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마가 먹다 남긴 썩은 고기, 자연 '핫스팟' 만든다…생태계 유지

강찬수 2023. 8. 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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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대륙의 대형 포식자 퓨마. 중앙포토

아메리카 대륙의 포식자인 퓨마는 단독 생활을 한다. 먹이를 잡아도 혼자서 다 먹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썩은 고기를 남기면, 까마귀나 곰 같은 청소부 동물이 와서 나머지를 먹어 치운다. 퓨마가 내놓는 썩은 고기가 ㎢당 매년 44.1㎏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툰드라의 붉은여우는 동굴에서 산다. 매년 새로 굴을 파기보다는 계속 사용한다.
여우 굴 주변에는 수풀이 무성하다. 바로 '툰드라의 정원'이다.

여우가 버린 찌꺼기와 배설물 덕분에 식물이 잘 자란다. 여우가 반복적으로 영역을 표시하는 곳, 딱 그곳에서만 식물이 섬처럼 눈에 띄게 자라기도 한다.

늑대는 하천을 막아 댐을 쌓는 비버를 공격한다. 비버가 연못을 만드냐, 만들지 못하느냐에 따라 하천의 경관도 달라진다.

이처럼 포식자는 생태계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초식동물이 과도하게 번성해 숲이 망가졌는데, 육식동물인 포식자가 들어와 초식동물을 잡아먹으면서 숲이 되살아났다…."는 식의 전통적인 포식자의 역할, 즉 먹이사슬을 통해 먹이의 숫자를 조절하는 것 외에도 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생태계 자원 불균등하게 배분


툰드라 지역 붉은여우의 굴 주변에 두드러지게 무성한 초목이 자라고 있다. 여우가 버린 먹이 사체와 배설물 덕분에 자라난 것이다. [자료: Oikos, 2023]
캐나다 매니토바 대학과 미국의 미네소타 대학 연구팀은 최근 생태학 저널 '오이코스(Oikos)'에 발표한 논문에서 "생태계 내에서 포식자는 자원을 배분하고, 자원을 옮기고, 생태계의 모습을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했다.

포식자가 생태계 내에서 이곳저곳 활발하게 움직이면서 시·공간적으로 연결해주는 역할, 이른바 '패치 간접 효과(patchy indirect effects, PIE)'를 발휘한다는 것이다.

포식자가 생태계의 자원을 시·공간적으로 불균등하게 배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의미다.
'패치'는 생태계 전체에 골고루 분포하는 것이 아니라 누덕누덕 혹은 띄엄띄엄 일부분에만 분포하는 것을 말한다.

연구팀은 크게 이 패치 간접 효과를 세 가지로 나눠 설명했다.


생태계 내 '인기 장소' 만들기


퓨마가 죽인 먹이 사체에서 발생하는 패치 간접 효과. 퓨마가 사냥하면(A), 까마귀, 곰, 코요테와 같은 청소 동물은 시체가 있는 곳으로 몰린다(B). 퓨마는 종종 먹이를 숨겨두기 때문에 독특한 딱정벌레 군집이 사체에 발달한다(C). 사체가 분해되면서 탄소(C), 질소(N), 인(P)과 같은 영양분이 토양으로 스며든다(D). 사체가 완전히 분해되면서 토양 영양분 함량이 증가하고 식물 성장이 향상된다(E). [자료; Oikos, 2023]
우선 포식자가 큰 먹이를 죽이면 까마귀·독수리 등 사체를 탐하는 동물들이 몰려드는 인기 장소, 즉 생태학적 '핫스팟(hotspot)'이 생기게 된다.

거기서 동물들이 남은 고기를 두고 경쟁을 벌이기도 하고, 벌레가 꼬이면 이를 찾아 다른 생물이 몰려들기도 하고, 찾아왔다가 기생충에 감염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상호작용이 벌어진다.

부패한 사체는 토양으로 스며들고, 식물 성장을 촉진하게 된다. 수십 년 후 몇 그루의 큰 나무가 자라는 토대가 되기도 한다.

두 번째는 남은 먹잇감을 포식자가 자신의 동굴이나 둥지로 옮기는 경우 거기에도 생태학적 핫스팟이 만들어진다.
포식자의 배설물과 부패한 사체 찌꺼기가 계속 쌓이면 해당 지점의 생태학적 변화가 나타난다.

연안의 물개 서식지나 바닷새 둥지 주변에 나무나 잘 자라고, 인근 바닷속에 해초가 잘 자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를 곰이 잡아먹고 일부를 숲에 버리면 나무가 잘 자라는 것도 중요한 사례다.


생태계 경관 급변 방지하기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비버 [Bob Greenburg]
늑대는 비버를 포식해 생태 경관의 과도한 변화를 방지한다. 어린 비버는 독립해서 새로운 연못을 만들거나 오래된 연못에 자리를 잡는다(A). 포식자가 비버를 죽이면 댐과 연못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훼손되기 시작한다(B). 결국 댐이 붕괴되어 강변 부지가 과거 상태로 되돌아 간다(C). [자료: Oikos]
세 번째는 먹이 동물이 특정 서식지를 급격하게 변화시키는 것을 포식자가 개입해 방지하는 것이다.
앞에서 본 것처럼 비버가 댐을 쌓아 하천 흐름을 막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비버와 같은 '생태계 엔지니어'를 포식자가 공격해 죽이고 나면, 서식지 경관은 천천히 비버가 없었을 때 원래 모습으로 돌아간다.

연구팀은 "생태계의 생산성이나 회복률, 회전율이 낮은 고위도 섬지방이나 툰드라 같은 곳에서는 포식자의 패치 간접 효과가 훨씬 중요할 수 있다"면서 "육상 생태계뿐만 아니라 해양 생태계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래의 사체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을 때 나타나는 현상도 크게 보면 패치 간접 효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전통적인 포식자의 역할과 이런 패치 간접 효과가 동시에 나타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대체 불가능한 포식자의 기능


눈보라가 치던 지난 1월 18일 미국 네브래스카주 링컨의 앤텔로프 공원 인근의 인가ㅇ로 붉은여우가 숨어 들었다. AP=연합뉴스
연구팀은 "일부에서 대형 포식자가 사라져도 사람이 대신하면 되지 않느냐고 주장하지만, 시간과 장소 등 육식 동물의 실제 사냥 특성을 사람이 쉽게 따라 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개별 포식자가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이를 사람이 복제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생태계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포식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가 궁극적으로 서식지 파괴, 인간의 침입, 사냥과 밀렵, 기후 변화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포식자 개체군을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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