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의 생활의 발견] 능으로 가는 길
어떤 사람 ‘덕분’에 홀로 경주에 간 적이 있고 어떤 사람 ‘때문’에 홀로 경주에 간 적이 있다. 그렇게 홀로 경주를 다닌 것이 한 20여 년 되는데, 이는 사랑하는 사람이 경주에 살아서도 아니고 미워하는 사람이 경주에 살아서도 아니고 내가 모르는 사람만이 경주에 살아서인 듯싶다. 연연할 인연 없음의 하얀 맛은 얼마나 건강한가. 터미널 근처 기사식당에서 막 데쳐 나온 두부 한 접시와 막걸리 한 잔을 앞에 두고 쉬이 입에 대지 못할 적에 나의 설렘은 비단 허기에서 비롯된 들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능. 임금과 왕후의 무덤이니 나와 직접 무슨 상관이겠냐만 그럼에도 사람이 어렵다 싶을 때 사람으로 서럽다 싶을 때 다짜고짜 경주 숙소부터 예약해온 건 거기 능이 있어서였다. 기쁨으로 충만할 때 능은 왜 유독 짙은 풀색으로 머리털을 곤두세울까. 슬픔으로 양일할 때 능은 왜 유독 처진 눈꼬리로 저물녘의 주저앉는 해를 닮아버릴까. 능을 보러 가기 위함이었다고는 하나 더 정확히는 능을 보는 나를 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나는 나인데 왜 나는 나의 나를 보러 굳이 그 거울을 찾겠다고 지금껏 능타령을 해온 걸까.
능에 가 내가 하는 일이라곤 지칠 때까지 그 둘레를 빙빙 도는 일이라지만 이상하지, 뛰는 일은 어울리지 않으니 오래 걷고 난 뒤 주먹이라도 펴볼라치면 무언가 빠져나간 듯한 흔적이 손바닥 위 옅은 축축함으로 칠해져 있곤 했으니 말이다. 가만, 나는 하루에 몇 번이나 손을 씻을까. 가만, 당신들은 내게 왜 유독 핸드크림을 자주 건넬까.
내가 사는 파주에는 인조와 인열왕후의 무덤인 장릉이 있고, 정난정과 윤원형의 무덤도 있다. 어느 지역을 가든 길 안내를 하는 푯말 가운데 능이나 무덤 이름이 있으면 반드시 검색해서 메모해두는 습관이 어느 날부터 생겼다. 죽기 위해 태어나느라 애썼어. 생일카드와 함께 최승자 시인의 시집 『내 무덤 푸르고』를 선물했는데 후배 마음에 들지는 모르겠다.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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