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기서 응급수술까지… 병원 없는 섬마을로 365일 출동합니다”

전종보 기자 2023. 8. 2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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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병원 언성히어로] ⑪가천대길병원 닥터헬기 조종사 한승수 헬리코리아 기장
2018년 6월 어느 날. 협심증으로 쓰러진 백령도 주민 김씨(가명) 할머니는 백령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심박 수가 절반 이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당장 큰 병원으로 옮기지 않으면 사망할 수 있는 응급상황이었다. 백령병원은 곧바로 닥터헬기를 요청했다. 머지않아 백령도 상공에 나타난 닥터헬기는 환자를 싣고 인천 구월동 가천대 길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 혈관 확장 치료를 받은 김씨 할머니는 무사히 건강을 회복했다.

김씨 할머니는 가천대 길병원 닥터헬기가 수송한 1000번째 환자였다. 닥터헬기는 그 후로도 매일 같이 인천과 충청 일부 지역에서 환자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그렇게 이송한 환자가 1700명 이상이다. 닥터헬기가 없었다면 1700명이 넘는 이들의 운명이 달리 되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섬마을 사람들에게 닥터헬기는 하늘을 나는 구급차이자 응급실이다. 가천대 길병원 닥터헬기를 조종하고 있는 헬리코리아 한승수 기장은 “섬에서 위급한 환자가 배 타고 차 타고 병원까지 오다보면 시간이 오래 걸려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할 수 있다”며 “인천에 반드시 닥터헬기가 있어야 하는 이유다”고 말했다.

가천대길병원 닥터헬기에 탑승한 한승수 기장/ 가천대길병원 제공


◇출동까지 5분, ‘풀옵션’ 헬기 타고 섬마을 응급환자 이송

‘닥터헬기(doctor helicopte).’ 말 그대로 의사가 탑승한 헬리콥터다. 응급의료 취약지역 환자를 병원까지 빠르게 이송하는 것이 목적으로, 중증 외상, 심뇌혈관질환 등이 발생해 응급치료가 필요한 환자가 주요 대상이다. 헬기에는 조종사 2명과 함께 전문의, 응급구조사, 간호사 등이 탑승하며, 즉각적인 응급수술이 가능하도록 내부에 각종 의료 장비와 의약품이 갖춰져 있다. 가천대 길병원에서 운용하는 AW-169 기종의 경우 최신 이륙·조종 시스템과 에어컨, 기상레이더, 공중추돌방지장치 등도 장착됐다. 자동차로 치면 ‘풀옵션’인 셈이다. 한승수 기장은 “헬기 성능은 물론, 안전성도 최고 수준”이라며 “실제 조종해보면 최신 기종을 타고 있다는 걸 체감한다”고 말했다.

병원에 출동 요청이 들어오면 우선 운항관리사가 기상과 시정(視程, 목표물을 명확하게 식별할 수 있는 최대 거리) 등을 고려해 ‘고(GO)’ 또는 ‘노 고(NO GO)’를 결정한다. 고(GO), 즉 헬기 운용이 가능하다고 판단되면 인근 계류장에 위치한 닥터헬기에 출동을 요청하고, 의료진은 헬기가 올 때까지 환자에게 필요한 의료장비와 약품 등을 챙겨 탑승 준비를 마친다. 잠시 후 병원에 도착한 헬기는 의료진을 태우고 환자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헬기가 계류장에서 병원에 오는 데 5분, 의료진을 태우고 다시 출발하는 데까지 길어야 10분이다. 이후 헬기가 현장에 도착하면 의료진이 환자 상태를 파악한 뒤 헬기에 싣고 다시 병원으로 향한다.

하늘을 날고 있을 뿐, 헬기 역시 환자를 치료하는 ‘현장’이다. 환자 상태에 따라서는 헬기 안에서 응급수술이 진행될 수도 있다. 실제 헬기에서 환자를 치료하다보면 바닥에 피가 흥건해질 만큼 많은 출혈이 발생할 때도 있다고 한다.

◇2011년부터 운용… 연평도·백령도부터 충청까지

현재 인천 지역 닥터헬기는 가천대 길병원과 보건복지부, 인천시, 헬리코리아가 함께 운용하고 있다. 2011년 9월 첫 환자 이송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1700회 이상 출동했으며, 해당 기간 동안 강화도와 영종도는 물론, 연평도, 덕적도, 백령도 등에서도 환자를 이송했다. 최근에는 인천뿐 아니라 일부 충청권까지 출동·이송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헬기 운용 시간은 일출부터 일몰까지다. 쉬는 날은 따로 정해지지 않았다. 해가 지거나 기상 악화, 정비 등으로 인해 헬기가 뜰 수 없는 날만 빼고 365일 출동 대기다. 헬리코리아에서는 한승수 기장을 포함한 조종사 5명이 매일 돌아가며 가천대 길병원 닥터헬기 운항을 맡고 있다. 출동 건수 일주일 평균 3~4번. 출동이 없는 날도 있는 반면, 하루에만 3번, 4번씩 환자를 이송할 때도 있다. 이송 시간은 지역마다 다르다. 길면 3시간이지만, 짧으면 50분 만에도 환자 이송이 끝난다. 인천보다는 충청 지역이 오래 걸리며, 백령도 역시 거리상으론 가까우나 38선과 인접해 왕복 3시간가량 소요된다. 한승수 기장은 “작은 섬까지도 헬기 이착륙장이 설치돼 있어 인천 지역 내 웬만한 섬들은 모두 출동하고 있다”며 “출동 요청이 들어오면 최대한 빨리 출동해 병원까지 안전하게 환자를 이송해 와야 한다. 특히 닥터헬기의 경우 병원 옥상에 이착륙하기 때문에 안전에 유의하면서 더욱 세밀한 조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천대길병원 닥터헬기 / 가천대길병원 제공

◇1991년부터 헬기 조종 “​특전사 복무하며 관심 갖게 돼”​​

한 기장은 헬리코리아가 가천대 길병원 닥터헬기 운항을 맡은 2016년부터 닥터헬기 조종사로 일하고 있다. 그 전까진 군에서 항공준사관으로 복무하며 20여 년간 헬기 핸들을 잡았다.

처음부터 헬기 조종에 뜻이 있던 건 아니었다. 1984년 특전사에 입대한 그는 군 복무 8년 차였던 1991년에야 헬기 조종을 시작했다. 입대하기 전까진 특전사에 헬기가 있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특전사 입대 후 훈련을 위해 헬기를 많이 타게 됐고, 조종사가 되고 싶어 오랜 노력 끝에 헬기를 조종하는 항공준사관이 됐다는 설명이다. 한승수 기장은 “20대 초반 특전사에 입대할 때만 해도 속세를 떠난다는 마음뿐이었다(웃음)”며 “헬기에 대해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다 군에서 훈련을 하며 헬기를 많이 타게 됐는데 ‘저거(조종사) 내가 하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며 “그 길로 조종사가 되는 방법을 알아보니 시험을 봐야 했다. 그래서 공부하고 시험 봐서 꿈을 이뤘다​”고 했다.

한 기장은 군 전역 후 조종사 경력을 이어가기기 위해 헬리코리아에 입사했다. 처음 회사에 들어갔을 땐 닥터헬기가 아닌 화물 운송 헬기 담당이었다. 그러나 당시 헬리코리아가 닥터헬기 운항을 맡으면서 닥터헬기 전용 조종사가 필요해졌고, 한승수 기장이 그 역할을 맡게 됐다. 닥터헬기를 조종하기 위해서는 해당 헬기를 제작한 이탈리아 회사에서 교육을 받아야 했는데, 군 복무시절 미국에서 6개월가량 교육을 받고 자격증을 취득한 한 기장이 어학 능력을 갖춘 적임자로 평가됐다.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근무지(인천)가 집(수원)과 가까운 데다 헬기도 최신 기종에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보니 가족들이 더 좋아하더라”고 말했다.

◇“빨리 출동해 환자 이송하는 게 내 임무… 출동 범위 넓어졌으면”

그렇게 20년 넘게 타던 군 헬기에서 내려 닥터헬기 조종을 시작했다. 첨단 장비가 탑재돼 조작은 편했으나 그만큼 공부할 것도 많았다. 제작사 교육 과정을 수료하며 조종에 필요한 모든 걸 배웠지만, 여전히 그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승수 기장은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지 않나”라며 “꾸준히 공부하고 연구해야 한다”고 했다.

2016년부터 약 7년. 한 기장은 헬기로 수많은 환자를 이송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환자를 묻자 데려오지 못한 환자 이야기를 들려줬다. 서둘러 현장에 도착했으나 이미 사망한 환자들이다.(항공법상 사망했다고 판단된 사람은 닥터헬기로 이송할 수 없다) 그는 “사망자의 경우 유족이 헬기 탑승을 요청해도 법으로 정해져 있어 불가능하다”며 “조종사 입장에서도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끝으로 목표에 대해 물었다. 군복을 벗은 지 10년이 다 돼가지만 그의 말투는 현역 군인 못지않게 결연했다. 한승수 기장은 “특별한 건 없다.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라며 “출동 요청이 들어오면 빨리 출동해 환자를 이송하는 게 내 임무다”고 말했다. 목표는 없지만 바람은 있었다. 그는 “중장기적으로 출동 범위가 넓어진다면 인천 지역뿐 아니라 전국, 특히 소외된 지역까지도 출동하고 싶다”고 말했다.

<4담: 네 가지 담지 못한 이야기>

1. 닥터헬기 조종사는 환자 연령, 질환, 현재 상태 등에 대해 묻지 않는다. 환자 정보를 들으면 마음이 조급해져 무리한 조종을 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통화 버튼을 누르면 조종사 뒤편 상황을 들을 수 있지만, 이 역시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듣지 않는다고 한다.

2. 자동차가 그렇듯 헬기도 자주 운항하다보면 익숙해지는 ‘하늘 길’이 있다고 한다. 헬기의 경우 비행 고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지형지물이 잘 보여 길이 익숙해지기 쉽다. 한 기장은 “비행하다보면 눈에 익은 산들을 보면서 ‘여기구나, 여기 쯤 왔구나’하는 감이 온다”고 말했다.

3. 한승수 기장의 취미는 전자오르간이다. 군 입대 전부터 음악과 악기에 관심이 많았다. ‘본인피셜(본인+오피셜)’로는 준프로 수준. 웬만한 7080음악은 모두 연주할 수 있다고 한다. 아쉽게도 인터뷰 장소에 전자오르간이 없어 직접 들어볼 순 없었다. 악기 연주와는 별개로 체력 관리를 위해 주 4회 이상 웨이트 트레이닝도 하고 있다.

4. 닥터헬기 운항관리실이나 회사에는 헬기 소음 관련 민원이 꾸준히 접수된다. 닥터헬기 도입 초반에는 말려놓은 고추가 날아간다고, 지붕이 날아간다고 민원을 넣는 이들도 있었다. 한 기장은 “특정 지역에서 민원이 들어온다고 전달 받으면 그곳은 최대한 피해서 운항하고 있다”며 “시끄러운 건 맞다. 그러나 본인도 아프면 탈 수 있다. 조금만 이해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가천대길병원 닥터헬기 조종사 한승수 헬리코리아 기장/ 가천대길병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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