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 7조원' 마약세의 유혹…경기침체 독일, 대마 합법화 만지작

박형수 2023. 8. 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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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이 대마초(마리화나) 합법화란 '금단의 문' 앞에 섰다. 앞서 지난 16일(현지시간) 독일 연립정부는 대마 합법화를 위한 마취제 관련법 개정안을 의결했고, 다음달 4일 의회 통과만 남겨둔 상태다.

독일 정부는 “이미 대중화된 대마초를 규제하는 건 불법 시장을 키우는 풍선효과만을 초래할 뿐”이라며 “암시장의 저질 대마초를 몰아내 국민 건강을 증진하려는 취지”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코노미스트와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은 “경기 침체의 늪에 빠진 독일이 대마초 생산·판매 합법화를 통해 얻을 막대한 세수를 노리고 있다”며 “마약세 확보를 위해 마약 중독이란 사회적 비용을 미래 세대에 전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지난 16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내각 회의에 참석했다. AP=연합뉴스

다음달 4일, 독일 의회 '대마초 법안' 처리


현재 의회 승인을 앞둔 개정안은 18세 이상 성인의 대마초 접근권은 허용하되 구입 경로를 통제하고 사용량에는 제한을 두는 ‘부분 합법화’가 골자다. ▶1인당 하루 최대 25g 대마 소지 ▶개인 용도로 가정에서 대마초 3그루까지 재배 가능 ▶비영리단체인 대마초 사교클럽(CSC)을 통해 회원들에게만 한 달 최대 50g까지 대마 제공 가능 등의 내용이 담겼다. 현재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국가 차원에서 대마초를 합법화한 유일한 국가인 몰타(성인 하루 최대 7g 소지, 가정 내 재배 최대 4그루, 공공장소 대마초 흡연 전면 금지)보다 파격적인 안으로, 유로뉴스는 “개정안대로 통과될 경우 독일은 유럽 전역에서 대마초에 가장 관대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독일의 대마초 합법화는 지난 2021년 11월 타결된 '신호등' 연정 협약(사회민주당·빨강, 자유민주당·노랑, 녹색당·초록)에 처음 담겼다. 지난해 연정은 이 협약에 따라 1인당 대마초 30g 소지 가능, 정부 승인을 받은 전문점·약국에서 대마초 관련 상품 판매 허용 등을 추진하다 EU와 야당의 반대에 부딪혀 한발 물러섰다. 이번 개정안은 당시 초안보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다.

독일 정부는 그간 대마초에 대한 규제와 단속이 수요 억제에 전혀 실효성이 없었다고 봤다. 독일 보건부에 따르면 지난해 성인 450만 명이 최소 1회 이상 대마초를 흡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18~24세 젊은이 중 4분의 1이 대마초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카를 라우터바흐 독일 보건장관은 “대마초의 생산·유통·거래를 합법화해 양질의 제품을 통제된 양만 사용하게 제한함으로써 국민 건강을 증진하고 중독자도 줄여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차준홍 기자

집권당에서도 "심각한 부작용" 우려


하지만 올라프 숄츠 내각을 제외하면 독일 내에서도 우려와 반발의 목소리가 큰 편이다. 야당인 기독민주당의 아르민 슈스터 연방의원은 대마초 합법화가 “완전한 통제력 상실”을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같은 당 소속 클라우스 홀레첵 바이에른주 보건장관도 “이 계획은 무책임하다”며 “대마초 합법화는 암시장 억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특히 의료계와 법조계의 반대가 심하다. 독일 소아과 의사 전문 협회는 다른 청소년 의료 협회와의 공동 성명을 통해 대마초 합법화가 청년들의 대마초 소비 조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 신문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 차이퉁은 대마 합법화로 인해 마약 중독자들이 늘어나 경찰이나 사법부의 업무 폭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전했다. 집권당인 사민당 소속의 안디 그로트 함부르크주 내무장관도 “다른 국가들의 사례를 보면 대마 합법화가 대중화로 이어져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EU도 독일의 행보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미국의 CNBC는 “독일은 지중해의 작은 섬나라인 몰타와 존재감이 다르다”면서 “유럽의 경제 대국인 독일의 행보는 세계 대마초 합법화를 촉진하는 선구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전했다. NDTV는 네덜란드·룩셈부르크·체코 등 대마초 합법화 추진에 관심을 보이는 유럽 여러 나라에 연쇄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도미노 효과를 우려했다.

카를 라우터바흐 독일 보건장관이 16일(현지시간) 대마초 합법화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세수 확보 위해 미래 세대에 마약 중독 전가"


로이터통신 등은 독일 정부가 국내외의 우려에도 대마초 합법화를 강력하게 추진하는 이유는 ‘경제적 이득’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뒤셀도르프의 하인리히 하이네 대학의 조사에 따르면, 대마초 합법화로 독일 정부는 연간 49억 유로(약 7조38억 원) 세수 확보와 2만7000개의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고 있다. 대마 박물관인 한프 뮤지엄의 스테펜 가이어는 “일자리 창출은 3만5000개가 넘을 수도 있다”며 “이제껏 대마초 관련 사업체는 막대한 이익을 거뒀지만, 세금도 내지 않고 사회 보장 제도에도 기여한 바 없다”고 합법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독일 등 대마초 합법화를 추진하는 국가가 늘어난 배경엔, 빠르게 성장 중인 대마초 기업의 로비가 있다”고 보도했다. FT는 자사가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 중인 500대 기업’에 올해 11개 대마초 회사 포함됐는데, 지난해엔 단 한 회사도 없었다면서 “대마초 시장이 합법화되면서 이를 일부 대기업이 장악하고, 이들이 로비를 통해 계속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고 전했다. 세계 최대 대마초 회사 중 하나인 큐라리프는 “독일에 대마초가 합법화되면 내년 말부터 엄청난 대마초 시장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FT에 전했다.

마약세를 확보하고 불법 거래는 근절하겠다는 독일 정부의 의도와 달리, 대마초 합법화가 결국 마약 중독을 가속하고 암시장 불법 거래를 폭증시키는 결과만 초래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2018년 대마초를 합법화한 캐나다의 경우 비의료적 목적으로 대마를 투약한 사람 중 절반 가까이가 미등록·불법업자를 통해 대마를 구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루과이(2013년 합법화) 역시 지난해 2월 대마 투약자(15만8000명) 중 합법적인 거래를 한 사람은 절반이 채 안 됐다.

지난해 4월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대마초 잎사귀 모양의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세계 대마초의 날'을 기념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NYT는 대마초 합법화를 추진하는 국가들은 ‘낮은 중독성’을 강조하지만 대마초로 마약에 ‘입문’하면, 높은 확률로 펜타닐 등 훨씬 강한 마약을 찾게 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뉴욕 월가의 회사원 등이 대마초를 택배로 받아 사용한 뒤 펜타닐 중독 판정을 받는 사례 등을 전하면서 “거래상들이 중독을 야기하기 위해 대마초인 척 펜타닐을 끼워파는 것”이라고 했다. 독일 제약 협회 회장인 막스 슈미트는 “독일의 (대마초 합법화) 이야기 시작은 장밋빛으로 보이지만, 끝은 분명히 생각과 다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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