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너만 믿는다”…AI 호황에 ‘스타덤’
‘엔비디아가 기술주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AI용 반도체인 GPU 등을 설계하는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지난 8월 23일(현지 시간) 실적을 발표했다. 기대를 충족하는 ‘어닝 서프라이즈’였다. 2023년 7월 30일 마감된 2분기 매출이 135억700만달러로, 1년 전보다 101%, 전분기보다 88% 증가했다. 해당 분기의 주당순이익은 2.48달러다. 1년 전보다 854%, 전분기보다 202% 늘었다.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무려 1263% 성장한 68억달러를 기록했다. 영업이익률도 50%를 웃돈다.
엔비디아가 내세운 장밋빛 전망도 투자자를 놀라게 만들었다. 엔비디아는 3분기(8~10월) 매출을 예상치(126억1000만달러)보다 훨씬 높은 160억달러로 예상했다. 연간 기준으로 매출이 전년 대비 약 170%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미국 정부가 ‘큰손’인 중국에 대한 초고성능 칩 판매를 제한했음에도 엔비디아 실적이 호조를 보인 것도 이례적이다. 중국 외 판매망이 확대됐다는 점이 긍정 포인트다. 앞서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 정부가 수천 장의 엔비디아 칩을 구매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예상을 웃도는 실적 발표 이후 장외 시장에서 한때 9% 급등해 사상 최고치(510달러)를 기록했다. 이날 정규장에서의 종가(471.16달러)는 연초 대비 222%가량 급등한 수준이다. 올해 S&P500지수 종목 중 가장 높다.
블룸버그통신은 “투자자들은 2분기 실적을 통해 엔비디아 실적이 일회성이 아닌 장기적인 확장 국면에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며 “이날 실적은 그들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낙관적인 결과였다”고 분석했다.
내년 4배 생산 확대 전망도
증권가는 AI 칩 분야에서 확고한 시장 지배력을 확보한 엔비디아가 내년 생산량을 4배 이상 확대하는 등 경쟁자와 ‘초격차’를 벌릴 것으로 전망한다. 엔비디아 칩은 3D 게임을 위한 그래픽처리장치(GPU)에 최적화됐다. 인텔과 AMD가 만드는 중앙처리장치(CPU)를 보조하는 역할이다. 그러다 암호화폐가 나오고 챗GPT 같은 생성형 AI 기술이 부각되며 엔비디아 칩의 가치가 더욱 높아졌다. 수많은 데이터를 처리하는 데 엔비디아 칩을 따라갈 만한 반도체가 현재 없어서다. 엔비디아 초고성능 칩인 H100이 무려 ‘4만달러(약 5340만원)’에 달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새로운 컴퓨팅 시대가 시작됐다”며 “세계 기업들이 범용 컴퓨팅에서 가속 컴퓨팅과 제너레이티브 AI로 전환하고 있다”고 밝혔다.
엔비디아는 경쟁자와 초격차를 더 벌릴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FT는 “엔비디아는 H100 칩 생산을 내년에 최대 4배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올해 H100 생산 목표는 50만대인데 내년에 200만대까지 확대하겠다는 전망이다. 현재 엔비디아 고성능 칩은 주로 대만 TSMC에서 생산되는데, 삼성전자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로 주문을 확대할 가능성도 있다.
엔비디아의 밝은 미래가 예상되는 이유는 AI 칩 수요가 공급 여력을 지속적으로 앞지르고 있어서다. 배런스에 따르면, 기업들이 엔비디아 칩을 선호하는 이유는 엔비디아가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밍 플랫폼 생태계인 쿠다(CUDA)를 갖고 있어서다. 개발자들은 10년 이상 엔비디아가 만든 플랫폼에서 AI 관련 툴과 소프트웨어 라이브러리를 구축하고 공유해왔다. 애널리스트들은 엔비디아 매출액 제약 요인은 수요가 아니라 반도체 파운드리의 ‘첨단 칩-패키징’ 생산 여력이라고 파악한다.
모건스탠리 애널리스트인 조셉 무어는 “엔비디아가 (AI 칩) 수요의 절반도 충족시키지 못한다”며 ‘비중 확대’ 의견과 목표주가 500달러를 제시했다. 에버코어 ISI 애널리스트인 C.J. 뮤즈도 “AI 훈련·추론 애플리케이션 수요로 데이터센터 GPU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고, 이런 수요 강세는 최소 6~9개월간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보다 70% 이상 뛸까
목표주가도 크게 올랐다. 미 투자은행 로젠블랫의 한스 모제스먼 애널리스트는 최고 800달러를 제시했다. 현 주가(470달러, 8월 23일 종가)를 감안하면 70% 이상 높다. 대체로 500달러 돌파는 무난하고 600달러를 넘길 것이라는 의견이 적지 않다.
아티프 말릭 씨티 애널리스트는 목표주가를 420달러에서 520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말릭은 “엔비디아가 AMD에 비해 AI 성능이 우세하다”며 “GPU로 AI 가속기 시장의 90% 점유율을 유지해나갈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엔비디아가 소프트웨어 프레임워크인 쿠다와 심층 신경망 라이브러리인 cuDNN을 통해 GPU 최적화 기술을 쌓았다”며 “수년간의 경험은 경쟁사와의 격차를 크게 벌리는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말릭은 기본적인 시나리오에서 주가수익비율(PER) 35배를 적용해 목표주가 520달러를 제시했다. AI 작업량이 올해 2배 늘고 내년 소폭 늘어난다고 가정이 깔렸다. 올해와 내년 거시경제 여건이 게임 사업을 둔화시키지 않을 정도로 견고하다면 600달러(PER 40배 적용)가 가능하다고 봤다. 키뱅크 애널리스트인 존 빈이 “견조한 AI 수요로 엔비디아 주가 상승세가 계속될 것”이라며 목표주가를 500달러에서 550달러로 상향 조정했다.
주주 환원 정책까지 내놨다. 엔비디아 이사회는 250억달러(약 33조375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도 승인했다. 자사주를 매입하면 시장에서 유통 주식의 수가 줄어들고 그만큼 주가가 더 오를 가능성이 커진다.
엔비디아 주가를 끌어내릴 요인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엔비디아는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추진하는 대(對)중국 반도체 추가 수출 통제가 장기적으로 회사의 성장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콜레트 크레스 엔비디아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실적 발표 후 “2분기 대중국 매출 비중이 20~25%로 과거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면서도 “장기적으로 미국 정부의 대중국 수출 추가 규제는 세계 최대 시장 중 하나인 중국에서 경쟁하고 (시장을) 선도할 기회를 영구히 잃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가 엔비디아 실적에 대형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시장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나왔다. 지난해 10월 미국 정부는 중국의 반도체 생산 기업에 미국산 첨단 반도체 장비 판매를 금지했다. AI, 슈퍼컴퓨터 등에 사용되는 반도체 칩에 대한 수출을 제한하는 수출 통제 조치도 발표했다. 당시 엔비디아는 이 통제 조치로 분기 매출에서 최대 4억달러의 손실을 볼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엔비디아는 기존 칩 A100보다는 성능이 다소 낮지만 수출 규제에는 걸리지 않는 A800 칩을 대중국 수출용으로 개발해 생산해왔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해당 칩의 판매를 금지하는 추가 규제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빅테크들은 수출 규제가 본격화되기 전 물량을 선점하겠다며 반도체 사재기에 나섰다. 텐센트, 알리바바, 바이트댄스 등 중국 빅테크들이 50억달러 규모의 A800 칩 10만개 주문을 넣었다. 내년에도 40억달러어치 A800 칩을 구매하는 계약을 엔비디아와 이미 체결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24호 (2023.08.30~2023.09.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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