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불발탄 조작' 목격 부대원 "신원식 두렵지만, 진실 밝히고 싶었다"
[박현광, 김도균 기자]
▲ 'A 이병' 사망 당시 훈련에 참가해 사고 상황을 목격한 조아무개 병장. 지난 26일 순천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
ⓒ 박현광 |
1985년 훈련 중 '잘못 발사된' 포탄을 맞고 사망했지만, '불발탄을 밟은 것'으로 사인이 조작된 A 이병과 함께 복무한 조아무개씨(당시 병장)는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아래 군진상규명위)에 이 사건을 진정할 당시 심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진정 대상인 소속 부대 중대장이 현역 국회의원이자 차기 국방부 장관으로 거론되는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씨는 A 이병을 향한 미안함이 더 컸다.
"두렵다고 해서 이걸 덮어두면 내가 OOO(A 이병)을 또 죽이는 꼴이잖아요."
"한 달 전부터 검사했는데, 불발탄? 말이 안 되죠"
38년 전, A 이병은 부대의 실수로 잘못 쏜 60mm 박격포 포탄을 맞고 사망했다. 하지만 부대는 A 이병이 '불발탄을 밟은 것'이라고 사고 원인을 조작했다. 이는 군진상규명위 조사 결과 밝혀졌다(관련 기사 : [단독] 신원식 중대장 시절 '부대원 사망' 조작 결론 https://omn.kr/25dio).
M60 사수였던 조 병장(당시 계급)은 당시 상황을 지켜봤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부대의 '입단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지난 2020년 군진상규명위에 이 사건을 진정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26일 전남 순천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불발탄 사망'은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그 연습을 하기 한 달 전부터 금속 탐지기로 불발탄이 있느냐 없느냐를 (검사) 했단 말이죠. 몇 번을 그랬단 말이지. 근데 불발탄이 있을 수 있냐는 거지. 고지 점령하는 길은 정해져 있는데, 그 길을 (훈련 전에) 여러 번 갔어요. A 이병이 그 길을 못 찾았을까? 근데 그게 불발탄이라고? 말이 안 되죠."
사고는 1985년 10월 24일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에 위치한 승진훈련장에서 진행된 공지합동훈련 중 '고지 점령 훈련' 때 발생했다. 훈련은 고지의 7~8부 능선에 공중 지원 폭격과 후방 화기소대의 박격포 사격 이후, 1~2부 능선에서 대기하던 돌격조 보병이 진격해 고지를 탈환하는 훈련이었다. 실제 포탄을 사용하는 만큼, 부대원들은 한 달 전부터 진격 훈련, 이동로 숙지 등을 반복·숙달했고, 점호(취침 전 인원 점검) 전 '사수의 임무'를 확인받아야 잠을 잘 수 있을 정도로 철두철미하게 준비했다. 탄피 수거와 불발탄 제거도 여러 차례 진행됐다.
"포 쏘는 순간 '잘못 쐈다' 무전... 신원식, 몰랐을 리 없어"
하지만 부대가 내린 'A 이병 사망' 결론은 유기돼 있던 불발탄(M203 유탄발사기 40mm 고폭탄)을 밟았다는 것이었다. 조 병장은 납득할 수 없었다. 그는 당시 M60 사수로, 포진지(60mm 박격포 위치) 후방 고지대에 있었던 탓에 포탄의 궤적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고지의 7~8부 능선에 떨어지기로 했던 포탄은 돌격조가 대기하던 1~2부 능선에 떨어졌다. 사거리 측정 실수였다.
"포탄 쏘는 각도가 있을 거 아니에요. 멀리 쏘려면 이렇게 눕혀서 쏴야 하잖아. 근데 '푹' 하고 위로 쏘는 거예요. OOO(부사수)한테 그랬다니까. '포가 왜 저리 떨어지냐. 아까운 놈 한 놈 죽는구나'라고. 걔도 '큰일 나겠네'라고 걱정했다니까."
60mm 박격포 운용 책임자는 중대장이었다. 당시 8사단 21연대 2대대 5중대장은 28살의 신원식 대위. 신 의원은 최근 "다친 A 이병을 보진 못했지만, 포탄에 맞아 사망했다는 건 거짓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조 병장 말은 달랐다.
"누군가가 포를 쏜 순간 '야, 포 잘못 쐈다'고 무전하는 소리가 들렸어. 그러니까 중대장도 쏜 순간 안 거야. 몰랐을 리 없지."
사고 직후 훈련은 곧바로 종료됐다. A 이병은 분대장에게 업혀 집결지로 내려왔다. 조 병장도 집결지로 가서 A 이병을 살폈다. 중대장이었던 신 의원 또한 그 자리에 있었다고 했다.
"그때 몇 명 못 오게 했어. 근데 나는 고참이니까 한번 봐야겠다고 해서 가서 봤어. (몸의 오른쪽) 반이 날아갔는데, 판초우의가 막 폭폭폭 뚫렸더라고. 방독면도 빵구가 나고 그랬어. 불발탄을 밟았으면 발목이 성치 않았어야 했는데, 발목은 있었어요. 그때 중대장도 거기 있었지, 그럼."
"신원식, 중대원 모은 뒤 입조심 하라고 했다"
조 병장 기억에 따르면, 당시 승진훈련장에서 부대까지는 40km 정도. 군장을 메고 행군을 하면 12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때문에 부대는 훈련장 부근에 텐트를 치고 숙영을 하고 있었다. 숙영지에서부터 '입단속'은 시작됐고, 부대 복귀 후엔 중대장이었던 신 의원이 직접 경고하기도 했다.
"승진훈련장에서 인사계가 우리 같은 고참들 불러 놓고 '불발탄이다 그래라' 이렇게 얘기했지. 그때 당시는 시키는 대로 해야 하잖아. 부대로 들어와서 다음 날인가, 각 중대 앞에 보면 사열대가 있어요. 중대장이 거기에 모아 놓고 '불발탄 밟은 거다. 입조심해라' 그랬지. 길게는 말 안 하고. 특히 1소대(A 이병 소속)는 한 달인가 휴가나 외출도 못 했어."
전두환 신군부 집권 시절, 1985년 당시 군대에선 누구도 입바른 말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채수근 상병 건은 요새 같으니까 드러난 거야. 지금 같으면 덮을 수 없지만 38년 전은 그럴 수 있었어. 훈련장에서 부대까지 40km 정도야. 거기에 밥 갖다주면 외부랑 완전히 단절되잖아. 거긴 함부로 못 들어가는 곳인데. 신원식은 그 사건을 덮어서 중장까지 단 거야."
▲ 조아무개 병장은 당시 같은 부대원이었던 임아무개 상병과 현충일을 앞둔 지난 5월 말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의 진상규명 내용이 담긴 결정문을 들고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A 이병을 방문했다. |
ⓒ 조아무개 병장 제공 |
결국 A 이병과 함께 복무했던 중대원들은 이 사건에 대해 침묵을 지킨 채 전역했다. 다만, 조 병장을 비롯한 중대원 일부는 지금까지도 만남을 이어오면서 간간이 A 이병 얘기를 나눴다. A 이병이 포탄에 쓰러지는 장면을 10미터 후방에서 봤던 임아무개 상병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임 상병은 이후 군진상규명위 조사 과정에서 부대 지휘관들의 사인 조작·은폐 가능성에 대해 진술한 사람 중 한 명이다.
"그(A 이병) 아버지가 아들이 억울하게 죽은 줄 어떻게 알았나 봐. 그래서 아버지가 옛날에 마장동터미널로 왔더래. 이 마크, 오뚜기(8사단 부대마크)만 보면 우리 아들 아느냐고 OOO이 아느냐고. 근데 얘(임 상병)가 딱 잡힌 거야, 두 번이나. 그래서 얘도 마음이 안 좋았나 봐."
조 병장 등이 A 이병에 대한 안타까움만 가슴 속에 담고 있던 사이, 신 의원은 합동참모차장을 거쳐 중장으로 예편한 뒤 2020년 총선에서는 국민의힘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됐다. 조씨는 어느 날 TV를 통해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 의원의 모습을 봤다고 했다. 그때 A 이병 사건에 대한 군진상규명위 진정을 결심했다. 마침, 군진상규명위 진정 접수 마지막 날인 2020년 9월 14일이었다.
"그날 소주를 많이 먹었어. TV에 (신원식) 얼굴이 딱 나오데. 국방위원 어쩌고 그래. 그래서 국회의원 됐다는 걸 알았지. 내가 저런 악마는 되면 안 되는데 그랬어요. 저 XX는 옛날에 군 시절에 더 나쁜 일을 해놓고 큰소리친다고 그랬지. 알아보니 군진상규명위 진정 마지막 날이라네. OOO이 살려야겠다는 생각에 술 마시다 집으로 갔어."
38년 뒤 A 이병 영전에 올린 진상규명 결정문
군진상규명위는 지난해 12월 A이병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마쳤다. 조 병장은 현충일을 앞둔 지난 5월 20일, 진상규명 결정문을 들고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된 A 이병을 찾았다.
"2년 동안 조사관이 몇 번 내려왔는데, 그때마다 '지금 안 하셔도 됩니다' 얘기하더라고요. 근데 여기서 포기하면 덮어버리는 거잖아요. 그래서 내가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 같으면 세금 추적이 들어오거나 그럴 수 있지만, 나는 그런 거 안 하는 사람이니까. 내가 불이익을 받으면 얼마나 받겠느냐. 내가 진실을 밝혀야겠다고 생각했지. 솔직히 지금은 덤덤해요."
군진상규명위는 지난해 12월 결정문에서 "부대원들의 공통된 진술 등을 고려하면, 망인의 사망은 훈련 과정에서 불발탄을 밟아서 사망한 것이 아니라 정확한 사거리 측정 없이 급격하게 사격된 박격포 포탄에 의해 사망했다고 봄이 상당하다"며 "망인의 소속 부대 지휘관과 간부들은 망인의 사인을 불발탄을 밟아 사망한 것으로 왜곡·조작함으로써 사고의 지휘 책임을 회피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 신원식 국민의힘 의원이 3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질의하고 있다. |
ⓒ 남소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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