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셀트리온’ 약속 3년 만에…서정진의 DREAM [스페셜리포트]
2020년 9월. 셀트리온그룹은 셀트리온·셀트리온헬스케어·셀트리온제약 3사 합병 계획을 공시했다. 당시 셀트리온그룹은 “경영 투명성 확보, 효율화 제고를 위해 합병을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합병 절차는 셀트리온의 분식회계 논란으로 무기한 중단됐다. 2022년 3월 증권선물위원회가 셀트리온의 분식회계 혐의 관련 “고의성이 없다”고 결론 내리며 합병 절차가 재개됐지만, 셀트리온 소액주주 일부의 반대를 이유로 합병 절차는 멈춰 섰다.
3년이 지난 2023년 8월, 셀트리온그룹 3사 합병이 다시 시동을 걸었다.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은 직접 합병설명회(IR) 자리에 등장, 구체적 계획을 설명했다.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가 1단계로 합병하고, 이후 셀트리온제약이 추가 합병하는 방식이다. 동시에 서 회장은 합병 이후 2030년까지 연매출 12조원을 벌어들이는 글로벌 제약사(빅파마)로 도약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특히 현재 바이오시밀러(바이오 의약품 복제약) 사업 구조를 탈피해 신약 매출 비중을 40%까지 확대하겠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를 두고 서 회장의 지나친 ‘과언(誇言)’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셀트리온그룹은 내년 중 2개의 임상 1상 개시를 계획 중이다. 이제야 발걸음을 뗀 수준이다. 임상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받아들 가능성도 남아 있다. 일각에선 이번 서 회장 발언이 “또 다른 ‘공언(空言)’ 사례가 될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그간 서 회장이 ‘지키지 못할 약속’을 여러 차례 꺼내놨다는 점을 꼬집는 것이다. 그야말로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상황이다.
주가 쌀 때 합병해야 매수 부담 적어
합병은 시작부터 ‘이슈’가 됐다. 셀트리온그룹이 단계적 합병 카드를 꺼내들면서다. 당초 3사가 한번에 합병할 것이라는 예상을 뒤집었다. 방식은 2단계로 나뉜다. 1단계로 바이오사업부를 합병한다. 바이오 의약품 개발과 생산을 하는 셀트리온과 글로벌 판매와 마케팅을 담당하는 셀트리온헬스케어가 합쳐지는 셈. 1단계 합병이 마무리되는 시점을 기준으로 6개월 내 2단계 케미컬사업부 합병을 진행한다. 통합 셀트리온 법인과 케미컬 의약품 개발과 생산을 담당하는 셀트리온제약이 합병하는 형태다.
투자자 관심은 ‘왜 단계적 합병을 선택했느냐’로 쏠린다. 예상과 달리 1단계 합병에서 제외된 셀트리온제약의 주가 하락과 해당 주주들 불만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셀트리온그룹은 결단을 내렸다. 리스크를 감수한 셈이다. 실제 합병 기대감에 8월 한때 주당 9만원대까지 치솟았던 셀트리온제약 주가는 8월 23일(종가 기준) 6만8600원까지 떨어졌다.
셀트리온그룹은 단계적 합병 배경으로 절차상 문제를 꼽았다. 서 회장은 “3사를 한번에 합병하면 절차상 애로 사항이 많을 것으로 예상됐고 주주 간 이해관계가 복잡해질 것으로 판단했다”며 “궁극적으로 케미컬까지 아우르는 종합 제약 회사로 보강하겠다”고 설명했다.
다만 서 회장이 ‘절반의 대답’을 내놨다는 분석도 나온다. 단계적 합병을 택한 또 다른 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들은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 주가에 주목한다.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두 계열사 주가가 바닥을 찍는 상황이었다. 합병 적기로 봤을 것”이라며 “셀트리온제약이 제외된 것은 3사를 한번에 합병하는 게 복잡하기도 하지만, 주가가 고평가됐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주가를 주목하는 이유는 ‘주식매수청구권’과 관련 있다. 합병 대상의 주가가 낮을수록 셀트리온그룹 입장에서는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규모를 최소화할 수 있다. 단기적으로 소요되는 비용 부담이 줄어드는 것. 주식매수청구권은 합병 반대 주주가 회사에 일정 가격으로 주식을 판매할 수 있는 권리다. 주식매수청구권 행사 규모가 커지면 합병 계획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당장 써야 할 현금 유동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셀트리온그룹은 주식매수청구 한도로 1조원을 책정했다. 주주들의 주식매수청구권 권리 행사 관련, 회사가 써야 하는 돈이 1조원을 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단순 계산으로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 주가가 현재 수준의 2배였다면, 동일 주주들이 합병 반대에 나설 경우 주식매수청구 대응을 위한 셀트리온그룹의 자금도 2배 가까이 소요됐을 가능성이 높다. 박병국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합병 성공의 핵심은 주식매수청구권을 내부 기준인 1조원 이내로 완료하는 것”이라며 “낮아진 주식매수청구 가격은 (셀트리온그룹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최근 주가 흐름이다. 호재로 여겨졌던 합병 이슈에도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 주가가 하락세다. 주가가 주식매수청구 가격 이하로 떨어지면, 주식매수청구권 행사를 원하는 주주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셀트리온그룹이 마련한 1조원 이상의 비용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셀트리온그룹이 제시한 주식매수청구 가격은 셀트리온 15만813원, 셀트리온헬스케어가 6만7251원이다. 서 회장은 주식매수청구 한도를 두고 “현재 주가가 저평가돼 있기 때문에 1조원이면 충분하다”며 “1조원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며, 1조원 이상 나왔을 때에 대한 대비책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연간 매출 12조원…‘빅파마’ 추진
“과도한 장밋빛 전망”…우려 목소리도
셀트리온그룹은 단계적 합병을 통해 ‘글로벌 제약사(빅파마)’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이다. 2030년 기준 연간 12조원 매출이라는 구체적 계획도 내놨다. 지난해 별도 재무제표 기준 3사 매출 합계는 3조7000억원이다. 여기에 셀트리온의 제품 판매가 셀트리온헬스케어, 셀트리온제약을 통해 이뤄지는 매출 구조상 합병 이후 매출 규모가 3사 매출 합계보다 축소될 가능성도 있다. 이를 고려하면 연간 12조원 매출은 그야말로 원대한 목표다.
엄민용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는 “셀트리온그룹 3사 합병 이후 직접 판매 구조를 통해 원가율이 큰 폭으로 감소할 것”이라며 “매출 구조 단순화와 원가 절감을 통해 매출 확대는 물론이고, 이익률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혜민 키움증권 애널리스트 역시 “셀트리온헬스케어가 셀트리온에서 매입한 가격 이하로 판매할 수 없어 공격적 가격 정책이 쉽지 않았지만, 합병으로 인해 공격적 대응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연간 12조원 매출은 쉽지 않다. 셀트리온그룹이 기대하는 또 다른 매출 증가 요인은 ‘신약 사업’이다. 원가 경쟁력 강화로 개선된 수익성을 앞세워 신약 연구개발(R&D) 투자를 강화, 2030년 기준 전체 매출의 40%가 신약 파이프라인에서 발생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셀트리온은 위탁생산(CMO) 사업으로 출발해 바이오시밀러로 지금의 성장을 일궈냈다. 하지만 CMO와 바이오시밀러 시장은 과거 대비 경쟁이 치열한 상황. 셀트리온그룹이 외형을 확대하려면 새 먹거리가 필수인 상태다.
셀트리온그룹 신약 사업을 이끌 첫 주자는 ‘짐펜트라’다. 자가면역 치료제 레미케이드의 바이오시밀러 ‘램시마’의 피하주사(SC) 제형이다. 이미 유럽에서는 램시마SC 명칭으로 바이오베터(개량 신약)를 허가받았다. 미국에서는 별도 임상을 진행, 연내 미국 식품의약국(FDA) 허가를 기대하고 있다. 서 회장은 “짐펜트라의 FDA 승인일(End-day)은 10월 28일”이라며 “2030년 예상 매출 12조원 중 짐펜트라가 3조원을 벌어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짐펜트라 외 추가적인 신약 연구개발 투자도 나선다. 항암제 분야로 키를 잡았다. 자체 개발 중인 신약 후보물질 중 2개를 내년 중 임상 1상에 진입시키겠다는 구체적 목표도 제시했다. 적응증은 유방암과 위암이다. 신약 연구개발을 위해 꼭 필요한 플랫폼 확보에도 비용을 아끼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현재 셀트리온은 항체약물결합체(ADC)와 mRNA(메신저리보핵산), 이중항체 등의 플랫폼을 갖고 있다. 서 회장은 “자체 신약을 개발하는 데 필요하다면 투자나 L/I(기술 도입) 등을 지속 고려할 방침”이라며 “짐펜트라 외 신약 한두 개가 가세해 2030년 기준 오리지널 제품으로만 약 5조원의 매출을 낼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증권가에서도 우려의 시선이 나온다. 셀트리온그룹은 짐펜트라 FDA 승인을 전제로 내년 미국 내 램시마SC(짐펜트라) 매출 예상치를 7000억원으로 제시했다. 정유경 신영증권 애널리스트는 “미국에서는 약국 채널 유통을 위한 처방약급여관리업체(PBM) 공략 등에 일정 시일이 소요되는데, 이를 고려하면 7000억원의 매출 목표는 매우 공격적인 수준으로 판단된다”며 “2026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적용에 따른 휴미라 가격 인하 가능성도 램시마SC 가격 형성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직 계열’ 서정진 회장 지배력 강화
이사회 구성 보니…뚜렷해진 승계 구도
합병과 함께 시장에서 관심을 갖는 건 2세 승계다. 서 회장과 셀트리온그룹이 공식적으로 승계를 언급한 적은 없다. 다만 지배구조를 단순화하면 승계 작업도 탄력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다. 서 회장의 셀트리온그룹 지배력이 절대적으로 높아지는 만큼, 승계 작업이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현재 셀트리온그룹은 서 회장이 지분 97.1%를 가진 지주사 셀트리온홀딩스가 3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셀트리온홀딩스가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 지분 20.1%, 24.3%를 보유하고 셀트리온이 셀트리온제약 지분 54.8%를 보유한 방식이다. 합병 후 셀트리온그룹 지배구조는 단순화된다. 1단계 합병 이후에는 ‘서정진 회장 → 셀트리온홀딩스 → 통합셀트리온 → 셀트리온제약’, 2단계 합병 이후에는 ‘서정진 회장 → 셀트리온홀딩스 → 통합셀트리온(3사 합병)’ 형태로 바뀐다. 셀트리온홀딩스 지분만 일정 수준 보유하면, 셀트리온그룹 전체에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다.
재계는 이번 합병을 통해 승계 후보가 뚜렷해졌다는 평가를 내린다. 장남 서진석 셀트리온·셀트리온제약 이사회 의장과 차남 서준석 셀트리온헬스케어 이사회 의장은 셀트리온그룹 관련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합병 시 이사회에 누가 참여하느냐가 승계 구도를 결정할 ‘핵심 요인’으로 꼽혔다. 이번 합병설명회에서 결과가 공개됐다. 장남 서진석 의장은 참여하고, 차남 서준석 의장은 제외됐다. 장남의 승계가 유력해졌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서 회장은 앞서도 장남에 대한 지지를 드러냈다. 서 회장은 지난 3월 열린 셀트리온 정기 주주총회에서도 “장남을 믿어달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당시 서 회장은 서진석 의장을 두고 “내 아들이라 데려다놓은 거 아니다. 카이스트 박사고, 제품 개발이나 신약 파이프라인 사업을 주로 담당하고 있다”며 “오너만이 대규모 투자를 결단할 수 있다. 능력과 네트워크가 있는 서진석 의장은 나와 제품 개발, 인수합병(M&A) 관련 사업을 긴밀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주들 앞에서 장남의 능력을 공개적으로 칭찬하고 치켜세운 셈이다.
물론 변수는 있다. 소송을 통해 법적 자녀로 인정받은 혼외자 2명이 가져갈 셀트리온홀딩스 지분이다. 상속법상 정상속분 비율(배우자 1.5 대 자녀 1)로 상속할 경우 서 회장의 부인 박경옥 씨는 셀트리온홀딩스 지분 26.51%를, 장남 서진석 의장과 차남 서준석 의장 등 두 아들과 두 혼외 자녀는 각각 17.67%씩을 받게 된다. 만일 승계를 두고 분쟁이 펼쳐질 경우, 혼외 자녀들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맡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서 회장이 보유한 셀트리온스킨큐어 지분 일부를 혼외자들에게 넘겨주는 방식 등도 언급된다.
다만 서 회장은 이번 합병과 2세 승계는 어떤 연관 관계도 없다고 밝혔다. 서 회장은 “승계나 개인적인 이해관계 때문에 합병을 추진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주주들이 원했고, 많은 투자자들의 권유로 합병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4호 (2023.08.30~2023.09.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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