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억 쓸 인물인가"…조용하던 정율성 거리, 되레 발길 늘었다 [르포]

황희규 2023. 8. 29.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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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동구 불로동 정율성 생가에서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48억원 정율성 공원, 올해 말 준공


29일 오전 10시 광주광역시 동구 불로동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현장. 중국 혁명음악가 정율성(鄭律成ㆍ1914~1976) 생가 앞에 굴삭기 1대가 굉음을 내며 작업을 하고 있었다. 생가 앞으로는 건물 폐기물을 실은 덤프트럭이 오갔다.

주변에는 발길을 멈추고 공사 안내판을 들여다보는 시민도 눈에 띄었다. 이곳에서 만난 박모씨는 “전시관이 있는지 몰랐다가 요즘 뉴스에 자주 나오길래 찾아왔다”며 “논란 속에서 굳이 (정율성 역사공원을)강행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했다. 현장 관계자는 “정율성 공원을 놓고 반대 여론이 일면서 생가를 찾는 시민이 늘었다”며 “조성 공사는 논란과 별개로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가 ‘정율성 역사공원’을 만든다는 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시민단체는 광주시에서 반대 집회를 여는가 하면 4·19나 5·18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도 반발하고 있어서다. 앞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지난 28일 전남 순천을 찾아 “정율성은 우리에게 총과 칼을 들이댔던 적의 사기를 북돋웠던 응원대장이자 공산당 나팔수였다”며 “정율성 역사공원 사업 철회에 장관직을 걸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 28일 오전 광주 동구 불로동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공사가 진행 중인 정율성 생가에서 유튜버들이 방송하고 있다. [연합뉴스]


쓸쓸하던 거리…논란 일자 발길 이어져


광주시가 추진 중인 정율성 역사공원은 사업비 48억원을 들여 만든다. 이 돈은 전액 광주시 예산이다. 이 중 초기보상비(매입비)는 35억원, 공사비는 13억원이다. 역사공원(878㎡)엔 생가광장·정자·관리실 등을 설치한다. 또 생가를 리모델링해 정율성 관련 자료를 전시한다. 광주시 관계자는 “정율성 역사공원은 올해 말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늦어도 내년 초까지는 완공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율성 역사공원을 둘러싼 논란 이후 정율성 거리전시관에도 관심이 쏠리는 분위기다. 거리전시관은 정율성 생가에서 2㎞가량 떨어진 남구 양림동 아파트 담벼락에 있다.

지난 28일 오후 광주 남구 양림동 정율성거리 전시관에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황희규 기자

이날 찾아간 정율성 거리전시관 한쪽에 있는 방명록에는 하얀 펜으로 적은 글귀가 가득했다. 방명록에는 ‘광주역사의 오점’ ‘세금 낭비 말라’ ‘광주 역사 더럽히지 말라’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그간 검은 펜으로 적힌 낙서만 있던 방명록이 역사공원 조성을 반대하는 공간이 된 것이다.

이날 거리전시관 인근 도로 곳곳에도 정율성 역사공원 사업 철회를 촉구하는 현수막이 보였다. 정율성 거리전시관은 인근 아파트 외벽을 게시대 삼아 200여m 공간에 정율성 일대기와 초상화 등 20여점이 전시돼 있다.
광주 남구 양림동 정율성거리에 정율성 공원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연합뉴스]


“논란 속 굳이 강행” vs “이제 와서?"


인근 주민에 따르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전까지는 중국인 관광객도 거리전시관을 찾았다고 한다. 주민 김모(52·양림동)씨는 “3년 전 중국인 관광객이 대형 버스를 타고 와 초상화 앞에서 추모하기도 했다”며 “이후 관심을 받지 못하는 거리가 됐는데 최근 며칠 새 찾는 시민이 늘었다”고 했다. 김씨는 "정율성이 수십억원을 들여 기념해야 할 인물인지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반면 "이제 와서 굳이 철거할 필요가 있냐"는 주민도 있었다.
광주 남구 양림동 정율성거리 전시관에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황희규 기자

정율성 거리전시관은 광주 남구가 2009년 초 5000만원을 들여 아파트 인근을 정율성로(路)로 지정하면서 건립됐다. 같은 해 7월에는 남광주 청년회의소(JC)가 중국 해주구 인민정부로부터 기증받은 정율성 흉상을 아파트 입구에 건립하기도 했다.

정율성 역사공원 관련, 강기정 광주시장은 지난 28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당당히 추진하겠다”고 사업 강행을 공식화했다. 광주 출신인 정율성은 중국으로 건너가 의열단장 김원봉이 난징에 세운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를 다녔다. 그는 중국 인민해방군 행진곡(팔로군행진곡)을 작곡했다. 이 노래는 1950년 11월 중공군이 한국전에 개입하면서 가장 많이 부른 노래로 알려져 있다. 정율성은 해방 이후 평양에서 조선인민군 협주단장 등으로 활동했고, 1949년엔 북한 군가인 ‘조선인민군 행진곡’도 작곡했다.

광주 남구 양림동 정율성거리 전시관에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황희규 기자

광주광역시=황희규 기자 hwang.heeg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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