에 집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각지에서 벌어진 묻지마 범죄, 범행동기 불명확NHK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일본 오사카의 JR간사이공항선 열차선에서 무차별 흉기 난동 사건이 일어나 3명이 부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사건의 피의자로 체포된 시마야 카즈야(37)는 칼을 3자루 소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뿐만 아니라 지난 6월 미국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 CBS뉴스에 따르면 지난 6월 2일 미국 사우스베이에서 역시 무차별 흉기 난동 사건이 벌어졌다. 피의자가 차량을 탈취해 무작위로 7명의 사람을 치고 다닌 후, 차에서 내려 4명을 흉기로 찌르면서 4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
지난 6월 8일에는 프랑스 남부 도시인 안시의 한 공원에서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해 6명이 크게 다쳤다. 공원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어린이 4명과 성인 2명이 피의자가 휘두른 흉기로 큰 부상을 입었다.
이처럼 전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의 가장 큰 특징은 범행동기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인종차별, 일부 이슬람 원리주의 테러 단체들을 중심으로 발생해 배후가 명확했던 미국 및 서방에서도 이상 동기 범죄가 급증하면서 각국은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이러한 이상 동기 범죄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빨리 시작된 일본의 사례 및 연구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이러한 무차별 살상 사건을 '토오리마지켄(通り魔事件)'이라고 부른다. '토오리마'는 인간이 사는 집 등을 지나가다 만난 사람들에게 재해를 가져오는 일본의 요괴를 부르던 말로, 지나가던 불특정 다수에게 강력범죄를 저지르는 사건이 요괴의 특성과 닮았다는 의미로 토오리마지켄으로 부르게 됐다.
특히 일본은 1998년부터 경시청에서 매년 토오리마지켄의 발생 건수 통계를 모아 데이터를 많이 확보한 상태다. 이를 토대로 각종 연구가 수행돼 범행과 가해자에 대한 특성을 어느 정도 분류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일본 정부와 학계에서는 토오리마지켄이 발생하는 시기와 피의자들의 특성을 분류하고, 이들의 범행동기에 집중하기보다는 범행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는 전략에 집중하고 있다.
범죄 자주 발생하는 시기, 5~7월…피의자 특성도 크게 3가지 분류일본의 관련 학계에서는 토오리마지켄이 5월 하순부터 7월 중순까지 주로 여름철에 자주 발생한 것으로 집계하고 있다. 앞서 등장했던 아키하바라 무차별 살상 사건은 6월, 애니메이션 회사에 불을 질러 36명이 사망한 '쿄애니 방화사건'은 7월에 발생했다. 고속철도인 신칸센에서의 차내 흉기 난동과 방화 사건도 각각 6월에 발생했다. 여름철 불쾌 지수가 높아진 상황 등은 고려해볼 수 있지만, 이유를 명확히 특정할 수는 없다고 전문가들은 전하고 있다.
다만 토오리마지켄이 과거의 사건을 모방하는 방식으로 많이 일어나는 측면이 있어 특정 시기에 사건이 몰리는 경향은 있다고 보고 있다. 일본 법무총합연구소는 최근 보고서에서 "사회에 충격을 주는 토오리마지켄은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다뤄지고, 자세한 범행 수법이 보도된다"며 "강한 분노를 가진 사람은 무차별 살상을 이룬 사람에게 숭배의 마음을 갖기가 쉽다"고 지적했다.
피의자도 유형별로 구분해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2014년 호세이대학교에서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가해자의 성별, 연령, 직업 유무, 전과 등을 분석했을 때 토오리마지켄의 가해자는 크게 ▲정신장애형 ▲강도형 ▲복수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정신장애형은 20대나 50대, 무직이고 미혼인 사람이 많이 저지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신질환 진단을 받은 적이 있으며, 범행은 계획적으로 저질렀을 가능성이 작다.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일이 많으며, 분노나 원망으로 범행을 일으킨다.
복수형의 범인은 30대나 40대, 기혼이거나 결혼을 했던 사람이 많으며, 공범이 있는 경우도 있다. 준비한 흉기는 살상력이 높으며, 4인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호세이대학 연구진은 분석했다. 정신질환 없이 오로지 자신의 복수를 위해 사건을 일으킨다.
강도형은 10대와 60대가 범인인 경우가 많으며, 빚이나 전과가 있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와는 일면식이 없으며, 주로 밤에 금전 목적으로 사건을 일으킨다. 다만 다른 사건과 다르게 범행 이후 도주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전에는 이러한 범행을 '외로운 늑대'형 범죄로도 불렀으나, 일본에서는 이는 서양에서 한정해 불러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서양의 경우에는 동기가 불분명한 범죄보다 인종 차별이나 극단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범행을 저지르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동기 대신 기회 박탈로 예방해야이러한 이상 동기 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범행동기에 집중하는 기존의 '범죄 원인론'보다는 범죄행위를 할 수 없도록 사전에 막는 '범죄 기회론'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늘고 있다.
범죄 기회론은 '저 사람이 왜 이런 범행을 저질렀을까'라는 관점에서 범행 동기를 찾는 것이 아니라, '왜 이곳에서 범죄를 저질렀을까'에 맞춰 범행을 저지를 기회 자체를 없애버리는 방법이다. 동기가 있더라도 범행 비용이나 위험성이 높고, 범행을 저질렀을 때 돌아오는 것이 본인이 생각한 효용보다 낮으면 범죄가 실행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다.
코미야 노부오 릿쇼대학 교수는 "사람의 성격이나 처지는 제각각이기 때문에 범죄 동기는 다 다를 수밖에 없다. 동기를 없앨 치료나 지원이 모두에게 딱 들어맞을 가능성은 낮다"며 "반면 범죄를 저지를 기회는 환경을 개선할수록 줄어든다"고 강조했다.
범죄 기회론에서는 범행을 일으킬만한 장소를 들어가기 어렵게 만들면 해결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파출소 습격을 막으려면 파출소 창구에 투명 칸막이를 설치하고, 차량 테러를 막으려면 진입로에 차막이를 두는 식이다.
이러한 물리적인 바리케이드 이외에도 보안 카메라로 미연에 범죄 방지를 하는 방법도 있다. 일본에서는 카메라로 행인의 얼굴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긴장도, 공격성, 높은 스트레스 수치를 잡아내는 인공지능(AI) 프로그램 '디펜더 엑스'가 도입됐다. 거동 수상자를 미연에 잡아내는데, 법률 사무소나 일반 가게 등 다양한 곳에서 이미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이전에 발생한 토오리마지켄을 바탕으로 긴급 시스템이 도입된 곳도 있다. 일본에서도 지하철 등 전차에서 흉기 난동이 발생한 사례가 있어 열차 좌석은 떼어내면 호신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바꾸었고, 비상호출을 하면 차장이 호신용품과 방패를 들고 범죄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코미야 교수는 불우한 환경 등의 서사 대신 현실적인 디자인이나 기술의 도입에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칼럼을 통해 "일본에서는 관련 범죄가 일어나면 '마음의 어둠'이라는 말을 꺼내 논지를 흐리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나 알 것 같은 말을 늘어놓는 것으로는 해결이 될 수 없다. 현실적이고 실효적인 범죄 기회를 박탈하는 기술 등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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