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풀코스를 신청하게 만든 책

신경민 2023. 8. 29.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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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신경민 기자]

"달릴 때 무슨 생각을 하세요?"

순간 정적이 흘렀다. 달리기 할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강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러너는 귀에 에어팟을 꽂고 누군가는 심각한 표정으로, 또 누군가는 웃는 표정으로 달렸다.

최근 '달리는 일'에 권태가 찾아왔다. 비가 끊임없이 오고, 날씨가 덥다며 핑계를 댔다. 점차 달렸던 이유를 잊었다. 그러던 중에 찾아온 일요일은 비가 오지도, 덥지도 않았다.

3주 만에 다시 뛰었다. 지난 4개월간, 일주일에 3~4번씩은 달렸던 것을 생각하면 오랜만이었다. 숨을 헐떡이며 목표를 채우지 못하고 2/3 지점에서 주저앉았다. 처음에 무표정이었지만 삼분의 일 지점에서는 미소를 지었고 삼분의 이 지점에서는 죽을 듯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꾸준히 달려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동력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 동력이 무엇일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달리고 싶지만 달리기 싫은 사람을 위한 애증의 러닝 가이드다. 타인의 사적인 이야기에서 힌트를 얻고자 이 책을 꺼내 들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책표지
ⓒ 문학사상
 
마라토너이자 소설가인 무라카미 하루키. 하루키는 자신의 묘비명을 직접 쓸 수 있다면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로 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는 매일매일 달리면서 또는 마라톤 경기를 거듭하면서 목표 달성의 기준치를 조금씩 높여가며 그것을 달성하는 데 따라 나 자신의 향상을 도모해 나갔다. 적어도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두고, 그 목표의 달성을 위해 매일매일 노력해 왔다. 장거리 달리기에 있어서 이겨내야 할 상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과거의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는 꽤 진지한 러너다. 지난 수십 년간 매일 달리기를 했고, 목표 기준치를 조금씩 높여가며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장거리 달리기에 있어서 이겨야 할 상대는 바로 과거의 자기 자신'이라고 전했다. 달리기로 자신의 향상을 도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나는 하루키만큼 자주 뛰지는 않지만 달릴 때마다 달리기 앱을 보면서 뛴 거리를 보고 성취감을 느꼈기에 공감했다.
 
나와 '달리는 일' 사이에는 서서히 권태기가 찾아오고 있었다. 거기에는 지불한 만큼의 노력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다는 실망감이 있었고, 열려 있어야 할 문이 어느 사이에 닫혀버린 듯한 폐쇄감이 있었다.

그런 하루키도 달리기와 권태를 느꼈던 때가 있었다. 그는 지불한 만큼의 노력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다는 실망감을 이야기했다. 나도 비슷했던 것 같다. 달리기하는 횟수가 줄어든 시점은 하프 마라톤이 끝난 직후였다. 매주 하프 마라톤을 위해 달리기를 연습했지만, 막상 대회에서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몸은 다쳤고, 속상했다. 그만큼 실망감도 컸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는 아주 조금밖에 없지만 달리는 것을 그만둘 이유라면 대형 트럭 가득히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단련하는 것.

하지만 그는 권태를 이겨냈다. 그에게 달린다는 것은 단순히 '달리기'만을 의미한 것이 아니라, '자기 삶에 대한 충실함'을 의미했다. 그는 예술을 비롯하여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 더욱더 건강하고 건전함을 지향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앉아서 고심할 때보다 달리기 하는 도중이나 마치고 난 후에 생각이 정리되어 문득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며 말이다. 달리고 나서 도서관으로 가서 앉았을 때, 고민했던 문제가 쉽게 풀린 경험이 떠올랐다.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는데, 달리기를 할 때 생각이 정리되었을 수도 있겠다.
 
만약 심신의 단련에 필요한 고통이 없다면 도대체 누가 일부러 트라이애슬론이나 풀 마라톤이라고 하는, 노력과 시간이 걸리는 스포츠에 도전할 것인가.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 고통을 통과해 가는 것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에 자신이 살고 있다는 확실한 실감을, 적어도 그 한쪽 끝을, 우리는 그 과정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산다는 것의 성질은 성적이나 숫자나 순위라고 하는 고정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 속에 유동적으로 내포되어 있다는 인식에 다다를 수도 있다.

달리기는 힘든 운동이다. 하루키는 풀코스 마라톤에 대해 '심신의 단련에 필요한 고통'을 언급했다. 심신의 단련은 육체를 단련하고 이를 통해 정신과 자세를 단련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다른 유명 마라토너는 마라톤에서 "아픔은 피할 수 있지만 고통은 선택하기에 달렸다"는 주문을 되뇌었다고 한다. 이는 건강한 몸과 정신의 상호연관성을 생각하게 했다.
 
가령 그것이 실제로 바닥에 작은 구멍이 뚫린 낡은 냄비에 물을 붓는 것과 같은 허망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도, 적어도 노력을 했다는 사실은 남는다. 효능이 있든 없든, 멋이 있든 없든, 결국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은 대부분의 경우, 눈에는 보이지 않는 어떤 것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진정으로 가치가 있는 것은 때때로 효율이 나쁜 행위를 통해서만이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공허한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은 결코 어리석은 행위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실감으로써, 그리고 경험칙으로써.

하루키는 세계적인 작가다. 10년간의 판매 부수는 89만 4000부. 매년 노벨문학상의 단골 후보다. 그가 꾸준히 책을 써낼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매일매일 착실하게 계속 달리며 체력을 길렀던 것도 있지 않을까.

책을 덮고 나자 "달릴 때 무슨 생각을 하세요?"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있었다. 사실 목표한 거리를 달릴 동안 특별한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그저 힘들어서 중간에 포기할지, 아니면 목표 거리까지 달릴지 끊임없이 고민할 뿐이다. 그 외에 일상에서 차지했던 고민거리들은 잠시 사라졌다. 고통이 사라졌을 때에는 자연을 바라봤다. 그렇게 목표한 거리를 완수하면 뿌듯한 마음이 가득 찼다. 

책을 읽은 그날,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풀코스 마라톤을 신청했다. 하루키처럼 과거의 자신과 겨루며 목표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어쩌면 심신의 단련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달리기와의 권태를 이겨내고, 다시 한번 자신의 향상을 원한 것이다. 오늘도 내 삶에 충실하기 위해 나는 달리기로 했다. 꾸준히, 적어도 마라톤에서 끝까지 걷지는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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