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계 시조새’ 강풀의 첫 각본…“무빙, 망할까봐 잠도 안왔죠”

권근영 2023. 8. 30.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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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풀은 ‘무빙’을 “히어로물 같은 멜로”라고 말했다. [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의 원작자 강풀(49)은 “(드라마가) 원작보다 낫다는 평가를 볼 때마다 기분이 이상하긴 하다”며 웃었다. 그에게 ‘무빙’은 처음으로 각본에 참여한 작품이다. 28일 서울 삼청동에서 만난 그는 ‘무빙’에 대해 “히어로물의 외피를 쓴 멜로”라며 “하이틴 멜로부터 첩보 멜로, 조폭 서사까지 골라볼 수 있는 재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총 20부작인 ‘무빙’은 지난 9일 디즈니+에서 순차 공개를 시작한 이후 역대 디즈니+ 국내 서비스작 중 공개 첫 주 최다 시청 시간을 기록했고, 지난 24일엔 디즈니+ TV쇼 부문 글로벌 순위 1위(플릭스패트롤 집계)에 올랐다. “넌 이상하지 않아. 조금 다르고 특별할 뿐이야”(희수), “나는 늘 가장 쉬운 길을 택했었다”(주원) 같은 대사도 화제다.

만화책으로 출간된 ‘무빙’ 표지 속 희수. [사진 위즈덤하우스]

Q : 각본 작업은 처음인데.
A : “시리즈 공개 이틀 전부터는 ‘이거 나만 재미있는 거면 어떻게 하지’ 하고 잠도 안 왔다. 만화 그릴 때는 혼자 책임지면 됐는데, 여럿이 만들고 큰 자본이 들어가니 부담이 다르더라. 매주 성적표 받는 기분이다. 만화 그릴 때는 댓글도 안 봤는데, 이제는 아침마다 ‘무빙’을 검색한다. 시리즈 초반에는 ‘20부 길다’더니 이제는 ‘너무 짧다’는 반응이 반갑다.”

Q : ‘한국형 히어로물’이 잘 될까 의구심도 있었을 텐데.
A : “그래서 인물 개개인의 서사가 중요했다. 뜬금없이 하늘을 날기보다는 그 사람을 온전히 보여줘야 그 초능력이 말이 될 것 같았다. 디즈니+에서는 12~16회 기획했는데 내가 20회를 제안했다. 웹툰 연재 당시 마감에 쫓기느라 더 살리지 못했던 캐릭터를 한 명 한 명 힘줘서 썼고 상상의 규모도 키웠다. 예를 들면 주원(류승룡)의 길거리 격투씬, 100대 1로 싸우는 걸 만화로 어떻게 그리나. ‘여기서는 하고 싶은 얘기 다 할 수 있구나’ 믿고 뻥을 쳤다.”

무한 재생능력을 타고난 ‘무빙’의 희수(고윤정). [사진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웹툰의 시조새’ ‘웹툰의 암모나이트’라 불리는 그는 2002년부터 홈페이지를 만들어 혼자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대학 졸업 후 만화를 그리고 싶다며 400곳 넘는 잡지사에 이력서를 냈지만 아무도 불러주지 않아서였다. ‘아파트’ ‘그대를 사랑합니다’ ‘이웃사람’ 등 이미 그의 많은 작품들이 영화·드라마·연극으로 만들어졌다.

Q : 어디 이야깃주머니라도 있나. 비결이 뭔가.
A : “중요한 건 작가의식보다는 직업의식이라는 거다. ‘나는 만화가다’라는 생각. 세상에 힘들지 않은 직업이 어디 있겠나. 하기 싫어도, 생각 안 나도, 소재 없어도, 직업이니까 계속하는 것. 그럼에도 독자들과 웃고 우는 데서 주파수가 맞을 때 보람 있다. 물론 원고료 들어올 때도.”
‘무빙’은 초능력을 가진 아이들의 성장담과 그 부모들의 아픈 사연을 풀어내며 ‘한국형 히어로물’을 표방한다. ‘초능력자들이 주인공이라지만, 지구를 구할 만한 힘도 없다. 그저 평범한 삶을 꿈꾸지만 배제되거나 이용당하고 만다. 튀면 고달픈 한국 사회에서 초능력자들은 장애인이나 소수자에 가깝다. 여기 안기부, 북한, KAL기 폭파사건, 범죄와의 전쟁, 김일성 사망까지 굴곡진 한국 현대사가 녹아 들어갔다. 강풀은 “가족과 주변을 지키는 게 내가 생각하는 히어로물의 모습”이라며 “각박해지는 세상에서 악이 승리하거나 염세적인 이야기는 내 취향 아니다. 착한 사람들이 이기는 이야기를 계속 쓰고 싶다”고 말했다.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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