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석 목사의 빛을 따라] 히드라의 비열한 소스라침
경희대 김진해 교수는 ‘말끝이 당신이다’라는 책의 표제 칼럼을 통해 흥미로운 관점을 보여준다. 스마트폰이 보급된 이후에 사람들은 직접 통화보다는 문자를 주고받거나 채팅 창을 통해 이야기 나누는 걸 더 선호한다. 김 교수는 문자를 보낼 때 말끝을 어떻게 맺고 있는지를 보면 친한지 안 친한지, 기쁜지 슬픈지 다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친할수록 어미를 일그러뜨려 쓰거나 콧소리를 집어넣고 사투리를 얹어놓는다. ‘아웅 졸령’ ‘언제 가남’ ‘점심 모 먹을껴’ ‘행님아, 시방 한잔하고 있습니더’ ‘워메, 벌써 시작혀부럿냐’” 친하지 않은 사이엔 주로 ‘~습니다’라는 종결어미를 사용한다. 그는 학생들과 친구처럼 지내도 결석을 통보할 때는 ‘이러저러한 사유로 결석하게 되었습니다’ 하는 식으로 통보하더라며 서운해한다. 그가 받고 싶은 메시지는 이런 것이다. ‘패랭이꽃도 예쁘게 피고 하늘도 맑아 오늘 결석하려구요.’
언어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귀한 선물이다. 우리는 말을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 언어라는 기호를 공유할 때 비로소 소통이 가능하고 공감도 일어난다. 어떤 경험을 하긴 했는데 적절히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할 때, 누군가가 가장 거기에 딱 어울리는 표현을 하면 비로소 자기 경험의 실체를 알게 된다. 외국어는 우리에게 익숙한 기호가 아니기 때문에 늘 어렵다. 그런데 언어는 의사 소통의 도구에 국한되지 않는다. 언어는 사건도 일으킨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은 그런 말의 힘을 암시한다. 우리는 말로 다른 사람을 격려할 수도 있고 불쾌하게 만들 수도 있다.
말이 오용될 때 사람들 사이에 분열이 시작된다. 아담은 어찌하여 선악과를 따 먹었느냐는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 그 책임을 하와에게 돌렸다.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사용한 그 말이야말로 사람 사이를 버름하게 만들고, 사탄은 그 버름한 사이에 파고들어 관계를 파탄으로 이끈다. 잠언은 ‘남의 말을 잘하는 사람’ ‘다투기를 좋아하는 사람’ ‘헐뜯기를 잘하는 사람’ ‘악한 마음을 품고서 말만 매끄럽게 하는 사람’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아차려야 한다고 경고한다.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을 특정한 이미지 속에 가두려 한다. 한 존재를 언어로 규정하는 순간 그가 가진 다양한 가능성은 무시되기 일쑤다. 언어가 차꼬이고 감옥일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시시때때로 경험한다. 프랑스의 시인 스테판 말라르메는 ‘에드가 포의 무덤’이라는 시에서 사람들이 하는 뒷담화를 가리켜 ‘히드라의 비열한 소스라침’이라고 말한다. 히드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인데 머리가 여럿 달린 뱀이다. 히드라의 끔찍함은 머리 하나를 자르면 그 자리에서 다른 머리 여러 개가 나온다는 데 있다.
헐뜯는 말은 또 다른 말을 낳고, 그것이 남의 말을 잘하는 사람, 헐뜯기를 잘하는 사람은 이웃의 존엄을 파괴하는 사람이다. 그들은 증폭되면서 편견을 만들고, 편견은 적대감을 만들고, 결국에는 사람들의 관계를 파국으로 이끈다. 우리 사회는 언어로 인해 분열돼 있다. 생각과 삶의 지향, 정치적 입장이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소통의 길이 막혀 버린 것이다.
땔감이 다 떨어지면 불이 꺼지듯이, 남의 말을 잘하는 사람이 없어지면 다툼도 그친다. 다투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숯불 위에 숯불을 더하고, 타는 불에 나무를 더하는 것처럼 불난 데 부채질을 한다. 예레미야도 이런 현실을 통탄한다. “내 백성의 혀는 독이 묻은 화살이다. 입에서 나오는 말은 거짓말뿐이다. 입으로는 서로 평화를 이야기하지만 마음속에서는 서로 해칠 생각을 품고 있다.”(렘 9:8, 새번역)
언어가 소통되는 광장이 오염됐다. 말의 품격이 회복되지 않는 한 세상은 지옥문일 뿐이다. 기독교인의 언어부터 달라져야 한다. 혐오와 냉소의 말, 분열과 차별을 강화하는 언어를 내려놓을 때 말씀으로 창조된 세상의 아름다움이 비로소 개시된다. 말이 곧 당신이다. 알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차라리 침묵하는 게 낫다. 오늘, 우리가 하는 말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만든다.
김기석 청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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