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 붕괴·잼버리 파행…가짜 주인들 때문에 일어난 사고 [이두수가 소리내다]

이두수 2023. 8. 30.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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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발생하는 부실건설 사고는 책임있는 지휘자들이 진정한 주인의식을 갖고 현장문제를 챙기지 않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김주원 기자


8월 첫 주말, 나는 인천의 아파트공사현장 갱폼 위에서 일하고 있었다. 잠시 쉬는 시간에 페이스북을 열어보니 전북 부안 새만금 잼버리 야영장에서 뭔가 심각한 사고가 일어난 듯 엄청난 양의 포스팅이 올라와 있었다. 인터넷에는 간척지에 배수 시설이나 화장실, 샤워실 등 대규모 야영지로서의 기반시설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것과 폭염 속에서 더위를 피할 그늘막이나 얼음물 등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기사나 포스팅으로 도배돼 있었다. ‘잼버리 야영장이 오징어게임장인가’ 하는 제목의 기사도 있었다.

공사현장 갱폼 위는 직사광선을 바로 받는 곳이라 엄청 더웠다. 방진막으로 둘러싸여 있어 갱폼 안에는 마치 한증막같은 상황이다. 내가 일하는 주변 세대 안에서는 베트남에서 온 청년들이 해체작업을 하느라 분주했다. 알루미늄 거푸집을 떼어내는 일이라 힘들기도 했지만 매우 위험한 일이라 국내 근로자들이 가장 기피하는 직종이다. 이들은 자신의 키보다 훨씬 큰 알루미늄폼을위층으로 들어 올리기도 한다. 이게 국내 건설 현장의 현실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본인 키보다 두 세배는 크고 무거운 폼을 들고, 나르고, 해체하는 것을 보면 경이롭다. 현장에서 가장 힘들고 위험하고 지저분한 곳에서 가장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이다. 제 몸보다 몇 배는 더 큰 폼을 들어올리는 힘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고향의 가족과 조국과 본인의 미래를 생각하면 저런 힘이 솟아나는 걸까... 그림 이두수


절차탁마라는 말이 있다. 옥돌을 자르고 줄로 쓸고 끌로 쪼고 갈아 빛나는 옥을 만드는 과정을 이른다. 몸을 써 열심히 일하는 성실함이 내재된 용어다. 하지만 현실에선 더우면 에어컨 바람이 나오고 추우면 따뜻한 바람이 부는 사무실에서 뭔가 고전을 읽으며 심오한 이치를 깨달아가는 분위기에 어울리는 지식인이나 관리들의 용어가 돼버렸다.

GS건설의 검단지구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를 보자. 발주처는 LH(한국토지주택공사)이지만 이미 설계, 감리는 일명 엘피아라 불리는 LH출신들의 자회사에서 다 맡고 있었다. 아마 지금도 이들은 왜 사고가 일어났는지에 대해 자신은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며 타인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현장 노동자의 미숙함을 지적하며 외국인 노동자에게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 책임을 전가할 것이다.

2021년 6월 발생한 광주광역시 학동4구역 건물 붕괴 사고는 재개발을 위해 철거 중이던 학산빌딩이 붕괴되면서 근처를 지나가고 있던 버스가 매몰되었고 9명이 사망했다. 6개월 뒤 광주광역시 화정동에서 공사 중이던 화정 아이파크 붕괴 사고가 일어났다. 이 두 건의 사고 시공사는 같은 HDC 현대산업개발이었다.

이 회사는 한국건설업계 선두권위치에 있으며 해외에서도 호평을 받는 회사다. 그런 회사가 지방의 작은 건설 현장에선 이렇게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사고의 원인은 대개가 비슷하다. 하도급을 받은 시공사끼리 서로 짜고 재하도급을 통해 리베이트를 갈취하고, 재하도급을 받은 회사는 이윤을 남기기 위해 건설 기간을 무리하게 단축하거나 설계변경을 했으며, 감리사는 제대로 현장을 확인하거나 감독을 하지 않은 것이다.

인천 검단신도시 입주예정자들이 5월 13일 인천 서구 원당동 LH검단 사업단 앞에서 피켓과 현수막을 들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해당 아파트는 지난달 29일 지하주차장 지붕이 무너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뉴스1


우리 사회는 현장에 가보지도 않거나 잘 모르는 사람들이 현장 전문가로 행세하며 벌어지는 미숙함과 잡음으로 집단적 인지 부조화에 시달리고 있는 모습이다. 옛날 지방 수령 밑에서 행정 업무를 하며 수령을 속이고 백성들에게는 권력자로 행세하며 환곡이나 공물을 중간에 가로채던 지방 중간 관리들이 있었다. 향원이라고 불렸다. 이들이 힘을 합쳐 신임 수령에게 위협을 가하기도 하고 심하게는 정책을 좌지우지했다고도 한다.

오늘날에도 이런 존재가 있다. 혈연, 지연, 학연과 여기에 같은 직장 출신자들의 직연의 관계망을 가지고 위세를 부리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배운 지식이나 경험이 마치 사회적으로 대단한 자산이라 으스대며 작은 권력자의 행세를 한다. 이것을 담합이라 하기도 하고 카르텔이라고도 한다. 이들은 철 지난 자신들의 지식과 경험에 의해 굳어진 가치 체계가 가장 이상적인 가치라 주장하며 전문가 행세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겐 새로운 사실이나 과학이 중요하지 않다.

최근 GS건설의 검단지하주차장붕괴사고나 부안잼버리 파행 운영 사태 등은 우리 사회의 허위의식으로 가득한 가짜 주인, 이런 향원같은 존재들로 인해 벌어진 사고라고 본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에 참석한 대원들이 침수로 물러진 땅 위에 텐트를 짓기 위해 팔레트를 설치하고 있다. 연합뉴스


잼버리는 스카우트연맹이라는 사설 단체의 행사이지만 대규모 인원이 모이다 보니 여기에 공공의 재원과 인적 지원이 투입된 행사다. 여기에는 여성가족부라는 중앙부처를 비롯해 전라북도와 주변 지자체가 합세해 지방활성화와외자유치, 나아가 국가 이미지 제고라는 큰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나라와 지방발전을 위해 그리고 환경과 에너지 문제까지 해결한다는 숭고한 가치 체계의 명분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많은 재원을 끌어들였고 더 나은 행사를 위해 외국의 사례도 연구하고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크루즈 사업도 구상할 겸해서 외국출장도 빈번하게 다녔을 것이다.

화면에서 그려지는 예쁜 계획서만 쳐다보면 마치 자신이 대단한 위치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먼지 구덩이에서 땀 흘리며 일하는 것은 아랫것들로 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에선 문제가 있다는 보고가 올라갔겠지만 이것을 묵살하고 잘 될 것이라는 희망 섞인 보고를 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주인의식이 깨어나야 한다. 주인은 늘 손님을 편하게 대하려 살핀다. 그리고 현장으로 가라. 현장을 중시해야 한다. 움직여라. 현장에 답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이두수 작가 겸 건설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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