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걸' 고현정 "가장 힘들었던 촬영 '젓갈 창고 장면'"

오수미 2023. 8. 29.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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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넷플릭스 오리지널 <마스크걸> 배우 고현정

[오수미 기자]

ⓒ Netflix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의 기쁨을 <마스크걸>을 통해 너무너무 진하게 느꼈다."

배우 고현정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마스크걸> 속 강렬한 캐릭터 김모미로 돌아왔다. 

지난 18일 공개된 <마스크걸>은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평범한 직장인 김모미(이한별 분)가 밤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인터넷 방송 BJ로 활동하던 중 의도치 않은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고현정은 극 중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교도소에서 10여 년을 보낸 뒤의 김모미를 연기했다. 

교도소 동료들과 어울리며 촬영한 고현정은 "감독님이 이렇게 하면 현장이 재미있구나, 분위기가 좋구나 이런 것도 느끼고 배우들과 수다 떨며 노는 것도 오랜만이라 굉장히 행복했다"며 "밝은 분위기의 작품에서 연기하면 더 재미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나도 밝은 역할 하고 싶다. 나도 변호사, 검사, 판사 역할로 따지고 드는 캐릭터 이제 그만하고 싶다 정말. <여우야 뭐하니>도 했고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말숙이로 데뷔하지 않았나. 그런 밝은 역할을 너무너무 다시 하고 싶다. 더 늙기 전에 갖다 써주시면 좋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24일 오후 서울 역삼동 모처에서 배우 고현정을 만났다. 

고현정이 '마스크걸'을 선택한 이유

고현정은 <마스크걸>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여러 사람과 함께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꼽았다. 그는 "그동안 저도 너무 작품이 고팠다. 여러 가지 사건들을 겪으면서 다시 연기만 할 수 있는 작품이 나에게 올까, 그런 작품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던 중에 <마스크걸> 대본을 받았는데 너무 좋더라"며 "저 혼자 단독으로 이고지고 끌고가야 하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과 합을 맞추고 서로 설명해야 하고 설명을 들어야 하는 작품이었다.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구조적으로 그렇게 짜인 시나리오라서 이 안에서 무난하게 튀지 않고 하나의 퍼즐이 될 수 있는 작품이라 너무 기뻤다"고 답했다.

<마스크걸>의 주인공 김모미를 연기하는 배우는 총 세 명이다. 고등학생부터 20대 직장인까지의 김모미는 배우 이한별이, 얼굴을 완전히 바꾸고 새로운 사람이 된 김모미는 배우 나나가 연기했다. 고현정은 교도소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뒤의 김모미를 맡아야 했다. 한 사람을 여러 명이 나누어 연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고민되거나 신경써야 하는 부분도 많았을 터. 하지만 고현정은 "살아보니 10대, 20대, 30대, 40대, 50대가 다 다르더라"며 오히려 이한별, 나나와 다른 사람처럼 보이는 게 "억지스럽지 않고 현실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나 자신은 나로 살기 때문에 내가 변하지 않은 것 같지만, 10대 때 만난 친구를 40대에 우연히 보면 너무 다르게 느껴진다. 저라는 사람도 누군가에겐 그렇게 보일 수 있다. 그게 훨씬 더 사실적이라고 생각했다. 보시는 분들에게도 억지스럽지 않고 조금 더 현실감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세 명이서 연기하는 것은 (제가) 안 해본 것이기 때문에 좋았다. 특히 내가 마지막 부분이어서 더 좋았다. 제 나이와 비슷한 김모미를 연기한다는 점에서 아주 좋았다."

같은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정작 이한별, 나나와는 실제로 촬영현장에서 만난 적이 없었다고. 촬영이 끝나고 한참 뒤에야 두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는 고현정은 이한별과의 첫만남에 대해 "마치 저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예전에 이랬었지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껴안으면서 '모미야, 너 너무 고생했다'고 하는데 나도 모르게 뭔가 뭉클하더라"라고 회상했다. 이어 "이한별씨와 얘기를 많이 해본 건 아니지만 내공이 깊은 게 느껴졌다. 더 대단한 건 이한별씨에겐 <마스크걸>이 데뷔작이다. 앞으로도 이 배우의 앞날이 기대된다"며 응원을 전했다.

그리고 나나에 대해선 "나나씨는 아티스트 같더라. 나한테 인사를 건네는 때도 이미 반쯤은 김모미 같았다. 배우로서 희생해야할 부분, 너그러워야할 부분도 있었을 텐데 (나나가) 최선을 다 했다고 생각했다. '흑화'한 모미를 적나라하게 잘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 Netflix
 
극 중에서 김모미는 교도소에서 평화로운 여생을 보내다가, 봉사활동가로 위장하고 교도소를 찾아온 김경자(염혜란 분)를 만나고 탈옥을 결심한다. 주오남(안재홍 분)의 모친인 김경자가 자신의 딸 김미모(신예서 분)를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 고현정은 대본의 이 장면을 보고 "교도소에서 김모미를 움직이게 할 방법은 무엇일까 많이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김모미가 (교도소 동기에게) '나 나가야겠다'고 말하는데 어떤 게 얘를 움직이게 할까, 그게 뭘까? 고민되더라. 딸을 위해서? 딸이 너무 보고싶어서? 그건 아닐 것이다. 김모미에겐 평범하지 않은 '돌아이 기질'이 있지 않나. 넷플릭스 판에서 그게 덜 표현됐다고들 하시던데, 저는 연기할 때 (돌아이 기질을) 살짝 넣으려고 했다. 생색내는 것 같지만(웃음). 아무튼 교도소에서 맨몸으로 나가겠다고 결심하는 이유는 딸 밖에 없을 것 같고 그 딸을 누가 건드리느냐가 중요했다. 다른 사람이 건드린다면 직접 나가지 않고 엄마나 경찰에게 알렸겠지. 김경자가 한다고 하니까 자신이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탈옥에 성공한 김모미는 우여곡절 끝에 지친 몸으로 김경자의 집 앞에 당도한다. 고현정은 이 장면의 연기가 가장 마음에 들었단다. 그는 "지친 상태로 겨우 김경자의 집을 내려다 보지 않나. 제가 만든, 제가 분석한 김모미를 연기하면서 가장 좋았던 순간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김모미가 김경자를 장악한 순간이었다. 교도소에서 나올 때도 죽을 각오로 나왔고 김경자의 집을 바라보는 모미는 딸 미모를 위해서든 내 삶을 위해서든 죽을 각오를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모미의 표정을 기억해주시면 좋겠다. 그 장면에서 모미가 슬프지 않거든. 기쁘지도 않다. 그 표정이 진짜 어려웠는데 스스로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만족했다"고 덧붙였다.

이후 김모미는 김경자네 집 젓갈창고에 갇혀 있던 미모를 구하기 위해 김경자와 마지막 혈투를 벌인다. 고현정은 가장 힘들었던 촬영으로 이 젓갈창고 장면을 꼽았다. 그는 당시 스태프들과 함께 고생했던 게 많이 기억에 남는다고 귀띔했다.

"젓갈창고 세트는 출구가 없는 돔 형식의 세트였다. 카메라 감독님, 조명 감독님 등 꼭 필요한 스태프만 있는 데도 꽉 차서 숨을 못 쉴 정도였다. 너무 더울 때였고 사정없이 서로 싸워야 하는 장면이었다. 김경자의 목을 조르면서 '이제 그만 끝내자'고 말하는 대사가 있는데, 그 순간에 진심이었다. 정말 끝내고 너무 나가고 싶었다(웃음). 기계적으로 손 봐야할 게 있다든가, 조명이 고장나거나 그러지 않으면 돔이 열리지 않았다. (그때 연기는) 외부적인 환경이 도움을 크게 줬다. 염혜란씨와 부딪히는 건 거의 다 제가 연기했는데, 가짜로 연기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배우가 힘든 건 영상으로 남지 않나. 젓갈창고 장면은 미술감독님부터 모든 스태프들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무술 감독, 대역배우들 그분들만 생각난다. 배우들도 정말 고생했지만 항아리로 맞고 뒤로 쾅 넘어져서 아찔했던 순간도 있는데 아프지도 않더라. '그냥 빨리 합시다'라고 했다. 다시 해야하니까 빨리 하자. 그 많은 스태프들이 더 많이 고생했다. 돔을 살짝 열었을 때 필요한 것 넣어주고 빼가고 했던 것들이 많이 기억에 남는다."

젓갈창고에서 무사히 빠져나온 뒤 김모미는 탈옥범을 잡으러 온 경찰과 마주치고, 이윽고 김경자의 총에 맞게 된다. 이 장면에서도 원래 대본에는 대사가 있었지만 그마저 생략했단다. 고현정은 딸을 처음 만난 모미라면 염치가 없었을 것이라며 "어떤 말이든 너무 구차할 것 같았다. 하고 싶은 말이야 많았겠지만 할 겨를이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딸을 구해서 나오자마자 동시에 경찰차가 오고, 죽은 줄 알았던 김경자가 살아나왔다. 피를 토하면서 하는 대사도 너무 작위적일 것 같아서 그냥 웃는 것으로 마무리했다"고 설명했다. 

이 장면을 연기하며 모성애와 부성애를 함께 느꼈다는 고현정은 "제 생각에 모성애는 아이가 괜찮은지, 고생하진 않았는지 모두 챙기고 걱정하는 것이라면 부성애는 아이가 무사한지만 확인하는 것에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생각한다. 김모미에게도 딸이 무사한지만 확인할 수 있었던 정도의 시간 밖에 없었다. 그래서 모성애와 부성애의 감정 사이에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라고 덧붙여 해석했다.

고현정의 솔직함이 빛난 순간
 
ⓒ Netflix
 
1989년 미스코리아로 데뷔한 고현정은 어느덧 배우로 34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냈다. 늘 대중의 관심 속에 살아온 그는 이날 자신을 돌아보며 "운이 좋았다"고 정의했다. 50대에 접어든 이후 부쩍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는 고현정은 "<마스크걸>이라는 작품을 만난 것도 운이 좋았지 않나. 저는 장르물을 좋아하지만 그동안 얘기한 적이 한번도 없어서 제겐 이런 작품이 오지 않을 줄 알았다. 저는 SNS도 없고 그 흔한 이메일조차 없다. 그래서 너무 반가웠고 더 잘하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앞서 고현정은 1995년 결혼과 동시에 연예계를 떠났고, 이후 2005년 SBS 드라마 <봄날>로 10년 만에 다시 복귀하기도 했다. 당시를 언급하며 그는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땐 제 외모가 괜찮아서, 다 외모 덕분이라고 생각했다. 모질게 떠났던 것에 비해서 다들 따뜻하게 맞아주셔서 '진짜 예뻐서 그런가?'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저런 구설에 오르기도 하고 난관에 봉착하기도 하면서 내게 외모란 모든 사람에게 있는 외모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번 <마스크걸>을 만난 것도 외모 보단 얼마나 간절하게 바라는 게 있는가 하는 게 더 중요했던 것 같다."

그러나 고현정은 잠시 후 말을 바꾸며 "아니다. 고쳐야겠다. 물론 외모는 (배우로서) 많이 도움이 됐다. 말하면서 생각해보니까, 이건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손사래를 쳤다. 그의 솔직함이 더 빛난 순간이었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외모만 남는 빈 껍데기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을 했다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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